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과 함께 국내 노동단체의 양대 산맥으로서 강한 목소리를 내 오던 민주노총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대기업 중심의 민주노총은 ‘귀족 노동자’라는 인식마저 팽배한 실정이고 시대는 변해 더 이상 ‘노동자=약자’라는 공식이 먹히지 않는 세상이 됐다. 더군다나 국내 경기가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데 걸핏하면 ‘파업’을 주장하는 것도 명분을 얻기 힘들다.
특히 노동자의 목적과 관련없는 정치적인 문제 등을 이유로 총파업을 강행하면서 민주노총은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가장 큰 버팀목인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서 그동안 노조의 눈치를 살피던 정부와 재계도 강경한 자세를 취한다. 강성 노동운동인 민주노총의 위신이 크게 흔들리면서 노동계 내부에서조차 분열이 일어나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투’ 실패 때부터 위기 예고
민주노총의 위기는 지난해 여름투쟁(夏鬪)의 실패때 이미 예견됐다. 산하의 공무원노조와 LG칼텍스정유, 궤도연대의 파업은 일반 여론뿐만 아니라 전체 근로자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한 채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강성 노동운동이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로 대표되는 정치적 성공을 거두는 성과를 내기는 했으나, 그 반면 고용의 경직화라는 역기능 또한 적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11월 비정규직 법안의 처리가 미뤄졌는데도 민노총이 한시적 총파업에 들어가 정부와 재계는 물론, 노동계 내부에서 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높고 네티즌들의 비난도 거셌다. 이는 노동계의 무분별한 파업관행에 쐐기를 박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당초 민노총 집행부의 계획과 달리 파업 참여도는 크게 저조했다. 이는 여론 악화에 따른 부담감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의 파업이 노동자를 대신한 ‘민주적인 파업’이라는 인식보다 ‘자기 배 채우기’ 식의 이기적인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곱지 못한 여론의 시선을 받았다. 서민경제가 파탄에 빠지고 실업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총파업을 강행하려는 데 따른 여론의 힘을 받지 못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대기업 노동자 중심의 귀족 노동층인 ‘민노총’이 벌이는 파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답변이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특히 민노총은 비정규직 관련법안 폐지, 국가보안법 폐지, 한일 FTA 반대, 파병연장동의안 반대, 용산미군기지 이전 비용 재협상, 국민연금법 개정안 및 기업도시법 철회 등 근로조건과 무관한 국가 정책에 관한 것들로 파업을 주장, 목적과 절차에 있어 사실상의 ‘불법 파업’에 속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무슨 일만 터졌다 하면 ‘파업’을 일삼는 민노총과 달리 같은 노동자 단체이면서도 어려운 경제를 챙기려는 한국노총과 비교되면서 더욱 여론의 질타를 받는다.
노-노 갈등 증폭
민주노총의 노조 장악력도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비정규직 입법안 반대 등을 이유로 실시한 총파업 찬반투표에서도 찬성표를 던진 노조원은 전체 조합원 중 34.9%에 불과했다. 단위노조 사업장에서는 단위노조와 상급단체와의 갈등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단위노조 중 규모가 큰 사업장일수록 민주노총의 투쟁방침에 회의를 품는 사업장도 늘었다. 지난해 LG칼텍스정유와 현대중공업 노조가 민주노총을 잇따라 탈퇴했다. LG칼텍스정유는 정유사로서는 최장기 파업을 하는 등 민주노총 산하 화학섬유노조연맹의 강경한 투쟁방침을 따르다 여론의 철퇴를 맞으면서 민노총을 탈퇴했다. 현대중공업 역시 고 박일수씨 분신사망 사건과 관련 금속연맹측과 의견대립을 보인후 민노총에서 제명된 뒤 탈퇴했다. 현대 중공업 관계자는 “연간 8억원 이상의 비용을 썼는데도 노조원들은 회사측에 돌아오는 실익은 거의 없다고 불평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민주노총의 영향력 감소는 구조적인 데서 비롯되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심지어 친노조 전문가들도 민노총의 과격한 투쟁방침이 민노총의 영향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우려할 정도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주희 박사는 “민노총이 추구하는 정책들이 비정규직 문제 등의 정치적인 문제”라면서 “이러한 민노총의 정치적 목표에 대해 과거에는 단위노조가 공감을 했지만 이제는 조합원들의 이익을 우선시 하고 있기 때문에 노조와 민노총간의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노조조직률은 1989년 19.8%에서 지난해 11%로 떨어졌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62만명으로 집계돼 전년보다 소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 외면을 받는 노조가 근로자 눈에 매력이 있어 보일리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노총의 노동운동을 ‘그들만의 노동운동’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상은 변하는데 노조는 ‘정지’
민주노총 내부적으로도 현 상황을 ‘위기’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최근 민노총이 조합간부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63.6%는 “민노총은 지금 위기”라고 진단했고 ‘민노총이 국민 지지를 받지 못하다’는 사람(33.7%)이 ‘아니다’(28.7%)라고 대답한 사람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노총은 위기상황을 초래한 이유로 현장 조직력 약화와 단기적 이익 중심의 조합원 실리주의, 조직내 정치적 견해 차이가 위기의 원인이라는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강성투쟁’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일부 연맹과 대기업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그동안 근로조건과 무관한 정치적 이슈를 내걸고 무리하게 파업을 강행함으로써 비난여론을 자초한 것도 민노총의 위기에 적잖은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민노총 간부들은 위기상황의 타개책으로 ‘현장 조직력 강화’(17.7%,) ’조합원 의식강화‘(13.3%), ‘산별 노조로의 전화’(12.9%) 등을 꼽았다. 민노총은 내부적인 심각한 문제와 관련 지난해 12월29일 조직혁신위원회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그러나 노조는 아직도 ‘약자’라는 피해의식으로 문제를 접근한다. 시대는 변하는데 아직도 노동운동의 전성기를 펼쳤던 방식대로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시대는 계속 변하는데 노조만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홍경희 기자 metell@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