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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란 이름의 폭력, 죽음의 성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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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성성기절제 현실 담은 인권 다큐멘터리 ‘소녀와 여자’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여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아프리카 소녀들의 성인식 여성성기절제(FGM)를 다룬 여성 인권 다큐멘터리. 지난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월드프리미어로 공개돼 주목 받았다.


할례를 받은 소녀와 거부한 소녀


매년 우기가 되면 케냐 쿠리아에선 할례 기간이 시작된다. 할례를 마친 14세 소녀 아니타 쾀보카는 가족과 친척으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마을 어귀를 행진한다. 아니타의 아버지 존 쾀보카는 딸이 진짜 여자가 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한다. 할례 시술 도중 울게 되면 부정하다고 여겨지며 소를 바쳐야 하는 전통 속에서, 아버지는 이제 아니타는 그런 걱정에서 벗어났으니 행복한 거라며 한숨을 돌린다. 아버지는 드디어 딸을 결혼시킬 수 있게 됐다며 좋아한다. 그렇게 한 소녀는 여자가 됐다.
 여성성기절제를 피해 목숨을 걸고 도망친 17세 엘리자 구티와 또래 135명의 소녀들은 할례 반대 캠프에서 ‘여성은 신이 내린 특별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엘리자는 한달 간의 할례 반대 캠프가 끝난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아버지가 강제로 여성성기절제를 시킬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캠프의 마지막 날, 엘리자처럼 집으로 갈 수 없는 9명의 소녀들은 선생님과 함께 코모토보에 있는 보호 센터로 가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그녀는 소녀로 남았다.
제작부를 거쳐 프로듀서로 일해 온 이효정 감독이 17년 영화 인생에서 첫 번째 각본 감독 및 제작을 맡은 작품이다. 이 감독은 아프리카에서 소녀들과 동고동락하며 솔직한 인터뷰를 담아냈다. 영화는 국내 최초로 여성성기절제의 문제점과 현지의 인식 변화 등을 따뜻한 시선으로 짚으며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인습은 버려야 한다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생생하게 포착해낸다.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감동적 노력


‘여성 할례’로 통용되는 여성성기절제(FGM: Female Genital Mutilation)란 여성의 외부 생식기 일부를 제거하거나 봉합하는 시술을 말한다. 중동과 아프리카 등 약 30여 개국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이집트 수단 소말리아에서는 전체 여성의 80% 이상이 받고 있다. 매년 300만 명, 하루에도 약 8000명의 소녀들이 이 고통의 성인식을 받고 있다.
평균 3세에서 15세 사이의 어린 소녀에게 행해지며 수술 중 감염, 불임 심지어 사망까지 초래하는 일명 ‘죽음의 성인식’으로 불린다. 여성성기절제의 정확한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성의 순결을 위해 성욕을 억제해야 한다는 그릇된 믿음으로 전 세계 2억 명의 여성에게 행해진 것으로 조사된다.
여성성기절제는 여성들의 교육 기회를 빼앗고 조혼을 부추기는 오늘날의 열악한 여성 인권 실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에 대해 UN은 2012년 여성성기절제를 금지하기로 결의해 매년 2월6일을 ‘여성 할례 금지의 날’로 지정해 세계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무거운 소재의 이 영화는 하지만 소녀 특유의 밝은 정서가 지배적이다. 기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에 대한 대중의 편견과는 달리 영화의 분위기는 활기차고 발그레한 순수함으로 가득하다. 그들 또한 여느 소녀들과 다를 바 없이 꿈 많고 수줍다. 소녀들의 순수한 정서가 억압적 현실과 대비되면서 더욱 아픈 느낌을 자아낸다.
 영화는 할례를 받은 소녀와 거부한 소녀, 두 명의 드라마를 담아내 공감대를 유도한다. 곳곳에 담긴 소녀들을 향한 따스한 시선은 이 영화를 묵직한 진정성에 이르게 하는 핵심이다. 고된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소녀들의 모습은 전통과 인습 사이에서 고통 받는 모든 여성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전한다.



억압받는 모든 개인을 위한 메시지


 ‘소녀와 여자’는 그래서 아프리카의 인권문제를 일깨우는 영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구 어디에서도 여성이라면 인습의 장벽 앞에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할레에서 울면 부정하다는 속설을 만들어 고통을 표현조차 하지 못하게 한 교묘한 지배논리는 여성을 억압하는 공통된 방식이기도 하다. ‘운다’는 최소한의 자기표현은 곧 지배자에게 죄책감과 불편감을, 피지배자에게는 연대감을 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모든 억압논리에 강요된 일을 행하지 않을 때는 ‘부정’을 탄다는 공포심과 죄의식을, 희생을 해냈을 때는 ‘복’을 받는다는 포상의 개념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아가 이 억압은 여성만의 문제도 아니다. 취업난과 경쟁에 시달리는 사회 구조에서 성인이 된다는 것은 대부분에게 고통을 의미한다. 사회화가 지배자들이 만든 질서와 관습을 강요받고 개인의 정체성을 버리도록 요구받는 하나의 억압임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춘기 때 성기절제를 당하지 않아도 아파하고, 그토록 울부짖으며 방황하지 않았던가. 이 영화는 그래서 아프다고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울음과 같은 자기표현이다.
김 감독은 “단 한 번의 노력으로 여성성기절제가 멈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영화를 보고 여성성기절제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한 걸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길을 함께 걸으며 응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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