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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민중가요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변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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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가요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변할 뿐


MP3, 핸드폰 벨소리로 대중화 통로 모색하는 민중가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임을 위한 행진곡) “찢기는 가슴 안고 사라졌던 이 땅의 피울음 있다”(광야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님의 눈물이”(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70, 80년대 대학가와 노동현장에서부터 노래방에서까지 불리던 그 많던 민중가요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암울한 시절 민중의 손에서 창작되어, 강인한 시대의식을 담고 민중을 대변했던 민중가요는 90년대를 맞아 모든 민족예술이 그랬던
것처럼 혼란에 빠졌다. 이데올로기의 붕괴와 학생운동의 변혁에 따라 민중가요는 대중성을 상실하고, 그 존재 의의마저 위협받게 된 것이다.
학교나 집회현장에서도 예전의 민중가요가 되풀이되어 불릴 뿐, 더 이상 창작이 없는 현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만 갔다.

하지만, 민중가요는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이나 미국의 동계올림픽 편파판정 등의 사건에 대한 국민감정을 노래한 민중가요가
10대들에게까지 인기를 얻었다. 이를 계기로 민중가요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게임 주제가에 이어 핸드폰 벨소리까지 민중가요가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민중가요 고전은 힙합으로 리메이크 되고, 민중가요 제작자들은 인터넷 시대에 부합해 MP3라는 새로운 매체로 민중가요의 부흥을
모색하고 있다.


70년대 본격 시작, 80년대 노찾사 등 전성기 맞아

민중가요는 70년대 포크문화로 대표되는 미국문화에 대한 비판으로 출발했다. 노래모임 ‘꽃다지’ 기획실에서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75년
박정희 유신정권에 의해 초헌법적인 긴급조치시대가 시작되면서 학생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분리가 그것이다. 운동권은
비운동권과 구분되는 다른 인식과 생활, 문화를 형성했고 대중문화 전반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 운동권은 체제순응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사랑 타령의 대중가요에도 반기를 들었는데, 그 대안으로 별도의 향유층과 존재방식을 가진 독자적인 노래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성립된 민중가요는 70년대 후반과 80년대에 이르면서 꽃을 피웠다. 김민기의 ‘친구’나 ‘아침이슬’이 재해석되어 민중가요로 불리웠고,
후기 작품 ‘식구생각’, ‘늙은 군인의 노래’ 노래무용극 ‘공장의 불빛’ 등은 민중가요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80년대는 광주 민주화
항쟁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이 탄생했다. 연이어 ‘광주출전가’ ‘타는 목마름으로’ ‘정의가’ ‘민족해방가’ ‘오월의 노래’ 등 비장하고
장중한 민중가요들이 등장했다.

대학가 노래패들이 80년대의 대명사로 자리잡을 만큼, 80년대는 민중가요의 전성기였다. 84년 노래모임 새벽에 의해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이
결성되었고, 민중가요로는 최초의 음반이 발표된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사계’ 등의 히트곡을 내며 노찾사는 대중성을
획득한 민중가요의 대표적 모델이 된다. 2집 앨범이 50만장 이상 판매되었고, 대중가요 인기챠트 7위권 안에 드는 등 웬만한 대중가요를
압도했다.

하지만, 93년 문민정부의 출범은 군사정권과 민주화 세력이라는 명백한 대치구조를 와해시켰고, 운동권의 혼란과 함께 민중가요도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된다. 노래모임 ‘꽃다지’의 ‘바위처럼’ 과 ‘조국과 청춘’의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날 날’ 등의 경쾌한 댄스곡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90년대 중반에 이르러 민중가요는 락을 도입으로 다시 박차를 가한다. 93년 ‘천지인’으로 시작한 락의 도입은 ‘꽃다지’의 2집
앨범(96년)과 ‘조국과 청춘’의 5집 앨범(96년)에서 본격화되었으며, 이후 ‘이스크라’, ‘메이데이’와 같은 전문 민중 락 그룹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다시
쓰는 민중가요 역사 ‘MP3를 통한 전파’


민중가요가 락을 도입한 이유는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90년대는 대중문화의 화려한 성장기였다. 자극적인 소비문화 뿐만 아니라,
서태지의 ‘교실이데아’나 강산애의 ‘라구요’ 같은 의식 있는 대중가요도 등장했다. 대중문화의 여파는 민중가요의 주 향유층이던 대학가까지
뻗쳤고, 민중가요는 뚜렷한 해결점을 제시하지 못하고 침체기에 빠졌다.

민중가요가 대중에게서 멀어진 원인은 상업가요 위주의 구조적인 원인이 크다. 민중가요 제작사 송앤라이프(songnlife.com)는 “민중가요는
그 동안의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상업가요유통체계에 의존하지 않는 자체의 유통구조 부재와 그에 따른 창작물의 빈곤이라는 악순환 속에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송앤라이프가 상업적 음반의 과감한 폐기를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상업적 유통구조를 따르는 음반으로는 음악적 실험이
불가능하며, 민중가요의 미덕인 시의성을 구현하기도 힘들다. 또한, 의의나 명분만으로는 상업시장의 높은 벽을 넘기도 어렵다.

대안으로 등장한 것은 MP3 파일이다. 송앤라이프는 “인터넷 환경과 뛰어난 음질, 복제와 전송, 이용의 간편함 등 MP3의 장점에 주목했다”며,
“적극적으로 새로운 노래를 생산하고, 노래에 담긴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널리 나누며, 생활 속에서 보다 쉽게 많은 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구사할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런 취지와 방식 따라 등장한 노래가 쇼트트랙 편파판정을 비난한 ‘퍼킹유에스에이’, 부시의 패권주의를 꼬집은 ‘기특한 과자’ ‘또라이 부시’,
F-15 전투기구매반대를 담은 ‘종이비행기’, 국내 정치인을 풍자한 ‘누구라고 말하지 않겠어’ 등이다. 네티즌들은 “속이 후련하다” “노래방에
등록됐으면 좋겠다” “만방에 전하고 알리고 싶은 노래다” “기발하다” 등 열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작곡자는 ‘서울에서 평양까지’ ‘전대협
진군가’ 등 80년대 민중가요를 만들었던 윤민석이다. ‘퍼킹유에스에이’ 이후, 대중들이 소재를 제공하고 작곡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아져,
‘민중이 만들고 민중이 부르는’ 민중가요의 맥을 적절히 잇고 있다.


힙합과 하우스로 리메이크

한빛코리아(www.hanbitkorea.com)도 비슷한 형식으로 민중가요를 제작하고 있다. 한빛코리아의 최동국 대표는 ‘진보적인 대중가요’를
표방했지만, 시의성과 비상업성 등을 고려할 때, 실질적으로는 민중가요에 가깝다. 한빛코리아의 가수 ‘아랑’의 공연이 주로 시위현장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일본 우경화를 비판한 ‘대마도는 우리땅’ ‘히로시마를 기억하라’는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과거 민중가요 명곡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바위처럼’ ‘동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등의 민중가요가 휴대폰 벨소리로 서비스되기
시작했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은 PC게임 주제곡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게임 제작사 YNK 인터랙티브는 “80년대 민중가요를 젊은이들이
즐기는 게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하자는 생각에서 기획했다”며 의도를 밝혔다. 신인그룹 거북이는 데뷔앨범에 힙합과 하우스로 리메이크 한
‘사계’를 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거북이 또한 “청소년들에게 민중가요를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아직 민중가요 진영은 대중문화에 비해서 작품수나 향유층의 규모가 미약하다. 하지만, 상업성만을 쫓는 대중음악의 병폐가 날로 심각해지는 시점에서,
건강한 민중가요의 필요성은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최근 불어닥친 민중가요 열풍은 이러한 대중의 갈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송앤라이프는 인터넷을 통한 민중가요 제작과 보급의 의미를 “지난 시절 제도권 언론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하는 민중들의 목소리를 알리기 위해
밤새 찍어 뿌리던 유인물처럼, 상업가요진영으로부터 구조적으로 철저히 소외당하고 있는 민중가요를 알리기 위해 우리만의 방식으로 전개되는 ‘운동’이다”라고
정리했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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