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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殺)처리된 ‘쌀’ 農

  • 등록 2005.12.02 1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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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3일 “대한민국 국회는 ‘쌀‘을 살(殺)처리했다”. 예상했던 350만 농민들의 분노는 거셌다. 죽음으로 맞섰지만 국회는 결국 이날 세계무역기구(WTO)’쌀 관세화 유예협상에 대한 국회 비준안’을 찬성 139, 반대 61, 기권23표로 가결시켰다. 이에따라 빠르면 내년 3월부터 국내 소비시장에는 수입쌀이 판매될 전망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퍼주고도 깨진 쪽박, 대안부재 농정에 절규하는 이들은 벌써 무대밖으로 쫓겨난 듯하다. 황우석 구하기, 행정도시 합헌 회오리 속에서 쌀은 진정 이나라에서 ‘살’처리되는 것인가.

통과와 동시에 쌀은 이미 없다. 언론은 온통 ‘황우석 구하기’다. 정치권은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합헌을 둘러싸고 일희일비가 한창이며 환영하는 충청권과 반발하는 수도이전반대 수투위 소속 의원들은 중단없는 반대운동을 선언했다. “경찰에 맞아죽고, 약 마시고 죽는 일은 이제 더이상 하지말자”며 “죽지말고 살아서 싸우자”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호소는 마치 찻잔 속 태풍처럼 농민 속에서만 출렁였다.

황우석에 비껴간 쌀
나락을 태우며 반발하던 농민이 분신을 하고 정권퇴진까지 불사하겠다며 홍콩 출정 집회를 준비하는 사람들. 1년 가까이 끌어온 쌀 관세화 유예협상 비준 동의안 국회통과로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 농민들 속내는 한마디로 검게 탄 숯덩이다. 그들에게 시장개방 이라는 대세속에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정치권의 호소는 공허하기 짝이없다.

11월23일 현실이 돼버린 쌀 비준안 통과. 빠르면 내년 3월부터 시판용 밥쌀을 만나는 현실 속에서 350만 농민들은 너무나 쉽게 수면아래로 잠겨버린 정치권의 농정부재가 통탄스러울 뿐이다.

<그림1오른쪽>‘쌀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국내 쌀시장 보호를 위한 쌀 관세화 유예는 일단 오는 2014년까지 10년간 추가로 연장된다. 하지만 빠르면 내년2월부터 국내 소비시장에서는 관세화 유예를 받는대신 올해안에 수입해야할 22만5천톤의 외국쌀을 시판해야 한다.

쌀 비준안 통과로 그동안 수입됐던 외국쌀이 가공용으로 전환돼 국내 소비시장에 나오지 않았던 종전과 달리 정부는 오는 2014년까지 쌀 의무수입물량을 최고 40만8,000톤까지 확대하게 됐다. 또 이행 5년차가 되는 오는 2009년에는 이행 상황에 대한 다자간 중간 점검을 받게된다.

따라서 쌀과자 등 가공용 정도로만 공급되던 수입쌀 물량 중 10%는 이제 밥쌀용으로 시중에 판매된다. 이같은 밥쌀용 비율은 매년 증가돼 2010년까지는 30%대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정부는 시판되는 수입 쌀물량이 일단 국내 소비량의 0.4%에 불과해 쌀 시장에는 당장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쌀 통과 국회 요지경
비준안이 통과되던 23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요지경을 방불케 했다. 쌀 비준은 국회에서만 5개월 넘게 처리가 지연됐지만 통과되기까지는 막상 34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오후 3시10분께 비준안이 통과되기 전까지 국회본회의장은 단상을 점거한 채 비준안 통과 저지를 외치는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이를 끌어내려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격렬한 몸싸움으로 아수라장을 방불케했다.

마침내 김원기 국회의장이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단의 경호 속에 본회의장에 입장한 오후 2시30분께 의장 경호에 발맞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민노당 의원들을 작정한 듯 의장석에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의원이야, 경위야”... “법대로 하자고” . 아우성, 고함, 몸싸움...17대 국회는 쌀 비준안 앞에서 볼상 사납게 무너져 버렸다.

결국 34분만의 일사분란 의사봉 두드리기. 쌀협상 비준안 처리에 반대하며 장장 29일간의 국회 단식농성을 감행했던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마침내 눈물을 터트렸다. 쌀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그는 결국 단식을 중단했지만 투쟁을 중단한 것은 아니라는 절절한 메시지를 국회 기자실에 남겼다.

쌀 대책 뭐가 마련되나
정부는 일단 농림부내에 쌀 산업대책 보완 TF가 구성되며 내년 2월까지 농민단체 의견을 토대로 보완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에앞서 쌀협상에 대비한 ‘선대책, 후비준’원칙에 입각 쌀 소득보전과 공공비축제, 쌀 품질고급화와 농촌 삶의 질 향상 등 대책을 추진해 왔다는 설명이다.

이와관련 정부는 지난해부터 향후 10년간 119조원 규모의 투융자 계획을 마련, 종합적인 농촌살리 대책을 밝힌 한편 오는 2009년까지 20조3,000억원이 투입되는 ‘농촌 삶의 질 향상 5개년 게획’을 추진할 방침이다.

살(殺)처리된 ‘쌀’ 農.
쌀 비준안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우당탕탕 요지경’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은 혼란스럽다. 쌀 문제에 관한한 역대 YS 정권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농민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국제무대에서 보호할 명분은 없고 국내에서는 유권자와 농민보호문제에 끼인 채 정부는 우유부단함을 면치 못했다. 결국 한 번은, 누군가는 짊어졌어야 할일. 쌀 비준안은 바로 그랬다. 충격을 완화시킬 장치의 마련은 이제 정부나 농민단체 모두 예외일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국제무대에서 지난 10년간 이어져 온 쌀시장 개방.

이제 국가와 국가를 넘어 세계적 커넥션을 형성하고 있는 자본의 공세속에서 이에 대항하는 농민민중도 세계적 연대를 형성해야 할 때가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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