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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커버스토리】 K반도체 골든타임, 반도체 특별법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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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 중 · 일 반도체 지원 강화
주52시간제 예외 경쟁력 강화 필요 vs 장시간 노동 조장
한국 R&D투자 경쟁국에 비해 뒤처져

[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미래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AI’ 가 될 것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미국발 통상전쟁, 중국발 딥시크 쇼크 등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은 전 세계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정부·여당은 소위 ‘반도체 특별법’과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통해 반도체 경쟁력 확보를 지원하고자 하나 여야 이견으로 법안처리는 요원한 상황이다.

 

중국의 물량 공세 속 경쟁국 지원 강화

 

중국 메모리 업체들이 자국 정부의 보조금에 힘입어 구형 D램 가격을 대폭 낮추고 있다. 창신메모리(CXMT)의 경우 구형 D램인 ‘DDR4’를 최근 반값에 내놓고 있다. 지난해 11월 PC용 D램 범용제품의 평균 고정 거래가격은 4개월 만에 35.7% 하락했는데 올해 하락 폭은 더 커질 수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매출을 이끌던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도 수요 위축으로 올 1분기 가격이 최대 10% 하락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중국의 범용 메모리 물량 공세가 이뤄지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물량 조절 만으로는 가격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한다.

 

경쟁국들의 지원 정책도 강화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을 육성 중인 일본, 독일, 중국 등은 최근 기업 대상의 보조금 지원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달 말 반도체 산업에 10조 엔(91조 원)을 지원하는 종합 경제대책을 발표했다.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R&D) 및 전력 반도체 양산 투자에 보조금 6조 엔(56조 원)을 지급한다. 민간 대출 출자·보증에는 4조 엔(37조 원)의 금융 지원을 한다. 자국의 대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으로 키우고 있는 라피더스에는 별도의 세금 우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독일도 지난달 최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 건설에 보조금을 최대 20 억유로(2조9,000억 원)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독일 경제부는 이를 통해 웨이퍼 원판 생산 및 마이크로칩 조립 등 10~15개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중국도 최근 역대 최대 규모인 64조 원의 반도체 투자기금 ‘빅펀드’를 조성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반도체를 육성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우리 정부는 직접 지원보다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등 반도체 전 분야에 총 14조원의 정책 금융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중 4조2,500억 원은 산업은행의 반도체 저리 대출 프로그램으로 제공된다. 1,200억원 규모의 신규 반도체 생태계 펀드를 조성하여 연내 200억원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상생펀드 투자도 추진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기업 만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업계와 정계 간 네트워크가 더 중요해졌다”고 전한다.

 

 

K반도체 골든타임, 반도체 특별법·K칩스법

 

정부·여당은 이러한 경쟁 상황에서 초격차를 유지하고자 반도체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특별법은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논의중인 반도체 특별법의 주요내용으로는 ▲대통령 직속 반도체산업발전특별위원회 설치로 규제·인허가·예비타당성 조사 패스트트랙 도입 ▲전력 및 용수지원 등 인프라·투자환경 조성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등 산업 육성과 공급망 내재화 촉진 ▲반도체 보조금 지원 재정 지원 근거 마련 ▲반도체 연구개발(R&D)인력 주52시간제 적용 대상 예외 등이다.

 

K칩스법은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세제혜택으로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현재 국내 반도체 기업은 설비투자에 대해 최대 8%의 세액공제를 받고 있으나, 미국(25%)이나 일본(20%)에 비해서는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반도체 기업의 통합투자세액공제율이 5%포인트 상향돼 대·중견기업은 15%에서 20%로, 중소기업은 25%에서 30%로 높아지게 된다.

 

K칩스법은 지난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최종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반도체 특별법의 주52시간제 예외 적용이다. 정부와 노동계, 여·야간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

 

주52시간제 예외, 경쟁력 확보 위해 필요

 

반도체는 설계에서 시제품이 나올 때까지 7~8개월, 길게는 1년까지 걸린다. 이 기간에 R&D(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데 현행법은 R&D 연장 근로 허용 기간이 3개월에 그치고 있다. 업계에서 주52시간 예외를 주장하는 이유다.

 

전체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늘리자는 게 아니라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여 R&D 부문만 예외를 두자는 취지다.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 일본, 대만 등 경쟁국 연구자들은 무제한 근무를 허용해 밤을 새워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뒤처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이 2018년 주52시간제를 도입하고서 지난 6년8개월 사이 해외 경쟁사들은 따라잡을 시간을 벌었고, 한국의 반도체의 위상이 위태로워졌다고 말한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 “반도체 특별법은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 52시간 예외에 대해서도 융통성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굉장히 절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 장관은 “반도체 특별법을 통과시키자는 것이 근로환경과 근로조건을 뒤집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는 첨단산업 중 우리나라 경제에 핵심적인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조금 더 융통성 있는 근로조건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 중 상위 5~10% 고소득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전제로 근로자가 ‘합의’했을 때 주 52시간 적용을 예외로 하자는 취지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도 반도체 특별법에 근로시간 특례 도입을 희망하고 있다. 협회는 메모리 등 선도분야는 기술 초격차, 설계·소부장 등 추격 분야는 기술자립을 위해 연구개발 및 생산환경의 충분한 유연성 부여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행 제도들은 복잡한 반도체산업 생태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제도 도입을 위한 전제조건, 행정 절차가 복잡하다”면서 “결과적으로 모든 제도가 주52시간 근로를 기준으로 일부 변형 운영이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어 기업의 유연성 확보를 위한 실질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밝혔다.

 

최근 한국을 찾은 루크 반 덴 호브 아이멕(imec)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8일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벨기에는 주40시간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아이멕 연구원들은 보통 이보다 더 많이 일한다”고 밝혔다. 아이멕은 유럽 최대 종합 반도체 연구소로 첨단 반도체, 인공지능(AI), 5G 등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삼성전자 출신인 고동진 국회의원은 지난 13일 대정부질문에서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노동 개혁과 규제 완화가 민주당과 민주노총의 반발 앞에서 번번이 무산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 세대는 암울한 현실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시간 노동 조장, 기본권 침해

 

반면, 노동계의 반발은 거세게 이어지고 있다. 주52시간 적용 예외를 담은 ‘반도체 특별법’이 장시간노동을 조장하고 헌법상 원칙도 훼손한다는 것이다. 양대노총이 참여하는 ‘재벌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과 참여연대,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및 김종민 무소속 의원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열고 부작용을 강조했다.

 

발제를 맡은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주당 52시간 혹은 55시간 이상인 경우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는 많다”며 “몰아서 일하는 게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사람들도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하나 변호사도 반도체특별법이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2월 주52시간 근로시간 상한제도를 합헌 판단하면서 장시간 노동이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침해하고 업무상 재해 위험을 증가시키며 여가시간 부족으로 인한 인격발현 제약, 생산성 저하 등 복합적 폐해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며 “이러한 폐해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산업경쟁력이라는 공익이 근로자의 건강권과 휴식권 보호라는 기본권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혁진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정책부장은 “한국사회는 여전히 노동시간에 대한 명확한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단호하고 명확한 원칙이 필요하다”며 “고소득 R&D 분야 노동자는 노동시간 규제의 예외가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들도 사람이다. 보호가 필요한 노동자와 불필요한 노동자를 구분하겠다는 논리는 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 서로 네 탓 공방

 

여야는 지난 1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에서 반도체 특별법을 합의하는 데 실패했다. 국민의힘은 반도체 특별법에서 주요 연구개발 분야 근로자에 대해 주52시간제를 예외 적용하는 특례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일단 해당 조항을 제외하고 업계 지원 방안을 담은 내용만으로 법안을 우선 처리하자고 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결국 반도체특별법에서 주52시간근로제 예외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표가 외치고 있는 ‘친기업’, ‘성장’은 거짓말””이라며, “반도체 연구 개발은 엔지니어의 근로시간 유연성이 필수적이다. 경쟁 국가는 밤낮으로 뛰고 있는데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만 민주당 때문에 주52시간근로제에 묶여 있다. (민주당이)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절실한 요청을 묵살해버린 것”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민의힘의 무책임한 몽니로 국가의 미래가 걸린 산업의 경쟁력이 발목 잡히고 말았다”고 반발했다.

 

이 대표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반도체법 소위 통과 무산은 “주52시간근로제 예외 조항 없이는 어떤 것도 합의할 수 없다는 국민의힘의 반대로 불발된 것”이라며, “반도체 특별법에서 중요한 것은 위기에 봉착한 반도체산업을 살릴 지원 조항들이며, 여기에는 여야 모두가 이미 합의했다. 위기에 놓인 반도체산업과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견 없는 부분부터 조속히 처리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R&D투자 경쟁국에 비해 뒤처져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5일 EU 공동연구센터가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2024년 R&D 투자 스코어보드’의 2000대 기업 명단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국은 8위(40개사)에 올라 지난 2013년 대비 54개에 비해 14개사 감소했다. 한국은 최근 10년간 투자액이 2.2배 늘었지만, 대만(2.7배)보다 증가 속도가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 기업이 681개사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2위 중국(524개사)이 급성장하고 있다. 이어 ▲일본 185개사 ▲독일 106개사 ▲영국 63개사 ▲대만 55개사 ▲프랑스 50개사 순이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중국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의 등장에서 보듯이 산업별 선도기술을 둘러싼 기업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이라며, “우리도 국회에 계류 중인 첨단 R&D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상향 및 일반 R&D에 대한 공제율 상향 등 세제지원을 통해 연구개발을 촉진하고, 동시에 반도체특별법과 같은 선제적이고 과감한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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