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0일 북한의 핵 보유 선언과 6자회담 불참 선언 이후 대북사업과 남북경협의 지속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경협 사업을 시작한 지 6년만에 금강산 관광사업이 밀린 관광대가 5억 달러를 지불하지 못해 중단될 위기에 처하는 지경이 벌어졌다. 정부나 사업 관련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대부분은 일단, 금강산 관광사업이 중단없이 진행돼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이 단순한 ‘사업’이 아닌, 국가적 염원이 담겨 있는 남북 공동의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금 지불 방법이나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이견이 속출하고 있다.
중단위기… 그러나 사업은 어떻게든 진행돼야
지난 2월21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남북관광공동체 준비위원회와 시민사회아카데미남북포럼이 주최해 남북경협과 관련한 전문가 집단이 모여 중단 위기에 처한 금강산 관광사업의 밀린 대금 5억 달러에 대한 대안과 중단시, 남북경협에 영향은 어떤지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1998년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이 소떼몰이 방북을 한 이후 급속도로 진행된 금강산 관광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실현되어, 2005년 1월 말까지 약 88만여 명의 관광객이 북한을 다녀오는 역사적 성과를 가져왔다. 그런데 밀린 대금 5억 달러를 북한에 지급하지 못해 금강산 관광사업이 위기를 맞게 됐다.
현대와 북한이 1998년 10월29일 체결한 금강산 관광 관련 관광대가 지불에 관한 협의서에 의하면, 2005년 3월까지 9억4,200만 달러를 지급하게 돼 있다. 즉, 현대가 북측에 지불해야 할 월 관광대가는 150억원에 이르는 셈이다. 2001년 6·8 합의서에 의해 관광대가는 동년 6월부터 관광이 활성화 될 때까지 현대의 능력과 형편에 맞게 합리적으로 관광객 수에 따라 지불하되, 2005년 초까지 지불해야 될 금액은 불변이며, 향후 관광대가는 재협의한다고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2001년 6월까지 1,200만불 또는 600만불 등을 제공했지만 관광사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자, 관광객 수에 따라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금강산 관광사업은 중단없이 가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한국무역협회 남북교역투자협의회 김영일 회장은 “만약 금강산 사업이 중단된다면 남북이 체감하는 위기감은 실로 대단할 것”이라며 “협상력을 발휘해서라도 어떻게든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경제협력진흥원 임완근 원장도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업은 지속돼야 한다”면서 “지급문제도 현대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재검토할 때”라고 말했다.
북한 배 불리기?
그렇다면 문제는 앞으로 밀린 5억 달러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에 대해 남북포럼 김규철 대표는 “합리적인 재계약 조건으로 관광대가 조정과 대가의 일부를 현물로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하며, 북한도 상당한 책임이 있으므로 이에 상응하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평화항공여행사 김병규 이사는 “북한이 금강산 사업 재계약을 거부 못할 것”이라며 “냉각기를 갖고 속도조절을 해 가며 정부차원의 대북사업이 지원돼야 할 것”이라고 해결방안을 내놓았다. 북한도 금강산 관광사업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 때문에라도 사업 자체를 중단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보는 관측이다.
실제로 금강산 관광사업으로 북한은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벌써 1,099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관광대가로 2박3일 관광객은 1인당 50달러, 1박2일은 25달러, 당일은 10달러씩을 북측에 지불한 결과다. 정부는 금강산 관광에 나서는 관광객을 위해 도로포장사업 지원용으로 지난해 14억9,000만원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농수산물 수출 등 남북교역을 통해서도 북한은 현금을 얻어왔으며, 조만간 개성공단 통신공급이 완료될 경우에도 통신비용의 일부를 가져가게 돼 있다. 북측도 금강산 지역을 특구로 지정하고 각종 하위규정을 제정하는 등 사업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밀린 대금 미지불로 인한 지금의 사업 중단위기는 애당초 북측의 입장만을 우선 고려한 일방적 계약체결이 무리였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자유주의연대 상임위원 조영기 박사는 "애초에 정책을 만들 때부터 잘못해 남북경협 실패사례로 남게 됐다. 북한의 대외교역도 23억불에 달해 계약이 잘못됐든, 북한에 속았든 문제가 있었다”면서 “밀린 대금 문제는 정부협상력에 기대할 수 있지만 재협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민간차원의 안정적 사업 구축 돼야
금강산 관광사업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도 일부 제기됐다. 남북포럼 김규철 대표는 금강산 관광사업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했음에도 비경제 논리로 계약을 체결해 관광대가 때문에 사업적 어려움을 겪고, 열악한 환경과 인프라로 모객활동에 어려움이 많으며, 정경유착으로 남북경협에 좋지 못한 선례를 남겼다고 주장했다.
북한과 현대 아산의 불투명한 거래가 부정적인 문제를 양산해 냈다는 주장도 있다. 평화항공여행사 김병규 이사는 “금강산 관광사업 진행 당시 현대 아산이 대북사업 독점권을 부여받는 과정에서 투명하지 않은 거래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상당수의 다른 기업이 대북사업을 할 때도 불투명한 돈이 흘러가게 하는 악순환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가세해 지금의 사태는 사업의 주체인 현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현대 책임론’도 나오고 있다. 김영일 회장은 “그동안 개성공단 건설 참여와 경의선·동해선 철도, 도로 자재 독점 납품 등 상당한 재정적 이익을 본 현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며, 북한에서도 그만한 대가는 받을만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앞으로 남북경협 사업은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차원에서 나서서 미국의 압력을 피해가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남북관광공동체준비위원 조항원 대표는 “남북 교류 협력과 관광 활성화 등을 돕는 금강산 사업을 현대 아산에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한계가 있다”면서 “5억불은 북한과 현대 두 당사자간 해결해야 마땅하지만 계약내용과 해결방안이 투명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다 구체적인 해결방안에 대해서 임완근 원장은 “금강산 관광사업은 국민적 염원이 담긴 사업의 특성상 현대라는 기업이 혼자서 이 문제를 끌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시민단체 주도로 공익성 사업에 참여하고 작은 규모의 사업단지 조성 등 작은 인프라 구축으로 안정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한다.
신중도포럼 김우준 공동대표(연세대 교수)도 기본적으로 관광대가 5억불의 근원지와 문제점을 투명하게 밝혀져야 하며, 금강산 관광사업은 북한도 평양 고구려 우적과 백두산 관광 등 연계상품이 있어야 하며 대가문제는 현물로 고려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경희 기자 metell@sisa-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