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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그때 그 섬에서 어떤 일이 - 실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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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모가지를 따러’ 무장공비가 청와대 앞까지 침투하는 ‘김신조 사건’으로 충격 받은 정부는 보복조치로 북파부대를 창설했다. 1968년 4월에 만들어져 ‘684부대’로 불린 이 특수부대의 목적은 ‘김일성 모가지 따기’. 작전 성공시 정부로부터 새 삶을 보장받는다는 조건으로 사형수 무기수 등 사회 밑바닥 계층들이 포섭됐다. 이들은 혹독한 지옥훈련을 통해 인간병기로 길들여졌다. 하지만 그 사이 정세는 급격히 변해 남북이 화해의 시대를 맞는다. ‘684부대’가 불필요해진 정부는 이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정부로부터 배반당했음을 알게 된 훈련병들은 10여분만에 실미도를 접수하고 인천으로 상륙.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했다.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진압군과 교전 끝에 훈련병들은 전원 자폭이라는 최후를 선택했다.


실화, 딱 그 만큼의 감동
여기까지가 ‘실미도 사건’의 알려진 내막이다. 픽션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충분히 드라마틱한 이 사건은 그 자체가 분단과 독재의 비극적 현대사를 상징한다. 인간이 나무젓가락 같은 소모품으로 이용되고, 소수 권력자의 손에 의해 국가 전체가 통제 조작되는 기형적 상황에 대한 분노와 슬픔은 굳이 해석하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 감정이다.
영화 ‘실미도’가 말하고자하는 주제도 더 이상의 것이 아니다.’실미도’는 살인적인 훈련 과정의 참혹함보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적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서로가 총을 겨눌 수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은 더욱 가슴아프다. 극한 상황의 육체적 고통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이 사회적 소외와 존재의 말소라는 점. 그리고 인간애는 죽음보다 강하다는 메시지는 감동적이다.
하지만 그 감동은 ‘실미도 사건’을 다룬 TV 다큐프로그램이나 시사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는 무게다. 즉, 실화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딱 그 만큼의 감동이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권력에 희생당하는 개인이라는 인권 문제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진부하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다. 진부한 것은 이미 반복돼 익숙하기 때문이고, 중요하다는 것은 익숙하지만 진정으로 알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르는 그 ‘깊이’를 포착한다면 진부한 소재는 중요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잘 만들어진 80년대 영화
하지만, ‘실미도’는 강우석이 연출했다. 강우석은 주제를 진득하게 자기식대로 해석하는 철학적인 작가가 아니다. 심리묘사가 감각적인 감독도 아니고, 완벽한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장인도 아니다. 그는 장르의 법칙을 적절히 활용해 대중을 사로잡는 흥행감각이 뛰어난 감독이다. 이 같은 강우석과 ‘실미도’라는 소재의 궁합은 약간 어색한 구석이 있다.
뉴질랜드에서 찍었다는 설원 폭파 장면, ‘지중해 몰타 MFS 스튜디오’에서 만든 수중 침투장면 등 박진감 넘치는 특수효과들에도 불구하고 ‘실미도’는 구체적인 현실감이 떨어진다. 리얼리티란 사실적인 ‘그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섬세한 묘사와 통찰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실미도’는 상투적인 캐릭터와 작위적인 대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잘 만들어진 80년대 영화를 연상시킨다. 역사적 사건은 정제되고 단순화된 형태로 무난하게 전개된다. 정체성의 문제와 시대 읽기가 보다 ‘깊이’ 이루어졌다면 이 영화는 진부함의 위험에서 빗겨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우석은 날카로움이나 냉철함보다 신파적 정서에 호소하며 스스로 진부함에 안착했다.
이 모든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실미도’의 실화 자체가 가진 위력과 가치는 무시할 수 없다. 상투성이 대중성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안성기의 연기는 영화 전체에 광택을 부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성기는 그 어떤 비현실적 캐릭터도 살아있는 인물로 만드는 비범한 능력을 지닌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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