1990년대 중반 대학설립이 자율화된 이후 공업고등학교와 상업고등학교 등 국내 실업계 고등학교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만 하더라도 실업고는 국내 산업 현장의 동력역할을 해 왔지만, 대학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그 목적을 달성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실업고의 현실이다.
상급학교 진학률 급증갈수록 고학력을 선호하는 기업이 증가하면서 산업현장에서 실업고 졸업생들의 일자리가 점차 좁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실업고생의 절반 이상이 진학쪽으로 눈을 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인적자원부가 1965 이후 학급별 졸업자의 진학·취업률을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취업하는 학생보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실업고생의 증가가 뚜렷했다.
지난 1965년 실업고 졸업자 4만7,289명 가운데 상급학교에 진학한 졸업생은 7,919명으로 16.7%에 불과했던 진학률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1990년만 하더라도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진학률은 1995년 19.2%로 두배 이상 많아졌고, 이후 증가세가 이어져 지난해에는 졸업생 가운데 절반이 넘는 57.6%가 진학쪽으로 진로를 선회했다. 과거 현장으로 바로 취업을 했지만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이걸림돌 작용을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 기간동안 취업률은 1965년 43.4%(1만6,674명)에 불과했던 것이 1990년 84.0%를 넘어선 이후 80∼90%선을 유지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취업률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실체를 들여다 보면 취업자 수가 1990년 21만113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급격히 줄어드는 등 현실과 상당한 괴리가 있다.
취업자 수는 1995년 19만148명으로 줄어든데 이어 1996년 19만6,403명으로 반짝 상승했을 뿐 올해까지 감소세가 이어져 6만62명까지 떨어졌다. 진학자가 11만3,944명인 것을 고려하면 3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내신따기 인문고 보다 유리
실업고가 더 이상 빠른 취업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한계점에 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전국적으로 미달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많아지는 부분은 실업고를 하급학교로 인식하게 하는 요인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취업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남자의 경우 군문제와 학벌로 꾸준한 직장생활이 어렵다. 여성 또한 학벌문제로 계속 한 회사에 다니기가 어렵다는 게 교육계의 시각이다.
이로 인해 각 실업고에서는 별도의 진학반까지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3 학생의 경우 인문고에 들어가 내신성적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보다 실업고에 진학 상위권의 내신을 받는 게 대학진학에 유리하다고 보는 견해가 등장할 정도로 학원이 보편화된 만큼 진학수업은 과외를 통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기도의 모 실업고에 다니는 J양(16)은 “어차피 초등학교부터 학원에서 대부분 학과공부를 했다”면서 “중학교때 뒤쳐진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실업고가 수월하다”고 말했다. 결국 국내의 모든 고등학교는 그 특성을 제대로 살리기 보다는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방편으로만 여겨지고 있을 뿐이다.
실업계 고등학교 관계자는 “실업고 졸업생들이 수도권 4년제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인문계 졸업생에 비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 면서도 “전문대학의 경우 동일분야 고등하교 출신자를 60%까지 배려해 주기 때문에 (전문대학 쪽으로)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실업고에 입학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인문고에 비해 실력이 낮아서 온 것으로 봐야지 취업을 하겠다고 판단하면 안 된다”면서 “이들 가운데 실력이 되는 학생들은 대부분 4년제를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가 없는 실업고이제 실업고는 수술대에 올라와 있다는 게 교육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실업고 졸업생을 하급관리자로 취급하는 현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사실상 어렵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업고 활성화를 위해서는 국가 교육 전반에 대한 메스를 대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미 대학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수도권 4년제 대학의 경우 이들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결국 실업고를 선택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전문대를 가기 위해 진학한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뿐만 아니라, 실업고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상당수가 학원 등을 통한 과외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좋지 않아 빈곤의 악순환을 불러온다는 지적까지 일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실업계 교육을 유지하느냐 포기하느냐 상당한 기로에 서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산업현장에서 실업고에 대한 높은 점수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푸념했다.
이 관계자는 “실업고에 진학한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진로는 전문대학을 갈 것이냐, 말 것이냐다”며 “이들이 전문대에 진학한 이후 다시 4년제에 편입하는 비율도 7%대에 달하는 등 순수한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또 “중학교에서 실업고로 진학하는 학생들은 비전 자체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적당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교육대책이 필요하다”면서 “대학진학만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교육의 현실에서 실업고생의 대학진학 기회는 제대로 부여되지 않고 있는 등 실업고 해결을 위해서는 교육 전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