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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국 16강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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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6강 진출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가상 시나리오

1승1무1패, 골득실에 폴란드 앞서… 5전 6기 신화창조


드컵
16강에 대한 국민의 염원은 종교적 구원과도 같다. 행여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면 대체 어떤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
한국팀이 점점 목표를 향해 진군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바라보는 모든 이를 안도케 한다. 히딩크가 말한 100%의 전력 완성을 전제로 한국팀과
대전할 각팀의 전력을 객관적으로 분석, 16강 진출 가상 시나리오를 써 본다.

6월 4일 부산, 한국 VS 폴란드


우승후보로 꼽히는 포르투갈이 16강 티켓을 예약했다고 가정한다면 폴란드와 한국은 첫 경기에서 16강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해야 한다.
즉 경기에서 패하는 팀은 16강이 어렵기에 양팀 모두 최소한 비겨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이 때문일까? 6월 4일 저녁 8시 30분, 각자의 위치에서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에겐 비장감이 엿보였다.


독수리
날고 황새 울었다


양팀은 경기초반 빠르고 정확한 패스를 건네며, 공격의 찬스를 엿보고 있었다. 승리의 여신은 한국에게 먼저 미소지었다. 전반 33분, 카우즈니가
올리사데베에게 찔려준 스루패스를 중간에서 차단한 홍명보는 송종국에게 흘려주었고, 공을 받자마자 송종국은 안정환에게 정확히 패스했다. 미드필드
중앙에서 볼을 잡은 안정환이 수비 2∼3명을 달고, 페널티지역 좌측으로 치고 들어가 문전으로 센터링하자 수비수 사이를 파고들던 최용수가
오른발 강슛을 쏘았다. 두덱이 몸을 날렸으나, 공은 이미 골문라인을 넘어섰다. 첫 골의 충격은 폴란드에게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백전노장
수비수 발도흐가 경기를 조율하며 자칫 조급해지기 쉬운 선수들의 플레이를 추슬렀다.

두덱이 전방을 향해 찬 공은 코즈민스키에게 이어졌고, 코즈민스키는 문전에 있는 올리사데베를 향해 센터링했다. 한국의 수비수들은 착지점을
잡으려는 올리사데베와 크리샤워비치에게 몰렸고, 뒤에서 달려든 카우즈니를 놓치고 말았다. 카우즈니가 공을 향해 뛰어올랐고, 최진철도 뒤이어
점프했지만 198㎝의 카우즈니를 막기엔 역부족. 카우즈니의 번개같은 헤딩슛이 골네트에 작렬했다. 좀처럼 감정을 나타내지 않는 폴란드 엥겔
감독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이때가 전반 41분.

후반 들어 폴란드선수들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다. 코즈민스키와 스비에르체브스키가 중앙에서 기민한 움직임으로 폴란드의 다양한 공격루트를
만들어낸 반면, 한국은 좌우돌파에 이은 문전센터링이 장신수비수들에게 막혔고, 미드필드진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못해 위협적인 슛찬스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후반 18분 카르반은 이을용의 횡패스를 자르더니 좌측 라인을 따라 질주하기 시작했다. 유상철과 홍명보가 막아서자 카르반은 측후방에서 다가오는
스비에르체브스키에게 패스했고, 그는 곧 문전으로 센터링했다. 문전엔 이미 올리사데베, 크리샤워비치, 코즈민스키, 카우즈니 등이 공을 쏘아보고
있었으며, 최진철, 홍명보, 현영민, 송종국, 유상철, 이을용이 이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공격수 넷에 수비수 여섯. 공격수들의 발과 머리보다
김병지의 펀칭이 빨랐다. 하지만 펀칭된 공은 카르반 앞으로 날아갔다. 가슴으로 골을 트래핑한 카르반은 오른발로 슛을 날렸다. 임팩트된 공은
수비수 사이를 뚫고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골을 내준 후 히딩크 감독은 최태욱, 설기현, 이을용을 빼고 윤정환, 황선홍, 이영표를 투입시켰다. 윤정환에게 플레이메이커를 맡김으로써
공격의 변화를 주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경기가 풀리지 않았다.

인저리타임 5분이 주어진 상황, 경기는 이대로 끝나는 듯 했다. 한국팀의 패색이 짙은 가운데 마지막 찬스가 다가왔다. 공을 잡은 이영표는
특유의 좌우훼이크 동작으로 수비수를 가볍게 제치며 문전을 향했다. 크워스와 발도흐가 이중으로 막아서자 오른쪽 윤정환에게 공을 가볍게 밀어주었고,
윤정환은 다시 이영표에게 공을 건넸다. 윤정환과 이영표는 환상적인 2대1패스를 선보이며 골문을 압박해 들어갔다.

골문과 각이 없어진 이영표는 낮게 센터링했고, 오른쪽 측면에서 황선홍이 수비수를 헤집으며 그림같은 다이빙 헤딩슛을 날렸다. 공이 땅에 떨어지기
전, 골키퍼 두덱의 고개가 먼저 꺾였다. 경기장엔“대한민국” 이 울려 퍼졌고, 황선홍의 얼굴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6월 10일 대구, 한국 VS 미국


오후 3시 30분. 대구월드컵경기장에 붉은 유니폼을 입은 6만여 관중이 빼곡이 들어찼다. 초여름 햇살에 얼굴을 발갛게 그을린 관중들은
흘러내리는 땀을 훔쳐내며 목청껏 ‘코리아! 파이팅’을 외쳤다. 폴란드전 2 대 2 무승부. 마지막 월드컵 출전이 될 가능성이 높은 황선홍과
홍명보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안정환,
첫 승 쏘아 올리다


드디어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양 팀 모두 “꼭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몸이 무거워 보였다. 경기초반, 미국은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과시했다. 플레이메이커 레이나의 발끝에서 시작되는 공격은 도노번과 매티스의 날카로운 슈팅까지 연결됐다. 이에 반해
한국은 속공을 통해 슛 기회를 노렸다. 전반 44분 미드필더 스튜어트가 전방으로 달려가는 도노번을 향해 공을 찔러줬다. 도노반은 오른쪽
구석으로 공을 몰다가 문전으로 센터링했다. 수비수들이 미처 공을 걷어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번개처럼 달려들어 온 매티스가 발리슛을
시도했다. “철렁.” 골문이 갈렸다. 6만여 관중은 일순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선수들을 독려하던 히딩크 감독이 털썩 주저앉았다.


선취점을 내준 한국 선수들의 몸놀림이 후반 들어 빨라졌다. 후반 7분 안정환이 중거리 슛을 시도했으나, 아슬아슬하게 골문 위로 넘어갔다.
후반 18분에는 유상철의 헤딩슛이 골키퍼 프리델에게 막혔다. 한국팀의 일방적인 공세에도 불구하고 골문은 열리지 않은 채, 경기는 후반 30분을
넘어 이제 종반으로 치달았다. 축구해설가 신문선 씨가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재를 언급하는 순간, 최태욱이 오른쪽 코너로 공을 몰아 갔다.
볼을 멈추고 방향을 바꾼 최태욱은, 골대를 향해 달려오는 황선홍에게 공을 연결했다. 황선홍이 골대 왼쪽 모서리에서 강한 슛을 날렸다. “골!
골이에요. 황선홍! 드디어 해결사 노릇을 제대로 해 냈어요.” 신문선 씨 특유의 흥분된 목소리와 함께, 붉은 악마의 함성소리가 경기장에
메아리쳤다.

종료 시각이 다가오자, 관중들이 전광판 시계를 쳐다보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남은 시간은 인저리타임 1분. 필드중앙까지 치고 나온 최종수비수
홍명보는 적진 중앙 깊숙이 침투해 있는 안정환에게 마지막 공격을 맡겼다. 아구스를 등지고 공을 낚아 챈 안정환은 골대 왼쪽 모서리로 달렸다.
각도를 줄이기 위해 골키퍼 프리델이 뛰쳐나왔다. 안정환은 비어있는 골문을 힐끗 쳐다본 후, 왼쪽 모서리로 침착하게 공을 차 넣었다. 공은
골대 그물을 갈랐고, 프리델은 얼굴을 감싸며 쓰러졌다. 관중석은 태극기로 물결쳤다. 관중들의 함성에 종료를 알리는 휘슬소리조차 묻혀 버렸다.


6월
14일 인천, 한국 VS 포르투갈


최소한 비기기만 해도 16강이다. 폴란드 전 무승부, 미국전 승리로 한국은 1승 1무의 상황이었다. 상대팀인 포르투갈도 의외로 미국 전에
비겨 1승 1무 동률이었지만, 골득실에서 한국에 1골 차로 앞섰다.

그러나 1무 1패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과 폴란드로서도 희망은 있었다. 만약 한국이 포르투갈에게 1골 차 이상으로 지고 미국이 폴란드를 2골
차로 이기면 미국이, 폴란드가 미국을 3골 차로 이기면 폴란드가 진출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한국으로서는 루이 코스타와 루이스 피구,
콘세이상이 이끄는 막강 화력의 포르투갈을 맞아 최소한의 실점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2대1
패배, 그러나 승리했다”


히딩크의 승부수는 4-4-2 포메이션으로 수비라인을 보강하고, 역습을 취하는 것이었다. 홍명보, 최진철, 김태영 등 노장 수비수와 함께
젊고 힘이 좋은 미드필더 김남일을 수비로 돌려세웠다. 또 지칠 줄 모르는 ‘기관차’ 이영표를 왼쪽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 오른쪽 공격수로
나설 포르투갈의 새 희망 콘세이상의 1차 저지선이 될 것을 특명으로 던졌다. 안정환이 유상철보다 약간 앞선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오른쪽
수비형 미드필더는 송종국에게 맡겨졌다. 아직 세계적인 수비는 아니라고 평을 받는 포르투갈의 수비를 뚫을 창은 ‘황새’ 황선홍과 ‘독수리’
최용수였다.

20시 30분 드디어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고 한국팀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황선홍이 재빨리 볼을 뒤로 돌리고, 안정환이
드리블하며 공간을 침투하려다 여의치 않자 뒤로 돌린 볼을 홍명보가 깊숙이 찔러준 볼, 황선홍이 달려들어가며 ‘슛’. 그러나 왼쪽 골포스트를
살짝 비켜갔다. 축구종가 잉글랜드의 전형적인 킥앤러시 재현이었다. 구토를 중심으로 한 포르투갈의 수비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포르투갈의 반격은 시작됐다. 피구가 이리저리 살피다 루이코스타에게 밀어준 볼을 왼쪽에서 돌아나가던 파울레타가 침착하게 오른쪽 상단 골모서리를
향해 감아차기. 몸을 날린 김병지의 선방이었다. 포르투갈이 공격의 주도권은 쥐었으나 한국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약간의 소강상태도 없이
이어지던 전반전, 양팀은 득점없이 비겼다.

후반, 한국은 몸놀림이 좋지 않은 최용수 대신 이천수를 집어넣었다. 용병술은 적중했다. 후반 4분, 중앙 돌파를 시도하던 안정환이 우측라인을
따라 올라오는 송종국에게 밀어준 볼은 지체없이 골문쪽으로 낮게 센터링됐다. 대시하던 이천수는 발군의 스피드로 상대 수비수 루이 조르제보다
앞서 나갔고, 달려 들어오는 골키퍼 리카르도를 제치며 가볍게 밀어 넣었다. 순간 경기장은 떠나갈 듯한 함성이 퍼졌다. 이천수는 선수단쪽으로
달려가며 특유의 도전적인 골세레모니를 퍼부었고, 히딩크는 오른 주먹을 불끈 쥐며 치켜올렸다.

기쁨은 잠시였다. 포르투갈의 중흥을 이끈 ‘황금 세대’(Golden Generation)는 3-5-1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미드필더의 수적우위로
한국을 압박, 골을 내준 지 단 2분만에 우측을 돌파한 콘세이상이 동점골을 집어넣었다. 피구의 패스는 정확했고, 김남일과 최진철의 틈을
파고든 콘세이상은 빨랐다.

이후 한국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번번이 패스는 차단되고, 수비는 갈팡질팡했다. 히딩크는 이영표를 이을용으로, 안정환을 최성용으로 대체하며
변화를 꾀했지만 후반 40분, 루이 코스타의 백패스를 받은 피구의 중거리슛에 무너지고 말았다. 김병지가 방향을 잡았지만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 이상 골을 허용한다면 월드컵 16강의 꿈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선수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 무기력한 플레이가 계속됐다.
그러나 한국에는 홍명보가 있었다. 그는 온 몸을 던지며 상대를 막아내고 슛을 차단했다. 그리고 경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휘슬은 울렸지만 한국 선수 누구도 필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초조한 듯 했다. 같은 시각 대전에서 시작한 폴란드와 미국의 경기
결과가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이었다. 30초쯤 흘렀을까? 경기장 한 구석에서 “와”하는 함성이 울려퍼졌다. 폴란드의 1 대 0 승. 선수들은
얼싸안았고, 히딩크는 그제서야 올리베이라 감독과 악수를 주고받았다.

한국의 월드컵 5전6기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원순 기자 blue@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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