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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수소리에 유랑생활 힘겨움 다 씻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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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소리에 유랑생활 힘겨움 다 씻겼죠”


중요무형문화재 3호 꼭두각시놀음 박계순







“지금 죽어도 후회는 없어요. 팔도강산 방방곡곡 구경 안 해 본
곳이 없으니까.” 중요무형문화재 3호 남사당패의 여자 꼭두쇠 박계순 선생(68)은 19살 때 남사당패에 합류한 이후, 전국은 물론 세계
각국을 떠돌며 공연을 펼쳐왔다.

그 많은 세월을 꼭두각시놀음에 쏟았으니 대사가 줄줄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싶지만 평생을 해도 ‘도’를 트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타고난 총기가 없고, 노력하지 않으면 경지에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다. 북 소리만 나면 착착 감기는 대사들을 저절로 쏟아내는 선생은 꼭두각시놀음의
독보적인 존재가 된 비결을 그저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박첨지놀음에 평생 반해 살아왔어요. 너무 좋았기 때문에 힘들어도 힘든지
모르고 계속 할 수 있었죠.”



민중의식의 각성제, 남사당놀음

남사당놀이는 신라시대 초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민중오락을 제공하던 유랑 연예집단을 남사당패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구전되는
남사당놀이를 연마해 전국을 떠돌며 연희를 펼쳤다. 남사당패는 사회에서 격리된 상태에서 자기들만의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내부 조직은 꼭두쇠(단장)밑에
곰뱅이쇠(기획), 각 연희분야의 뜬쇠(조장), 수련생, 삐리(초보), 잔심부름과 패거리들의 장비를 운반하는 등짐꾼 등 약 40∼50여명으로
이루어졌다. 대부분 가난한 농가 출신 또는 고아들로 구성됐지만 규율은 엄격했다.

이들은 당시 사회에서 천대받던 한과 양반사회의 부도덕성을 놀이를 통해서 풀고 비판하며 민중의식을 일깨우는 역할도 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놀이는 풍물(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춤), 덜미(꼭두각시놀음) 등이다. 이 중 남사당놀이의
대표적 연희이자, 마지막 순서인 꼭두각시놀음은 현재까지 전래된 유일한 민속 인형극이다.

1964년 ‘꼭두각시놀음’이라는 이름으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받은 이래 명칭이 굳어졌지만, 원래 연희자들 사이에서는 박첨지놀음, 또는
덜미로 불렸다. 덜미란 ‘목덜미를 잡고 조종하는 인형’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꼭두각시놀음의 연희시간은 두 시간 내외로 등장인물, 동물,
도구의 수는 무려 40여 종에 이른다. 해설자를 겸하는 주인공 박첨지와 박첨지의 본부인 꼭두각시, 박첨지의 조카인 홍동지, 박첨지의 첩인
덜머리집 등이 주요 인물이다. 구성은 2마당 7거리로 되어 있으며 기득권층의 비판과 풍자가 주제다. 가부장제와 양반지배층을 비난하고 더불어
서민층이면서도 민중의식이 얕은 부류에 대한 조롱이 보이는 것이 독특하다.


무릎장단 치면서 어깨너머로 배워

박 선생이 꼭두각시놀음을 만난 것은 19살 때 충청북도 제천 장에서였다. 경남 진양군 대곡면 출생인 선생은 남사당놀음을 구경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농사꾼의 딸이었다. 친척집에 갔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남사당놀음에 홀린 선생은 그 자리에서 진로를 결정짓고 말았다. 어린 나이에
남사당패에 들어간 선생은 힘겹게 기능을 전수 받았다. “대본도 없었고 체계적인 교육방법도 없었어요. 별 수 있겠어요, 30명이 넘는 식구들
빨래를 전부 하면서 고수들을 붙잡고 가르쳐 달라고 졸랐죠”

남사당놀음 전부가 매력적이었지만, 선생은 꼭두각시놀음이 특히 좋았다. “맛깔스러운 재담과 인형의 재미있는 행동, 뭐라고 꼬집기 힘들죠.
다 좋았어요.” 선생은 창법이 특이하고 재담이 많아 습득하기 까다로운 꼭두각시놀음에 끌렸다. 무릎장단 치면서 어깨너머로 어렵게 배워야 했지만,
밤낮없는 노력으로 1년만에 공연에 나갈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게 됐다.

22살 때, 남사당패의 총지휘자였던 남편 남운룡 선생과 결혼 이후, 선생은 놀이에 더 욕심이 생겼다. 욕심만큼 솜씨도 발전했다. 재담은
더욱 걸죽해 졌고, 인형의 움직임도 점차 흥이 넘쳤다. 박수소리도 더욱 커졌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경제적 어려움도 많았고, 유랑생활이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선생은 모여든 관중들과 박수소리만 들으면 저절로 힘이 솟았다.

남사당패는 천민으로 멸시의 대상이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마땅한 오락이 없던 민중들에게는 반가운 존재였다. 가는 곳마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고, 온갖 음식에다 따뜻한 잠자리에 돈까지 쥐어주는 등 극진한 대접을 받을 때가 많았다. “고을마다 ‘쪽지은 아줌마 나와’라며 날 찾았죠.
이래봬도 젊었을 땐 고왔거든요”라며 선생은 당시를 즐겁게 회상했다.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해외공연도 많았는데, 외국인들의 반응은 더욱 열광적이었다. 공예품과는 달리 움직이고 참여할 수 있는 놀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높았다. 뒤풀이 때는 손을 맞잡고 춤도 같이 추었다. 선생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나와 남사당놀음으로 고국의 향수를 달래던 동포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민족의 뿌리인 민속놀이를 적극적으로 보존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다고 한다.



“시대 변해도 민족 흥취 변하지 않는다”

꼭두각시놀음은 일제시대 때 명맥이 끊어질 뻔한 것을,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계기로 ‘사단법인 민속극회 남사당’이 전수사업을 벌여오고
있다. 선생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80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받았다. 동시에 ‘민속극회 남사당’의 회장을 역임하면서 남사당놀음의 대중화와
계승에 앞장서 왔다.

아들 셋이 기능보유자이거나 국악전공자이고, 친정조카와 손자, 손녀까지 모두 남사당에 소속되어 남사당놀음의 계승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선생은 자녀들과 제자들이 민속놀이를 잘 이어가고 있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나야 얼마나 살겠어요. 기껏해야 1년, 길어야 5년이겠죠.
그저 내가 없더라도 제자들이 잘 이끌어갔으면, 오직 그 바람 밖에 없어요.”

민중과 함께 웃고 울었던 남사당놀음은 지금도 각종 공연으로 일상에 지친 도시인들을 위로하고 있다. 선생은 “시대가 변해도 민족의 흥취는
변하지 않는 법이죠. 민족의 정서를 지키고 세계에 알리는 것이 후손들이 할 일 입니다”라며 전통문화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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