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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 살인사건 (제7회)

  • 등록 2007.03.17 2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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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욱이 물었고 우형빈이 끄덕였다. 그들의 시선에 양장점 <디쉐네>의 찬란한 쇼윈도가 바라다 보였다.
“어떡한다?”
“들어가보지 뭐.”
“아내가 저기 들렀을까?”
“그래, 주비서가 그러는데 회사 앞 구두닦이가 봤다는군, 아내가 명동 쪽으로 걸어가는 걸 말이야.”
“그럼 여기가 틀림없군.”
“하긴 아내의 단골 양장점이긴 하지만...”
두 사람은 잠시 후 <디쉐네>의 유리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예쁜 점원이 두 사람을 맞았다.
“어떻게 오셨어요?”
불쑥 나타난 남자손님들이라 점원은 약간 당황한 모양이었다.
“주인 좀 뵐 수 있을까요?”
우형빈이 점원의 보조개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안 계신데, 어디서 오셨어요?”
우형빈은 대답하지 않고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물었다.
“참 어제 나경미씨 여기 들렀죠? 옷 찾으러 말입니다.”
“나경미씨요?”
“왜, 우일재벌의 며느님 되시는 분.”
“아, 네. 그 분 오셨고 말구요. 선생님은 그분을 어떻게 아세요?”
“잘 알지. 그런데 어제 몇 시쯤 왔었어요?”
“그러니까 그게... 좀 늦으셨어요. 오후 5시 30분쯤 됐을 거예요. 우리 선생님하고 같이 나가셨으니까요. 근데 왜 그러시죠?
“선생님이라면 주인 아주머니 얘깁니까?”
주로 우형빈이 질문했고, 지욱은 화려한 옷차림을 한 마네킹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파리서 디자인 공부하고 오신 우리 선생님 모르세요? 서정숙 여사.”
“아, 알고 있죠. 서울에서 서정숙 여사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제 나경미씨 옷 찾아갖고 나갔나요?”
“네, 찾아가셨어요. 짙은 보라색이 주조를 이룬 팬츠 앙상블인데요, 다트는 생략하고 직선으로 재단하여 단순한 선, 헐렁한 재킷과 유행감각을 살린 바지였어요.”
“잘 알겠습니다. 전 의상에는 전혀 백지라... 아무튼 보라색 옷이겠군요.”
“그래요. 짙은 보라색.”
“근데, 마담을 좀 뵐 수 없을까요?”
“요 아래 지하 찻집에서 손님을 만나고 계실 것예요.”
두 사람은 양장점을 나와 바로 지하 다방으로 내려갔다.
어두운 공간에 보기좋은 샹들리에를 켜놓은 제법 깨끗한 찻집이었다. 실내에 죠용히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밝은 데서 들러와서 그런지 두 사람은 다실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여기 앉지.”
“그럴까.”
지욱은 한쪽 자리에 앉으려다가 그 시선이 문득 고정됐다.
“어, 저 여자...”
“알고 있나?”
“알고 있지.”
“저 여자가 서정숙이라고 양장점 디쉐네의 마담일세. 자네도 알고 있었군.”
“저 여자가 디쉐네의 마담이라고? 틀림없나?”
“아 틀림없다니까... 여류 디자이너 하면 저 여자야.”
“자네는 어떻게 아나?”
“난 사진으로만 봤어. 신문에 가끔 나더군. 그런데 자네야말로 어떻게 저 여자를 알지? 설마 아내의 뒷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의상을 맞춰주진 않았을 거구.”
지욱은 좀 멍한 표정이었다. 저쪽 샹들리에 불빛 아래 요염한 자태로 앉아 웬 사내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서정숙이란 여지. 지욱은 머리가 어질어질 어지러웠다.
“아내가 저 여자하고 어제 같이 나갔단 말이지?”
“그렇다니까.”
“저 여자, 날 보면 피할지도 모르네.”
“아니, 왜?”
“아버지하고 찍은 사진을 봤어.”
“뭐, 뭐야?”
“우리 대장이 하루는 술이 취해서 돌아오셨더군. 그런데 아버지 포켓에선 뭔가 햐얀 게 떨어지길래 주워봤더니 웬 여자하고 찍은 사진이었어. 대장은 당황하며 그걸 뺏지 않겠나? 잠깐 봤는데도 그 여자의 윤곽은 뚜렷이 남아 있었어. 바로 저 여자야.”
“그러면 자네 대장의 이거란 말이지.”
우형빈은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럴지도 몰라. 저 여잔 날 알고 있을 거야.”
“흠, 거 묘한데? 어떡할까? 내가 한번 만나 보고 올까?”
“그래 주겠어?”
“어, 일어나는군.”
마침 서정숙이 남자손님과 얘기를 끝내고 일어서고 있었다. 우형빈은 재빨리 그쪽으로 다가섰다.
“실례합니다.”
“저 말인가요?”
서정숙이 우형빈을 돌아봤다.
“서정숙 여사시죠?”
“네, 그런데... 댁은 누구신지?”
서정숙의 날카로운 눈이 우형빈을 훑었다.
“전 나경미씨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만, 나경미씨가 어제 선생님 가게에 빠뜨린 게 있으시다고 해서 그걸 찾으러 왔는데요.”
“뭘 빠뜨렸을까?”
서정숙의 요염한 눈이 빛났다.
“열쇠 꾸러미를 놓고 갔다지 뭡니까? 어제 같이 가게에서 나오셨다지요?”
“네, 그런데...”
“지금 선생님 가게에 들렀다 오는 길인데 가게에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하더군요. 나경미씨하고 어느 쪽으로 가셨죠?”
“우린 헤어졌는데... 코스모스 백화점까지 같이 나와서 바로 헤어졌어요.”
“그렇습니까? 바쁘신데 실례했습니다.”
“돌아가시면 나경미씨한테 전화해 달라고 그러세요. 나도 열쇠 꾸러미를 찾아보겠어요.”
“서정숙은 하던 말을 마치고 팽그르르 몸을 돌리더니 찻집을 빠져나갔다. 우형빈은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보다가 지욱의 자리로 돌아왔다. 지욱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형빈이 다가와도 느끼지 못하고 허공의 한 점을 응시한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욱은 아버지의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아내의 실종을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으나 아버지의 애첩을 이런데서 만나다니 좀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고 저 여자한테서 옷을 맞춰 입었던 것이다.
“바로 헤어졌다는군.”
“그래?”
그제서야 지욱은 형빈을 바라봤다.
“코스모스 백화점 앞가지는 같이 간 모양인데... 거기서 헤어졌대.”
두 사람은 그 찻집을 빠져나왔다.
아내는 마담 서정숙과 헤어져 어디로 간 것일까?
지하찻집에서 나온 지욱과 우형빈은 거기서 시간을 재면서 코스모스 백화점 앞까지 걸었다. 우형빈은 시계초침을 보면서 걸었다.
오고가는 인파 속을 걸으면서 지욱은 정말 막연했다. 이 숱한 사람들, 그 속에서 아내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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