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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화순의 아트&컬처] 이근배 시인, 벼루 통한 한국미학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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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60주년, 한국 옛 벼루 소장품전
16-27일 가나아트센터, 100점 출품
집 230만원 할 때 벼루 100만원 구입 .

 

 

"한국 옛 벼루는 세계 최고입니다. 세계적으로 저만큼 벼루 수집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앞으로 한국 벼루의 우수성을 중국과 일본은 물론,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이근배 시인(81.대한민국예술원장)은 문화예술계에서 소문난 벼루 애호가이다. 집 한 채 230만원, 이중섭 ‘황소’ 그림이 30만원 하던 1973년, 벼루에 홀려 친구에게 빌린 돈으로 100만원짜리 벼루를 구입했다. 이후 그는 1천여점의 벼루를 수집했고,  연작시 80여편을 썼다.

 

이근배 시인이 48년간 수집한 벼루 컬렉션을 음미해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된다. 가나문화재단이 이근배 시인 등단 60주년을 기념해 벼루 컬렉션 중 엄선한 100여점의 명품 벼루 소장품전 ‘해와 달이 부르는 벼루의 용비어천가’전을 16일 개막한다.

 

27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 전시에는 녹두색과 팥색이 어우러진 신묘의 위원석에 생동감 넘치는 문양이 베풀어진 '위원화초석 벼루'와 다산 정약용이 으뜸으로 꼽았다는 보령의 '남포석 벼루'가 중심이다.

 

위원석 벼루는 조선 전기에 평안북도(오늘의 북한 행정구역으로 자강도) 위원군의 위원강 강돌에서, ‘남포석 벼루’는 19세기 이래 충남 남포군 남포면(오늘의 보령시 남포면) 성주산에서 주로 채취한 벼룻돌로 만든 것이다.

 

한국 옛 벼루 소장품전 주요 출품작

 

주요 출품작들을 보면, ‘정조대왕사은연(正祖大王謝恩硯)’ ‘위원화초석 매죽문일월대연’ ‘남포석 장생문대연’ ‘남포석 월송문연’ 등이 있다. 이중 ‘정조대왕사은연’은 정조가 자신의 스승이자 아버지 사도세자의 스승이기도 했던 대제학 남유용에게 하사했다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1973년 창덕궁 ‘명연전(名硯展)’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뽑혔고 화가 김종학의 구장(舊藏) 이력으로도 유명하다.

 

또 가로 26㎝, 세로 41㎝의 큰 화면에 매화와 대나무 문양을 빽빽하게 채운 ‘위원화초석 매죽문일월대연’, 가로 21㎝, 세로 40㎝의 검고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남포석 장생문대연’과 ‘남포석 월송문연’ 등도 뛰어난 명품 벼루다.

 

전시 개막에 앞서 시인은 벼루를 소개하며 “벼루에 푹 빠져서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반평생 벼루 수집을 했다”면서 “이중섭의 ‘황소’ 그림과 벼루를 바꾸라고 해도 안바꾼다”며 벼루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자부심을 내비치며 미소지었다.

 

그는 시 ‘하동(河童) - 벼루읽기’를 통해 “우리나라의 벼루들은 압록강 기슭의 위원에서 나오는 화초석이 으뜸인데요. 녹두색과 팥색이 시루떡처럼 켜켜히 층을 이뤄서 마치 풀과 꽃이 어우러지는 것 같대서 이름도 화초석인데요. 거기 먹을 가는 돌에다 우리네 사는 모습이며 우주만물을 모두 새겨놓았는데요. 그 조각들은 사람의 솜씨가 아니라 귀신의 짓거리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데요”라고 묘사했다.

 

아울러 한-중-일 중 벼루가 가장 탁월한 곳은 바로 한국이라 강조한다.

“문방 문화는 한·중·일 세 나라가 공유하지만 벼루의 대종(大宗)이라는 중국 어느 시대 벼루도 그 규모나 회화성, 살아움직이는 극사실의 조탁이 조선 개국 무렵 벼루에 미치지 못한다”는 그는, “한국의 벼루는 청자, 백자 못지않은 자랑거리”라고 말했다.

 

전시에 출품된 벼루들은 송죽매(松竹梅) 조각을 기본 구도로 하고 곳곳에 조선시대 풍속도를 촘촘이 새겨 넣었다. 돌을 깎았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예리하고도 생동감 넘친 자유로운 표현력을 보여준다. 

 

시인은 왜 벼루를 모으게 되었을까.  그가 벼루를 수집하게 된 계기는 고향 충남 당진이 내세우는 유림이었던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말미에 태어난 저는 그 시절 나라 찾기에 뛰어든 아버지 대신 할아버지 품에서 자랐습니다. 할아버지는 다른 식구들은 모른 체하셨지만 똥오줌도 못 가리는 너덧 살의 저만은 데려다가 직접 품속에 앉혀 글을 읽히고 붓을 쥐어주셨습니다.”

 

시인은 지금도 먹물이 마르지 않은 채 사랑방 문갑 위에 놓여 있던 할아버지의 남포석 벼루와 조선백자 산수문 연적이 눈에 선하다고 한다. 그의 기억 저편 할아버지 문방의 풍경과 먹냄새가 불현듯 다시 올라온 것은 197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출판사에 다니던 그는 어느 날 붓글씨를 독학하려고 문방사우를 샀다고 한다. 30분 넘도록 먹을 갈아도 좀체 먹물이 진해지지 않았다. 명필가였던 삼촌의 조언으로 ‘단계석 벼루’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아는 이를 만나기조차 어려웠단다.

 

1973년 <명연전>과의 운명적 만남

 

그러던 1973년 어느날 창덕궁에서 각 대학 박물관과 개인 소장가들이 모여 개최한 <명연전(名硯展)>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중국과 한국의 명품 벼루 265점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그때 저는 ‘이 전시회의 도록에 올릴 만한 좋은 벼루 딱 한 점만 사야지’라는 꿈을 품었습니다.”

 

얼마 뒤 100만 원짜리 벼루를 흥정도 하지 않고 샀다. 그것도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 마련했다. 당시에는 집 한 채가 250만 원 하던 때였는데, 손바닥만한 벼루 한 점 사겠다고 거금 100만 원을 쓴 것이다. 이렇게 그의 벼루 수집은 시작이 되었다.

 

“한·중·일 벼루 중 우리나라 벼루가 가장 아름답다”는 이근배 시인은 특히 압록강변에서 나는 위원화초석으로 만든 조선시대 벼루의 조각 양식을 으뜸으로 친다. 또 우리나라 벼루는 자유롭고 생동감 있는 예술성을 보여준다. 벼루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금방 마음이 동할 만큼 조선 벼루는 매력적이라는 것이 이근배 시인의 결론이다.

 

 

“한중일 삼국의 옷이 다르듯, 벼루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의 미학이 있기 때문에 비교하기가 사실 어렵지만…. 한국의 미는 소박하고 볼수록 정감 있습니다. 생활상의 면면이 녹아 있기 때문이지요. 한편 질박하지만 ‘제도’하거나 자로 잰 것 같은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자유분방한 상상력에 저는 늘 탄복하고 맙니다.”

 

시인은 ‘사랑 앞에서는 돌도 운다 ― 벼루 읽기’라는 시에서 벼루의 ‘속울음’을 듣는다고 한다. 선비의 마스코트와도 같은 벼루를 오랫동안 모으면서 옛 선비들과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통하는지도 모른다. 

 

추사 김정희는 생전에 “벼루 10개에 먹을 갈아 바닥내고, 1천개의 붓을 몽당 붓으로 만들었어도 아직 글자 한 자를 못 익혔습니다”라고 고백했다. 먹으로 마음 밭을 갈았던 거다.

 

“먹을 가는 시간은 자신의 마음 밭을 가는 시간과도 같기에, 그 순간은 각별한 의미가 있지요. 훌륭한 벼루일수록 높은 당직에 오른 사람들의 책상에 놓일 수 있었습니다. 그 벼루에서 시심과 사상이 솟아났으니, 벼루야말로 선비의 정신적인 유산이었지요. 멋진 벼루 한 점을 두고두고 완상(玩賞)하는 선비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80세 이후에도 시집을 내고, 대한민국예술원 운영에 관여하고 있는 그는, 여전히 할 일많은 청춘같다.

"세계에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하는 열정을 보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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