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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

[김영두 골프이야기] "누구라도 언제나 잘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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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내린 스포츠 GOLF & SEX, 누구라도 언제나 잘 할 수는 없다.]

 ***2홀: 파5. 464미터. 핸디캡 8. 우측으로 여우골이라 불리는 골짜기가 있음. 티샷에 슬라이스가 걸려 여우골에 빠지면 최소한 2타는 잃을 각오를 해야 함. 훅이 걸릴 경우, 단타자의 공은 산에서, 장타자의 공은 벙커에서 모임. 기량에 맞추어 목표지점을 설정할 것.***

경희는 이 홀에서 이글을 한 적이 있다. 드라이버로 티샷,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는 3과 1/2이라는, 로프트각도가 20도인 페어웨이 우드로 쳤다고 한다. 세 번의 샷이 모두 잘 맞았다. 공을 잃어버린 줄 알고 그린 너머의 풀숲까지 헤매다가 혹시나 하고 구멍 속을 굽어보았더니 공이 들어있었다. 난생 첫 이글에 난생 처음으로 80대의 타수를 기록했다. 이 홀에 오면 경희는 그 이글의 순간을 현장 중계하듯이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있다. 

“사람에게는 일생에 세 번의 기념할 만한 날이 있다는데, 첫 번째는 태어난 날, 두 번째는 결혼한 날, 세 번째는 죽은 날이래. 난 애들한테 미리 유언을 했어. 나 죽은 날 기억하지 말고, 내가 이글을 하고 90을 처음 끊은 1998년 9월 15일을 제삿날로 정하라고.”

“진정한 골퍼다운 감동적인 유언이구나. 니 유언을 표절해도 된다면, 내 제삿날은 홀인원한 날로 미리 정하고 싶어. 만약에 한다면 말이야.”

원통한 것은, 내가 그 순간에 경희와 같이 있지 못 했음이고 더욱 절통한 것은 나는 아직 이글을 못 해봤음이다. 나에게도 행운이 없으란 법은 없다. 나는 골프라운드를 할 때마다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한 번 한 이글 두 번도 할 수 있으니까 오늘 내 앞에서도 한번 해봐요.”

경희에게 그렇게 말하는 꺽정씨는 이 홀에서도 이글을 해봤을 뿐더러 한 라운드에서 두개의 이글을 잡은 적도 있다. 총30번이 넘는 이글의 경험이 있다니 꺽정씨 앞에선 잘난 척 말고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꺽정씨는 힘자랑으로 실패했던 전 홀을 만회하려는 듯 각단진 틀거지로 마음껏 후려 갈겼다. 인간이 아닌 짐승처럼 쳤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열을 헤아리고 눈을 떴다. 아직도 공은 푸른 하늘에 궤적을 그리며 흰 새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공은 주인의 의도를 아는 걸까. 

내가 만약 공이라면, 저렇게 하늘 높이 올라가서 무엇을 볼까. 우리의 잃어버린 낙원이 보일까. 개미처럼 작아진 인간이 우스워 보일까. 

“이 홀에서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서면 짜릿하게 전율이 와. 이글의 순간이 새록새록 살아나서 그런지 여기선 그 후로 파도 못해봤어.”

경희의 말은 내가 욕심을 버리는데 도움을 준다. 나도 파만 하기로 계획을 세운다. 나는 페어웨이의 중앙을 향해 정렬했다. 내 드라이버는 슬라이스보다는 훅이 잘 걸린다. 여우골로 가기보다는 왼쪽 산 날개에 걸릴 확률이 높다. 

아불싸, 공이 페어웨이를 가로질러 여우골로 똑바로 가고 있었다. 공을 막 치려는 순간 누런 개 한마리가 산 쪽에서 내려오고 있었는데 개를 의식하다가 공을 밀어치고 말았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티잉그라운드를 내려왔다. 

여우골에 들어가서 풀숲을 헤집어보니까, 내공은 개뼈다귀는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소나 돼지의 뼈로 추정되는 희끄무레한 물체 옆에 놓여있었다. 

“최근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의 골프협회측은 골프장에서 땅다람쥐나 마모트 같은 동물들이 서식지나 피난처용으로 파놓은 구멍에 공이 떨어질 경우엔 공을 회수한 후에 프리드롭으로 공의 위치를 정할 수 있다고 결정했답니다.”

내 공이 여우골로 들어가는 것을 본 민호씨는 가방을 부스럭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독립선언문처럼 소리 높여 낭독하는 것은 며칠 전의 신문이었다. 

민호씨는 룰박사이다. 규정집을 훤하게 통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뀌거나 새로운 규정까지 놓치지 않고 습득해서 우리에게 일러주는 사람이다. 

“난 땅다람쥐나 마모트가 어떻게 생긴 동물인지 몰라요. 하지만, 아까 요 앞에서 얼찐대던 개가 먹이를 묻어 놓았다면 동물의 서식지에 해당하니까 드롭해도 되겠네요.”

“잠깐요. 근데 그 규정이 요상해요. 공이 개(犬)가 파놓은 구멍에 떨어진 경우엔 그대로 플레이를 해야 한답니다. 그런 차별을 두는 이유에 대해 개가 파놓은 구멍은 비정상적인 지표면 조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별, 개뼈다귀 같은 게 헷갈리게 하네요. 그럼, 공이 움직이지 않는 범위 내에서 뼈다귀는 집어내도 되지만 드롭은 못한단 말이죠? 근데 외국은 땅다람쥐가 파놓은 구멍이 그리도 많대요?  18구멍에 공 넣기도 힘든데 언제 땅다람쥐 구멍까지 찾아서 공을 넣는담.”

“더 들어보세요. 세인트앤드루스에서는 15세기 이래 골프경기가 치러졌지만 땅다람쥐나 마모트가 목격된 사례는 한번도 없었는데, 그러나 이 지역 골프클럽 관계자인 데이비드릭먼은 골프의 세계화 추세를 감안해 다른 나라의 동물들을 예로 언급한 것이라고 밝혔답니다.”

“미리 딱 못 박아 놓았으니까 서로 멱살잡고 싸우지 말라는 배려가 가상하기도 하네요.“

여우골의 지면과 페어웨이와는 해발고도에서 5미터 이상 차이가 난다. 나는 간신히 두 번에 공만 탈출했다. 나는 꺽정씨가 내려주는 썩은 동아줄이 아닌 견고한 클럽을 잡고 여우골에서 나왔다.

“공치는 소리가 네 번 났는데...”

꺽정씨가 이죽거린다.  

“두 번은 메아리였죠. 민호씨랑 둘이서 지켜보고 있었으면서 딴소리 하지마세요.”

사실 두 번은 메아리가 아니라 빈스윙이었다. 내 우그러진 얼굴을 바라보는 꺽정씨의 얼굴은 환희 그 자체이다.

앞서가는 캐디를 헉헉거리며 따라가는데 청설모 한마리가 자꾸 내 주위를 맴돈다. 곁에 와서 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앞발을 비빈다. 내게 무언가를 구걸하는 몸짓이다. 내 채 가방의 옆 주머니를 발톱으로 긁는다. 

“사모님, 과자 숨겼어요?”

캐디가 청설모의 뜻을 통역한다. 청설모는 캐디와는 한솥밥을 먹는 골프장의 식구라서 친한가 보다. 이따금 찾는 손님과는 의사소통이 안 되어도 식구끼리는 눈빛으로 교감한다. 

“초콜릿 냄새가 풍기나?”

주머니에 들어있던 초콜릿을 꺼내자마자 백에 올라 앉아있던 놈이 앙감질로 건너와 채뜨려 간다. 

“또 올 거에요. 친구들 데리고.”

캐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무에서 망을 보던 다른 청설모가 잽싸게 달려온다. 나는 가방안에 들어있던 남은 초콜릿마저 다 빼앗기고 만다. 숲속으로 사라지는 어미, 아비, 새끼 청설모의 가족애가 심장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자연보호를 다섯 글자로 늘이면?”

꺽정씨가 묻는다. 단란한 청설모 한 가족을 보니까 갑자기 자연을 보호해야겠다는 제법 기특한 생각이 들었나 보다. 

“야, 그거 모르는 사람 어딨냐.”

민호씨도 어디서 주워들은 모양이다. 그러나 냉큼 답을 대지는 않는다. 

“그걸 몰라? 보오지, 왜 만져.”

이럴 땐 아무리 성질이 급해도 한 박자 늦추면 좋을 텐데, 경희는 참지를 못한다. 

“여섯 자이잖아.“

“그럼 가운데 '오'자를 빼세요.”

경희가 방정을 떨었다. 눈을 흘기지 않을 수가 없다. 

꺽정씨는 버디를 놓쳐서 파, 나는 2타를 까먹고 나니 트리플보기이다. 기록표를 들여다보니 내 이름 밑에만 갈매기가 날고 있다. 파는 희망이었고 현실은 트리플보기라니. 아아, 이 치욕적인 타수. 이가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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