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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길 칼럼] 모두가 제정신은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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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제정신은 아닌 듯


어느날 아침 어떤 일간지1면에는 4가지의 기사가 대서특필 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독자의 눈길을 끄는 머리기사는 ‘한전노사 이면계약
의혹’이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 큰 기사는 ‘4대그룹 다시 구조조정’이었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기사보다는 약간 비중이 낮은 듯 ‘북의
언론 길들이기 저자세 대북정책 탓’ 그리고 그 다음으로 ‘권노갑씨 일선 후퇴를’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사가 실려있었다. 큰 헤드라인 없이
사진 한 장이 크게 실려있고 그 사진 설명이 붙어있는데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잠적 6일 만에 나타나 기자들에게 자신의 신상발언을 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어쩌면 조국의 정치현실이 적나라하게 거론된 한 장의 신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전력의 노조가 4일로 예정되었던 전면 파업을 철회한 사실은 국민 모두에게 기쁜 소식임에는 틀림이없다. 전기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현대인의 생활이고 보니 쌀이 떨어진다던가 수돗물이 끊어진다는 것 못지 않게 중대한 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것이 전력의 단절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위기를 모면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러나 노조가 파업을 철회하는 조건으로 모종의 뒷거래가 있었던 것 같다는 신문보도는 국민 모두를 허탈감에 사로잡히게 한다. 파업철회의
대가로 엄청난 액수의 임금 인상을 하겠다는 사용자측의 약속을 노조측에서 받아낸 사실이 있다면 한국의 경제는 노조 때문에 더욱 어려운 고비에
다다를 것이 분명하다.


과거에도, 그리고 어떤 정권하에서도 노사간의 분규는 대개 국가권력의 개입으로 타협을 보아 왔다. 노조의 파업이 그 때 그때의 정권에 대한
도전이며 이를 방치하여 분규가 격화되면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희박해 지는 것으로 판단하고 국가권력은 사용자측을 향해 사회가 시끄럽게
되지 않도록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권면도 하고 협박도 하여 노사간의 분쟁이 파업 일보 직전에서 철회된 케이스는 과거에도 여러차례
있었다. 만일에 기업주가 “그렇게 많은 노임을 지불하고 나면 우리는 무얼먹고 삽니까”하며 난색을 표명했을적에는 정부는 기업주를 향해 “세제상의
혜택을 주면 되지 않겠소”라고 했던 것이다.


노조는 그런 속성이 몸에 베어 속된 말로 하자면 누울 자리를 보지도 않고 다리를 뻗는 나쁜 관례를 되풀이하게 된 것이다. 일설에는 이번에
사용자 측이 노조가 파업을 철회하는 조건으로 복지기금3백억을 확약하였다는 소문마저 떠돌도 있다. 그런 비밀계약이 양자간에 이루어지고 파업이
철회된 것이라면 노사의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것 뿐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는 앞으로의 일이 더욱 걱정스럽다고 하겠다. 원칙이 없는 파협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고 본다.


어찌하여 대기업의 구조조정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가 가뜩이나 뒤숭숭한 사회에 삼성, 현대, LG, SK등 대기업을 향해 구조조정
하라는 불호령이 내린 것인가. 구조조정은 기업이 살기위해 스스로 해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정부가 나서서 이 어려운 작업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IMF의 한파 속에서 국민모두가 얼떨떨하던 그때에 수술을 해치우지 않고 질질끌다가 오늘 다시 구조조정의 필요를 역설하고 나서는
정부 당국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삼성이 계열사 재편성을 서두르고 현대가 건설업체 인력단축을 감행하고 LG가 비주류사업을 매각하고 SK가 4백명을 이미 명퇴시켰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이나라의 경제가 되살아 날 수 있는 것인가. 주식시장의 주가가 전혀 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벌써 오랜기간 바닥을 기어 다니는
꼴을 볼적에 국민은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하여 아무런 신뢰도 품고 있지 않음이 명백하다.


여당 가신중의 우두머리인 권노갑씨에게 2선으로 물러나라고 권유한 여당의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가 2선으로 물러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2차
이산가족상봉을 위해 북에서 사람들이 서울로 향해 오는데 주최측의 우두머리인 대한적십자사총재가 일본으로 도망가 엿세동안이나 방랑하다 이제야
돌아오다니 모두가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철학박사

연세대 명예교수

(사)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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