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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선에서 탈출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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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한과 죄책감 시각화한 타임 루프 미스테리 <트라이앵글>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버뮤다 삼각지대’를 연상시키는 제목, 바다 한 가운데서의 난파와 유령선이라는 소재, 기묘한 일이 일어나는 유람선,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타임 루프물이라는 시놉시스를 보면 B급 공포물이라는 편견을 갖게 한다. 하지만, 의외로 예상을 벗어난 전개를 거듭하며 관객의 머리를 수차례 망치로 내려치는 신선한 미스테리물이다.

복선과 상징의 향연

자폐아를 홀로 키우는 웨이트리스 제스는 ‘썸타는’ 남자의 제안으로 그의 친구들과 함께 요트 여행을 떠난다. 갑자기 바다 한 가운데에서 바람이 멈추고 검은 먹구름과 해일이 몰려와서 요트는 난파된다. 망망대해에서 부서진 요트에 간신히 의지해 목숨을 부지한 생존자들은 대형 유람선을 만나 구조된다. 살았다고 안도하는 찰나, 사람이 보이지 않는 배 안에서 복면의 살인마에 쫓기고,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충격적 사건들이 정신없이 일어난다.

미스테리의 퍼즐을 맞춰가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즐거움이다. 관객은 왜 무엇이 이 같은 비현실적이고 개연성없는 사건들을 만들어내는 것인지 호기심과 긴장감으로 몰입하게 된다. 수많은 복선과 상징들은 영화가 끝났을 때 비로소 한꺼번에 실체를 드러난다. 루프물 특유의 모순이 없진 않지만 대부분 설명이 가능한 수준으로 장르적 재미도 갖췄다. 특히 퍼즐이 거의 맞춰가는 지점에서 펼쳐지는 충격적 비주얼과 그것을 능가하는
또 다른 반전은 관객을 압도한다.

영화 속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만, <트라이앵글>은 ‘시지프스의 신화’를 모티브로 한다. 죽음의 신을 속여서 영원히 살려고 했던 시지프스는 같은 일을 무한 반복하는 형벌이 내려진다. 주인공 제스는 시지프스와 같은 처지가 된다. 그녀 또한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가족의 존재로 대표되는 죄책감과 미련이라는 어리석은 인간의 삶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망각과 부정

신선한 상상력과 꼬이고 꼬이는 이야기 구조, 삭제와 시간 배열 등 연출적 트릭을 통한 반전도 흥미롭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은 자기 자신과 싸우는 캐릭터를 통한 철학적 접근에 있다.

주인공 제스의 일상에 대한 묘사는 아주 적은 분량에 불과하지만, 단서는 꽤 많다. 이를테면 초반에 ‘썸남’의 친구가 노골적으로 제스를 무시하는 대목이 나온다. 지나쳐가는 장면이지만, 제스의 낮은 계층적 위치를 확인시킨다. 반면 ‘썸남’은 장애가 있는 아들의 요구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주지 못해 죄책감을 느끼는 제스를 ‘좋은 엄마’라고 평가한다. 관객의 시각과 일치하는 것이다. 어딘가 지치고 소극적인 제스는 동정심을 느끼게 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영화는 이승세계와 사후세계, 현실과 비현실 등의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제스에게 다양한 일면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녀는 여러 차례 자기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하지만, 결국 자아 살해는 가장 지우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목도하는 순간에서야 실현된다. 자신에 대한 망각과 부정, 더 나아가서 삭제까지 일삼는 제스의 모습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인간의 뼈아픈 회한을 축약시켜 보여준다.

<트라이앵글>은 인간의 죄책감을 시각화한 영화다. 지나버린 과거 속에 갇혀서 후회를 되풀이하는 행위는 부질없지만 멈출 수도 없기에 고통이다. 유령선에서 제스의 돌변한 모습 또한 아들과의 관계에서 자아의 죄의식이 형상화됐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 그녀의 삶 자체가 유령선에서처럼 생존을 위해 죄를 짓고 죽을 힘을 다하는 그런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도입부에 눈물을 글썽이며 아들을 껴안는 제스의 모습은, 후반부에 ‘썸남’을 껴안으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면과 묘한 일치를 이룬다.

허무한 사투를 벌이는 제스의 저주받은 세계는 현실과 고립된 내면의 아우성이라는 면에서 아들의 ‘자폐’와도 상통한다. 아들과 공감대에 실패한 제스에게 내려진 형벌로 해석될 수도 있다. 어떻게 풀어나가도 의미심장한 대사나 장면이 많아지는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유령선이라는 80년대 유행한 미스테리 소재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 낸 영리한 심리 스릴러로 대중적 요소가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배급사의 주목을 받기 어려운 표면적 조건 탓에 국내 개봉이 늦어졌다. 2009년작 영국과 호주의 합작영화지만, 9년이 지난 올해 여름의 끝자락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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