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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선거 여론조사, 민주주의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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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 여론조사 결과와 딴판
4.10 총선 선거여론조사, 투표 결과와 오차범위 밖 21%
극단적 진영대결 정치·‘떴다방’ 업체 여론조사 결과 왜곡
조사대상 왜곡·질문 유도·결과 ‘마사지’... 업체도 진영대결
‘밴드웨건 효과’ 도구로 활용... 객관·공정한 샘플 추출 관건

[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명태균 게이트’가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특히, 여론조사업체와 언론, 후보가 유착해 조사 결과를 왜곡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여론조사 공정성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사태가 커지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여론조사 제도개선안’을 마련하는 등 칼을 빼 들었다. 국민의힘도 위법 여론조사 기관을 영구 퇴출시키는 ‘명태균 방지법’을 발의했다. 여론조사의 공정성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당들이 공직후보 추천이나 주요 당직 경선에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하면서 크고 작은 분란이 끊이지 않았다. 위법·탈법 여론조사가 민심이나 당심을 왜곡해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0.16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 여론조사 결과와 딴판

 

최근 치러진 10.16 재보궐선거에서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는 여야 간 최대 접전지역으로 떠올랐다. 전통적으로 국민의힘 ‘텃밭’으로 분류되는데도 일부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오차범위 내지만 이기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꽃’이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의 의뢰로 선거 직전인 지난 7~9일 100% 무선전화면접 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경지 민주당 후보(40.9%)가 윤일현 국민의힘 후보(37.7%)를 오차범위 내에서 이긴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를 놓고 대부분의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양당 접전’으로 판세를 분석했다. 이 때문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경쟁적으로 금정구청장 선거 지원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윤 후보가 61.03%를 득표해 김 후보(38.96%)를 22.1% 포인트 차이로 크게 이겼다. 해당 조사업체는 22대 총선에서도 서울 도봉갑과 부산 해운대갑, 경기 성남분당갑 등 주요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가 앞서는 여론조사를 발표했지만, 이들 지역에서 국민의힘 후보들이 당선되면서 편향성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민주당은 2022년 대선 당시 명 씨 측 의뢰로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반격에 나섰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14일 “명 씨가 여론조사 업체 PNR을 통해 50차례 조사를 했는데, 당시 윤석열 후보가 1위로 나온 결과가 49번”이라며 “다른 업체가 실시한 조사에선 이 대표와 윤 대통령이 엎치락뒤치락했는데, 명 씨가 여론조사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에선 명 씨의 미래한국연구소가 의뢰하고 PNR이 시행한 조사를 두고 “국민의힘 사설 업체였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여론조사 업계에서는 조사 기관을 둘러싼 정치권의 ‘네편 내편’ 공방이 일반 시민들이 특정 여론조사 업체가 편향됐다고 인지하면 실제로 결과도 그쪽으로 쏠린다는 ‘하우스 이펙트’ 효과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적인 낙인이 찍히면 아무리 설계를 잘하더라도 왜곡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우스 이펙트’를 감안하더라도 여론조사의 정확성에 대해 의구심이 짙게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4.10 총선 선거여론조사, 투표 결과와 오차범위 밖 21%


우리나라 선거 여론조사는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와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본격 시도되었다. 선거 여론조사 역사가 170년을 넘어서는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역사가 짧은 편이다. 하지만 국내 정치에서 여론조사는 매우 광범위하게 활용되어 왔다.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의 지지율변화 등의 판세추이뿐 아니라 선거 캠페인 전략과 방향을 정하는데 적극 활용되고 있다. 각 정당의 공직 후보자나 당 대표 등 주요 당직자를 선출하는 데도 반영되고 있다. 그동안 국내 여론조사기관들은 다양한 방법을 도입해 선거여론조사 방법과 이론을 한국적 특성에 맞게 혁신시키면서 선거 예측률을 높여왔다. 또 선거 캠페인에 과학성과 합리성을 불어넣으면서 한국 선거문화의 질적 향상을 유도해 냈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선거 때만 되면 수백 개의 군소 여론조사업체가 난립하면서 조사 결과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사례가 많아졌다. 민심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여론을 조작하는 역기능을 초래한다는 ‘무용론’도 대두됐다. 실제로 국내에서 여론조사의 오류가 많았다. 2000년대 16대 총선 당시 투표마감과 동시에 방송 3사는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야당인 한나라당보다 15석 정도 많이 차지해 제1당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개표 결과는 정반대였다. 한나라당이 민주당보다 16석을 더 차지해 제1당이 되었다. 지난 4.10 총선에서도 여론조사와 투표 결과가 오차범위(8.8% 포인트) 밖으로 벌어진 곳이 21%에 이른다는 분석이 있다. 28% 포인트 차이 난 곳도 있다. 


이렇듯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의 오차범위를 벗어난 결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여론조사와 투표 결과의 차이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여론조사는 조사 대상 모집단을 100으로 놓고 설계한 조사인 데 반해, 투표 결과는 투표 참여자가 모집단 100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체 유권자가 1,000만 명일 때, 이 가운데 1,000명을 뽑아 A, B 두 후보에 대한 지지율 조사에서 A후보가 40%, B후보가 30% 지지율을 얻었고, 30%는 지지후보 없음 또는 무응답 했다면 실제 투표에서도 그럴까?. 실제로는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A, B 후보지지 응답자의 실제 투표율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우리나라 선거제도는 유효투표수 가운데 최다 득표자를 당선인으로 정한다. 즉 당락을 정할 때 모집단은 유효투표수가 된다. 여론조사 때 성별, 연령별 유권자 수에 맞춰 보정한 뒤 지지율을 산출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 때문에 세대별 투표율 차이에 따라서도 당락이 엇갈릴 가능성이 상존한다. 선거 당락은 유권자가 아닌, 투표자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극단적 진영대결 정치·‘떴다방’ 업체 여론조사 결과 왜곡 


이런 한계 때문에 여론조사기관들은 선거여론조사 과학적 기법을 도입해 정확성을 높이고 있다. 표본 샘플링, 축적된 데이터와 이슈 흐름 추이 등 조사 결과의 오차를 교정할 기법을 동원했다, 그래도 선거여론조사는 실제 투표 결과와 틀린 경우가 많다. 여러 이유가 있다. 여론은 움직인다. 유권자는 언제든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진영 간 대결이 극심한 한국 정치 상황에서 급박하게 터져 나오는 정치 이슈는 합리적 판단을 압도한다. 또 선거여론조사는 모집단(母集團)을 확정할 수 없다. 모든 유권자가 투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 투표율은 66.2%, 유권자 셋 가운데 둘만 투표했다. 앞에서 언급했듯 실제 선거 승패 결정에는 투표한 유권자만 영향을 준다. 완벽한 표본집단을 얻을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기껏해야 표본의 연령·성별·동네별 수 정도를 모집단에 맞출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관련해 한 여론조사기관 임원은 “직업·학력·소득 수준 등 정치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변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급박한 선거 일정상 이를 모두 고려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선거여론조사의 신뢰성에 결정적 문제는 선거 여론조사가 실제 여론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나아가 일부 업체와 언론, 후보가 유착해 ‘의도적 왜곡’을 한다는 점이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한탕’을 노린 혹은 특정 후보와 연계된 ‘떴다방’ 여론조사 업체가 난립한다. 이들 업체가 국내 선거여론조사 시장을 어지럽히는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2024년 기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는 전국적으로 총 58개의 여론조사 기관이 등록돼 있다. 2017년 5월 9일 등록제 시행일 기준 27개였던 업체는 신규등록과 등록취소를 거치며 1년여 만인 2018년 79개로 크게 늘었다. 이후 2021년 84개, 2022년 91개까지 증가했다가 올해 1월 등록요건이 강화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23년 12월 통계 분석 전문인력 3명, 상근 직원 5명, 연간 매출액 1억 원으로 등록 요건을 강화했다. 선거여론조사의 객관성·신뢰성 제고를 위한 조치였다. 


특히, 여심위는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의혹을 제기한 명태균 씨가 실질적 소유주로 추정되는 미래한국연구소 지난 대선에서 여론조사를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는 폭로가 나오자 지난 16일 여심위 등록 여론조사업체 58곳에 ‘여론조사 제도개선(안)’을 보냈다. 여론조사 사전신고 의무대상에 모든 인터넷 언론사를 포함하는 게 핵심이다. 공직선거법 108조에 따르면 여론조사를 하려면 조사 2일 전 여심위에 목적·지역·방법·설문내용 등을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예외조항에 따라 정당·방송사·신문사·뉴스통신사 및 인터넷언론(전년도 말 3개월간 일일 평균 이용자 수 10만 명 이상)은 면제했었다. 하지만 ‘명태균 사건’으로 일부 여론조사업체와 지역 인터넷 언론이 유착돼 여론조사를 조작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여심위가 칼을 빼 든 것이다. 명 씨는 2021년 국민의힘 대선 경선 당시 자신이 대표 겸 편집국장으로 있는 경남 창원 지역 인터넷 언론 ‘시사경남’ 등의 의뢰로 여론조사를 돌렸고, 이를 통해 사전신고 대상에서 빠져나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여심위에 따르면 4.10 총선 기간 등록된 여론조사 2531건 중 1524건(60.2%)이 사전 신고를 면제받았다. 명 씨처럼 제도를 악용한 사례가 또 있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조사계획을 미리 신고하지 않으면 조작이 더 쉽다”고 털어놨다. 

 

조사대상 왜곡·질문 유도·결과 ‘마사지’... 업체도 진영대결


문제가 되는 선거여론조사에는 다양한 기법이 동원된다. 대표적인 게 조사대상을 ‘섞는’ ‘쿠킹’이다. 공표(여심위 홈페이지에 조사 결과 등록)용 여론조사는 조사 전 여심위 허가 하에 통신사로부터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의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받는다. 번호가 무작위이기 때문에 응답을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여기에 사전에 확보한 자체 데이터를 섞으면 얘기는 달라진다. 특정 응답을 요구할 수 있는 가족·지인 명의의 전화번호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는 번호를 조사대상에 추가하는 식이다. 실제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대구 지역의 한 여론조사업체는 자체 보유한 휴대전화 1,523개를 가상번호 2만 5,000개와 섞는 방식으로 조사대상을 왜곡했다가 적발돼 업체 대표가 1심에서 벌금 700만 원 형을 받았다. 같은 시기 경남 창원에서도 자체 휴대전화 6만 6,474개로 여론조사를 돌린 업체 대표가 1심에서 벌금 300만 원 형을 받았다. 


특정 응답을 얻기 위해 질문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단체 채팅방 등을 통해 특정 응답을 요구하거나, 성별과 지역 등을 속이라고 유도하는 식이다. 2022년 6·1 지방선거 당시 경북의 한 기초단체장 당내 경선 여론조사를 앞두고 카카오톡 대화방에 캠프 관계자들이 “50·60 여성으로 해주세요”라는 식의 요구를 했다.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해당 후보는 지난 5월 대법원에서 벌금 90만 원이 최종 확정됐다. 같은 시기 전북의 한 기초단체장 당내 경선에서도 한 후보 측이 타 지역 주민의 휴대전화 요금 청구지를 해당 선거구로 바꾸는 식으로 여론조사를 조작해 지난해 5월 2심에서 징역형을 받았다.

 

성별·연령·지역 등 계층별 응답률이 기준치에 미달될 때 적용되는 가중값도 결과 왜곡에 활용된다. 특정 응답을 부풀리는 소위 ‘마사지’가 그것이다. 선관위는 가중값을 0.7~1.5로 제한하고 있다. 예컨대 60대 이상 혹은 광주·전남 지역에 가중값을 1.5보다 더 많이 부여하면 실제 응답자보다 과다표집돼 보수 진영에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반대로 2030대에 가중값을 높게 부여하면 반대 진영에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최근 공개된 2021년 국민의힘 대선 경선 당시 녹취록에서 명 씨가 “젊은 애들 응답하는 계수를 올려서 2~3, (홍준표 후보)보다 (윤석열 후보가) 더 나오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게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여심위원을 지낸 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조작·왜곡한 여론조사업체는 엄벌에 처해 업계에서 퇴출해야 자정이 가능하다”며 “특히, 지역 소규모 언론과 유착하는 명태균 씨 의혹 같은 사례는 강도 높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밴드웨건 효과’ 도구로 활용... 객관·공정한 샘플 추출이 관건


여심위에 따르면 지난 4월 10일 22대 총선 과정에서 여론조사 위반은 127건이었다. 21대 총선 117건보다 10건 정도 많은 수치다. 위반 위형별로 보면 등록사항 위반·미등록 여론조사 공표가 29건(22.8%)으로 제일 많았다. 그 뒤를 거짓·중복 응답 지시 27건(21.3%), 여론조사결과 왜곡·공표보도 24건(18.9%), 여론조사·공표 준수 위반이 22건으로(17.3%), 정당·후보자 실시 조사결과 공표 11건(8.7%), 표본 대표성 미확보 7건(5.5%) 등이 이었다. 이번 녹취록에 나오는 명 씨의 지시가 사실이라면 명백한 여론조사 왜곡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여론조사는 모집단을 전수조사하기 힘들 때 샘플조사를 통해 모집단 여론을 짐작하기 위해 실시한다. 그렇기에 여론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집단 특성이 고르게 반영되도록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샘플을 추출하는 것이다. 이윤우 디오피니언소장은 “샘플이 오염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특히, 조사에서 유권자의 성별, 지역별, 연령별 분포에 치우침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명 씨 논란이 커지자 국민의힘은 지난 17일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여론조사 기관을 영구 퇴출시키는 ‘명태균 방지법’(공직선거법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여론조사 기관의 등록 취소 사유를 확대하고, 처벌 규정도 강화했다. 선거 여론조사는 수치를 통해 민심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순기능도 있지만 오히려 여론을 왜곡하고 혼탁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부작용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친다면 민주주의 근간이 훼손되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 한 여론조사업계 관계자는 “여론조사가 정치권에서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밴드웨건 효과’의 도구로 활용된지 오래다”면서 “그래서 선거철마다 한탕을 노린 비전문 여론조사 업체들이 우후죽순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론조사업체가) 특정 정파와 가깝다는 낙인이 당장은 돈이 될 수 있지만 결국은 여론조사 업계 전체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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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태 칼럼】 분노를 잠재운 적절한 리액션과 공감의 힘
갈등의 시대, 우리는 왜 먼저 ‘앉아도 될까요’라고 묻지 못하는가. 지난 2월 25일 오후 4시 30분경, 오이도에서 진접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4호선 안은 여느 때보다 고단한 공기로 가득했다. 출근 시간대가 아닌데도 노인석 주변은 빈틈없이 붐볐고, 연로한 분들이 서 있는 모습이 곳곳에 보였다. 어느 정류장에서인가 붐비는 노인석의 중간 한 자리가 나자마자 한 어르신이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평화는 채 두 정류장을 가기도 전에 깨졌다. “아 XX, 좀 저리로 가라고!” 먼저 앉아 있던 노인의 입에서 날카로운 고함과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좁은 자리에 가방까지 메고 끼어 앉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새로 앉은 이는 “나도 앉을 만하니 앉은 것 아니오”라며 항변했지만, 쏟아지는 폭언 앞에 결국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래, X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속담을 떠올리며 자리를 뜬 노인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험악해진 분위기 탓에 어느 누구도 그 빈자리에 선뜻 앉지 못했다. 분노의 에너지가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오지라퍼 계열인 필자는 객기 부리듯 용기를 냈다. “여기 좀 앉아도 될까요?”라고 묻자, 화를 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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