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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재록 칼럼]망령되이 일컫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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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서 ‘망령되다.’는 것은 ‘늙거나 정신이 흐려 말과 행동이 정상을 벗어난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경건치 못하며 허망하게 사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십계명 중 제 3계명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왜 죄일까요?

첫째,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과 만물의 의미를 고찰한다는 철학자들 중 “신은 죽었다.”, “하나님은 없다.”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시편 53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천지 만물을 보면 그 안에서 얼마든지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롬 1:20).

또한 수많은 전도자가 살아 계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 알려 주지요. 그런데도 스스로 마음을 강퍅하게 함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 하나님에 대해 함부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죄 없다 하실 수 있겠습니까.

둘째,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홀히 여긴다.’는 것은 하찮게 여기며 우습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감히 창조주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도 죄 없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시편 96:4에는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했고, 출애굽기 33:20에는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할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크고 위대한 분이십니다(딤전 6:16).

한때 이스라엘 사람은 성경에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그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려고 ‘아도나이’ 곧 ‘나의 주님’이라고 읽는 등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삼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무익한 농담을 하면서 성경 구절을 엉뚱하게 인용하는 것을 봅니다. 이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하셨기 때문입니다(요 1:1).

또한 자기 생각 속에 떠오른 것을 "하나님께서 음성을 주셨다. 성령께서 주관하셨다."며 하나님 이름을 거론하는 것 역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일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거짓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거짓 선지자들이 종종 하나님 말씀 또는 예언이라고 선포해 백성을 미혹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18:20에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감히 하나님 이름을 사칭해 거짓말할 때 그 죄는 사형에 해당하며 이는 스스로 심판을 자초하는 것입니다(계 21:8). 또한 하나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고 지키지 않는 것도 하나님 이름으로 거짓말하고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레 19:12).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 중에서도 하나님 이름으로 거짓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컨대, 하나님 역사가 아닌데도 “기도하다가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이루셨다.”며 습관적으로 말하는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의 자녀라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아야 하지만, 하나님 자녀라고 무조건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확실히 분별하지 못할 때는 함부로 단정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죄를 버리고 마음을 진리로 채워나감으로 정확히 성령의 음성을 들어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출애굽기 20장 7절) 글: 이재록 목사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GCN방송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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