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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허구로 일관하는 삼국지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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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순신이 치밀한 고증으로 재구성한 삼국지 이야기

중국사에 정통한 대가의 현장감 넘치는 삼국지

 

진순신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활동한 중국계 작가라는 독특한 배경을 지니고 있다.

그는 정통 한문과 명·청시대의 백화는 물론 현대 중국어에도 능할 뿐 아니라 인도어와 페르시아어까지 공부한 언어의 달인이기도 하다.

이런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중국 25왕조의 정사를 모두 독파했을 뿐 아니라 중국사, 중국 사상에 관련된 수많은 사료를 섭렵했고 150여 편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을 집필했다. '청일전쟁'을 쓸 때는 중국과 일본의 사료들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실록’까지 열독했을 정도로 고증에 대한 그의 열정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진순신의 삼국지 이야기’는 이런 독서, 연구, 집필 이력의 연장에 있다. 진순신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제본이 헤지도록 ‘후한서’,‘자치통감’,‘삼국지’등을 읽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삼국지’의 무대를 찾아 네 차례나 현장을 답사하기도 했다.

이런 사료 섭렵과 발품에서 비롯된 현장감이 텍스트 전체에 묻어난다. 황건군의 진격과 좌절, 위·촉·오의 영역과 주요 싸움터에 대한 자세한 지리 설명은 독자의 상상력과 흥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더구나 진순신이 이 책을 쓸 당시는 한창 삼국시대 관련 유적, 유물이 발굴되던 때였다. 삼국시대 낙양성 터, 백마사 유적, 조조의 동작대, 안휘성 마안산에서 발굴된 오의 장수 주연(朱然)의 묘 등은 그가 원고를 쓰며 실제 발걸음을 한 곳이다.

이 현장감에다 작가 특유의 중국 역사지리 지식이 더해져 들판의 싸움터에서든 도성 안 내전의 싸움터에서든, 적벽에서든 오장원에서든 상상만으로는 그릴 수 없는 무대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탄탄한 토대 위에서 나온 진순진의 작업은 작금의 문인들이 ‘삼국연의’라는 ‘허구’의 연장에서 상상력과 입담만으로 풀어낸 이른바 ‘현대판 삼국지’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중국 역사와 문명에 정통한 작가가 사실-사료-고증-현장에 발 딛고 이루어낸 성과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은 ‘현대판 삼국지’만을 읽어보고 그것이 ‘삼국지’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한 번은 돌아보아야 할 흥미로운 면모를 넉넉히 갖추게 되었다. ‘진순신의 삼국지이야기’가 일본에서 출간된 이후 3백만 독자들과 만날 수 있었던 저력도 여기에 있다.

 

‘인간의 목소리’가 들리는 삼국지

 

“이야깃거리가 되는 시대는 역시 난세이다. 그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러웠겠지만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는 시기는 역시 난세이다. 전쟁이 있고, 모략이 있고, 봉기가 있고, 흥망이 있다. 중국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도 삼국시대가 되어서야 가까스로 살아 있는 인간의 목소리가 들리는 기분이 든다. 이는 조조를 필두로 건안의 문사들이 남긴 문장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전쟁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목소리가 들리는 삼국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진순신이 삼국지의 세계를 파고든 이유는 거기서 ‘인간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삼황오제, 진시황, 한고조, 한무제의 시대를 지나는 동안, 중국 민중은 이들에게 오로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후한 말에 접어들어 농민봉기에 이어진 삼국의 분열을 목격하면서 그들은 비로소 그 시대를 민중이 연출하고 소비하는 ‘이야깃거리’로 만들 엄두를 내기 시작했다.

민중이 '삼국지' 주요 인물들에 보인 애증은 자신들의 윤리감각과 역사에 대한 원념(will)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유비와 조조에게 부여된 성격, 사실에서는 보잘것없는 위상의 관우가 사당에 모셔진 민중수호신이 된 사연, 결과적으로 패전지장인 제갈량에 대한 존경 자체가 민중이 나름대로 처음 시도한 ‘역사 뒤집기’였던 것이다.

이 점을 꿰뚫고 있는 진순신은 ‘역사 뒤집기’에 깃든 활력을 살리는 흥미진진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동시에, ‘역사 뒤집기’와 ‘사실 및 현장’이 맞물려 만들어내는 긴장을 잘 살리고 있다.

삼국시대 이후 민중들이 그랬듯, 진순신의 작업에서도 결국 인물에 대한 평가에 개성과 장점과 흥미가 모이게 마련이다. 여기서 다시 진순신의 말을 들어보자.

“삼국연의”에서 공명·관우·장비는 큰 활약을 하지만 유비는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다. 오히려 그것이 재미를 더해준다. ‘서유기’의 삼장법사는 요괴와 만나면 벌벌 떨기만 합니다.

‘수호지’의 송강도 마찬가지다. 우두머리는 조용히 뒤로 물러나 있고 보좌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양새다. 이것은 민중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사실 유비는 혹독한 전란을 이겨내고 살아남아 한 국가를 이룬 영웅이다. 실제로는 무능하지 않은 위대한 인물이다.”

 

진순신의 작업은 ‘삼국연의’를 소설 판본으로 정착시킨 나관중, 모종강이 이룬 이야기의 흐름과 삼국지 영웅들에 대한 민중의 해석을 천착한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다.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인물 분석 뒤에는 알뜰한 사실관계 안내가 따라붙는다. 한나라의 황실 계통, 유비의 지위와 처지, 조조의 집안내력 등을 1차 사료로 개관하는 동안 독자는 어느새 민중이 왜 ‘삼국연의’와 같은 방향으로 역사를 뒤집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위·촉·오 삼국의 계통도와 손권, 하후돈, 관우에 관한 1차 사료를 개관하는 동안 독자는 ‘사실에만 의존하면 생기가 죽고, 역사에 위배되면 잘못되고 만다(依史則死 背史則謬)’라는 중국문학사의 경구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풍성한 인문적 지식으로 입체적인 시대상을 그리다

 

‘진순신의 삼국지 이야기’는 오두미도, 태평도 등 종단화의 길에 오른 도교가 민중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두 교단의 분포와 조직화 정도뿐 아니라 민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오늘날 야구선수들이 사인을 주고받듯, 독순술(입술 모양을 통해 말을 읽어내는 기술)로 사인을 주고받으며 민중의 복종을 이끌어내는 모습 등은 사실에 천착해본 적 없이 상상력만으로 허구를 재해석한 ‘현대판 삼국지’들이 결코 그릴 수 없는 흥미진진한 장면이다.

서역, 티베트, 흉노, 몽골, 베트남 문화권에 대한 해석도 돋보인다. 중국 문명은 결코 한족만의 단일 문명이 아니다.

“한나라도 다민족 국가이다 한왕실에는 선비족(鮮卑族)의 피도 섞여있다. 이민족의 문화가 중화 문화나 문명으로 바뀌면 대단해진다. 어떤 과정을 거쳐 중화 문화나 문명에 편입하고 발전하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진순신의 작업은 피지배계급의 동향에 대해 공평할 뿐만 아니라 중국문명의 밑절미가 되었던 여러 문화에도 공평하다.

중국사의 삼국은 중화의 북동, 서, 남을 삼분했다. 북동의 위는 흉노 및 몽골과, 서의 촉은 서역 및 티베트와, 남의 오는 베트남을 필두로 한 동남아시아 문화권과 통로를 대고 있었던 것이다. 이 통로를 통해 불교가 들어오고, 서역의 문물이 들어오고, 흉노 및 몽골의 전투기술이 들어오기도 했다.

삼국시대가 수나라를 거쳐 당제국으로 이어지면서 중국 문명은 한 단계 질적인 비약을 했다. 여기에는 중화사상에 입각해 사이(四夷)라고 불렸던 다양한 이민족들과의 교류가 큰 역할을 했다. 진순신은 이 사실 또한 포착해, 중국 안의 전쟁뿐 아니라 사방 문명과의 교섭이라는 요소로 이 책에 이채를 더하고 있다.

 

 

동아시아 최고의 스테디셀러-삼국지 小史

 

‘삼국연의’는 ‘서유기’,‘수호전’,‘금병매’와 더불어 중국 소설사에서 4대기서로 꼽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삼국연의’는 본래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했지만 먼저 보통사람들에 의해 허구화되는 과정을 거친 다음, 이야기꾼이나 연극패에 의해 사건-일화 중심으로 장면화 되는 과정을 거친 뒤 드디어 소설로 정착한 복잡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

‘삼국연의’는 기본적으로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바탕으로 한다. 진수는 위(魏)를 정통으로 삼으면서 촉(蜀)을 존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오(吳)에 대해서는 무덤덤한 태도였다. 남북조시대 송(宋)의 배송지는 칙령에 따라 진수의 기록을 보충하는 ‘삼국지주’를 편찬한다.

이렇게 해서 ‘삼국연의’는 ‘삼국지’와 함께 ‘삼국지주’를 이야기의 또 다른 원천으로 갖게 되었다.

그 뒤 ‘삼국연의’는 당제국과 오대시대 사이에 민중의 기호에 부합하는 문예의 소재로 부상했고 송대에 와서는 직업적인 이야기꾼들과 이들의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인기 높은 소재로 완전히 자리를 굳힌다.

예컨대 소식(蘇軾, 소동파)은 동네 개구쟁이들이 이야기꾼들에게 돈을 내고 삼국시대 이야기를 듣는 장면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유비가 지는 대목에서는 얼굴을 찡그리고 눈물까지 흘리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조조가 지는 대목에서는 기뻐하고 통쾌해 한다.”

당시 ‘삼국연의’의 인기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있는 주요 등장인물에 대한 평가가 그때 이미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원제국에 들어서 이야기꾼들의 대본과 연극 대본으로 쪼개져 더욱 세련된 형태의 장면 연출을 발전시킨 ‘삼국연의’가 등장하게 되고, 원제국 말기에서 명제국 초엽 드디어 소설의 형태로 정착한다. 그 가운데 원말청초에 성립한 나관중 판본, 그리고 청제국 강희제 때 모종강이 120회본으로 확정한 판본이 오늘날까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삼국지의 인기는 중국에 한하지 않는다. 한·중·일 각국 사람들은 저마다 무대극, 인형극, 춤, 노래,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등의 다양한 형태로 지금도 삼국지를 즐기고 있다. 일본은 현대에 들어 가장 다양한 종류의 삼국지 관련 콘텐츠를 생산한 나라일 것이다.

한국 또한 그 수준에서는 일본 못잖은 삼국지 해석과 연출의 전통을 지닌 나라다. 판소리 ‘적벽가’가 극대화한 적벽대전의 장면 연출은 현대 중국의 극영화 ‘적벽대전’과 맞먹는 스케일을 보인다. 특히 전쟁에 동원되어 고향과 가족을 이별한 보통사람들의 고통에 파고든 해석은 삼국지 콘텍스트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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