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김성훈 기자] 한미 관세협상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상호 관세율 15%로 큰 틀에서 타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약 70개 경제주체에 대한 상호관세 발표한 지 4개월 만으로 일각의 ‘굴욕협상’ 지적에도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상당부분 해소됐다는 측면에서 대체로 선방했다는 평가다. 다만 향후 있을 세부 협상과정에서 우리 관점이 보다 반영되도록 치밀하고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한미 상호관세율 25% → 15% 타결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상호관세율 15%는 미국이 일본과 유럽연합(EU)과 합의한 것과 같은 수준이다.
백악관이 이날 공개한 행정명령 부속서를 보면 한국은 관세율 15%를 부과받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에 처음 발표한 한국의 상호관세율은 25%였다.
이미 15% 미만의 관세가 적용되고 있는 제품은 합계 세율이 15%가 되도록 조정되며, 15% 이상의 관세가 붙는 일부 제품은 상호관세가 면제되고 기존 관세율이 유지될 전망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상호 관세와 자동차 품목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대신 미국에 3,500억 달러(약 487조 원) 규모의 전략산업 투자 펀드를 조성하고, 1,000억 달러(약 140조 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한미 관세협상 타결과 관련해 “관계 부처는 국민 우려를 면밀히 점검하고 우리의 핵심 이익을 지키기 위한 후속 조치에도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이번 협상으로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평가된다”며, “큰 산은 넘었지만 국제 통상 질서 재편은 앞으로도 계속 가속화될 것으로 국익 중심의 유연한 실용외교를 통해 급변하는 대외환경의 파고를 슬기롭게 넘어가야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한국과 완전하고 포괄적인 무역합의에 도달했다는 것을 발표하게 돼 기쁘다”며, “미국은 (한국 수출에서)관세를 부과받지 않을 것이다. 오늘 참석해 준 무역 대표단에 감사하다. 그들을 만나고 그들 국가의 위대한 성공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그간 구윤철 경제부총리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은 상호관세 유예 만료일에 앞서 미국과 무역합의를 이루기 위해 협상에 주력해 왔다.
김 장관과 여 본부장은 워싱턴DC는 물론 스코틀랜드까지 따라가 하워드 러트닉 장관과 여러 차례 회담했고, 구 부총리도 러트닉 장관을 만났다.

MASGA 카드 적중...추가 농산물 개방 없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3일 한미 관세협상에서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카드가 타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이날 KBS 1TV ‘일요진단’에 출연해 “사실 조선이 없었으면 협상이 평행선을 달렸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실장은 마스가 프로젝트와 관련해 “수리 정비나 인력 양성 프로그램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미국은) 한국이 그렇게 다방면 연구가 돼 있다는 걸 깜짝 놀랐다. 산업부가 부처 전체 역량을 총동원해 혼연일체로 방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협상 과정에서는 정부뿐 아니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재계 총수를 비롯한 민간의 노력도 큰 도움이 됐다고 김 실장은 전했다.
구 부총리는 우리나라가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이후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밝혔다.
구 부총리는 “국민은 관세 협상으로 전 품목에 대해 한미 FTA의 실효성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신다. 0% 관세를 면제받던 부분에 대해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로) 15%p가 올라가는 것은 맞다”면서도, “(미국이 종목별 관세를 부과하는) 특정한 품목을 제외하고는 한국이 FTA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말씀을 드리겠다”고 부연했다.
구 부총리는 이번 관세 협상과 관계없이 한미 FTA 효과가 지속되고 분야에 대해 “미국 쪽에서 적자가 큰 자동차, 철강, 반도체, 의약품 등 특정한 부분은 미국 무역진흥법에 의해서 품목별로 관세를 부과하도록 돼 있다”며,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품목에 대해서는 한미 FTA가 효과가 살아있다고 판단한다”고 답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농산물 추가개방은 없다. 농산물 시장개방은 이번 한미 간 관세 협상 합의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한미 관세 협상을 통해 합의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와 관련해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구조라는 의혹에 대해선 상식에 맞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 장관은 “만드는 과정 중에 있고, 수익 배분을 9대 1로 간다는 건 기본적인 상식에 안 맞는 이야기”라며, “우리 국익에 맞도록 협의해 나가겠고 2,000억 달러에 대해서도 양국의 서로 아픈 부분을 보완해 가는 방향으로 협상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이 90%를 가져간다면 재투자를 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국익에 반하지 않도록 협상 과정에서 면밀하게 협상해 나갈 것”이라고 부연했다.

굴욕협상 vs 최대한 소나기 피해
야당의 대미 관세 협상이 ‘굴욕 협상’이었다는 지적에 구 부총리는 “동의할 수 없다. 한국은 협상 기간이 짧았다. 국민이 보시기에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소나기를 피했다”고 말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동차 관세협상 평가와 과제> 간담회에서 “정부·여당에서 대미 관세 협상이 25%에서 15%로 합의돼서 잘했다는 자화자찬이 나오는데 이는 배부른 관전평”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관세가 0%였고 일본과 EU는 2.5%를 적용 받아왔다. (이번 협상으로) 동일하게 15%가 적용되는 건 2.5%포인트만큼 손해를 보고 들어가는 것”이라며,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는 한미 FTA로 관세가 0%였고 일본은 2.5%였다. 일본과 똑같이 관세 15%가 된 것에 대해서 선방했다고 자화자찬하는 것은 무리”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의 FTA 체결 노력으로 관세가 0%였을 때 광우병 선동이나 굴욕외교라고 반대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15% 관세로 국익을 챙겼다며 자화자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조승래 민주당 의원은 “이번 협상에서 대체적으로 최악은 면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것 같고 선방했다는 평가도 있다”며, “이번에 관심을 받았던 부분 중 하나가 소위 말하는 ‘마스가’인데 제가 보기에는 공직자들의 상당한 창의성이 발휘된 아이템”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당 안도걸 의원도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밖에 안 됐는데 일본이나 유럽연합(EU) 등 주요 경쟁국과 유사하거나 더 나은 조건을 얻어냈다고 보여진다”며, “경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점도 크다”고 말했다.
구 부총리는 “만약 그날 타결이 되지 않았을 경우 이틀이 지나면 (관세가) 25%로 가야 하는 중압감도 있었다. 일본과 EU는 15%인데 우리는 25%이면 큰일이라는 마음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언급했다.

후속협상 ‘팀코리아’로 민관이 머리 맞대야
특히 이번 관세협상에서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 조성이라는 큰 틀의 합의만 했을 뿐 구체적인 방식은 정해지지 않아 우리의 계산보다 미국에 더 많은 이익을 내주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 부회장은 지난 5일 이번 협상 결과에 따른 영향과 향후 대응방향을 전망하는 <진화하는 한미 경제동맹: 관세를 넘어 기술 및 산업협력으로> 좌담회 개회사를 통해 “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촉박한 시간 속에서 우리 협상단의 창의적인 노력으로 주요 선진국과 유사한 수준에서 협상이 마무리됐다”며, 트럼프2기 출범 후 지속되던 불확실성이 일단락된 것으로 평가했다.
한국 통상전문가들은 이번 협상결과와 함께 향후 대응 방향을 점검했다. 이번 협상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큰 틀에서의 합의를 통해 지속되던 불확실성을 해소하여 일정 부분 시장불안을 잠재운 것이 성과”라 평가하고 향후 대응을 조언했다.
유명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前통상교섭본부장)는 “이제는 세부 협상에서 미국과의 상생협력 구조를 만들면서 우리 기업의 실질적 이슈를 해소할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미국의 고관세와 보호무역주의가 뉴노멀이 된 교역환경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시장 다변화 전략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나아가 “우리 기업들이 미국 투자에 집중하며 국내 산업 공동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정부가 적극적 규제완화 정책을 통해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민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원장(前무역위원장)은 “현 단계에서 실질적 영향 판단은 이르다. 실질적인 협상은 이제 시작 단계로, 핵심사안의 해석과 이행 과정에서 우리 측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치밀하고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前제네바무역대표부 대사)은 “향후 정상회담 및 문서화 과정을 통해 방위비 분담, 주한미군 역할 조정 등 안보 분야에 대한 추가 논의가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한 전략적 대비가 필요하다”며,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 조성 과정에서도 한미 간 입장 차가 존재하는 만큼, 정부가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갖고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봉만 한경협 국제본부장은 “트럼프 정부 출범부터 지속되던 가장 큰 틀의 불확실성이 제거된 만큼 향후 세부 협상을 통해 보다 많은 실익을 얻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며, “세부 협상 준비 시 팀코리아로서 민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정부는 대미 진출기업을 중심으로 기업의 목소리를 최대한 경청하고 우리 기업들은 국익의 관점에서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