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미 정상 모두 불참에 文 참석 명분도 약화
남북미 대화 재개 발판 마련 '도쿄 구상' 요원
한일관계 개선 기회도 가물…日 초청도 아직
靑 "열린 자세로 대화…유의미 한 진행 없어"
[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도쿄올림픽 개회가 카운트다운 국면으로 접어든 상황 속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참석 여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다. 3년 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1개월 전부터 한·일 양측으로부터 공식 초청과 긍정적 검토에 대한 반응이 흘러나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코로나19 델타 바이러스 확산 등으로 도쿄올림픽 세부 일정을 확정하기 어려운 주최 측 일본의 내부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 차원에서 초청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 대통령의 불참 가능성에 무게를 더한다.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문 대통령은 7개월 전인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계기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개회식 공식 초청 의사를 전했다. 개회식 두 달 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아베 총리를 예방해 초청을 재확인했고, 아베 총리의 참석을 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전후로 아베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을 비롯해 독일·폴란드·네덜란드·캐나다 등 총 14개국 정상과의 연쇄 회담을 갖는 외교전에 나선 바 있다. 청와대는 해당국과의 사전 조율 끝에 개회식 7일 전에 공식 참석 여부를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흐름에 비춰봤을 때 7월 중순 전에는 도쿄올림픽 개회식 참석 정상에 관한 일본 측의 최종 발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참석 의사를 밝힌 정상은 오는 2024년 파리하계올림픽 개최를 앞둔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4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열린 자세로 대화의 채널은 열어두고 있지만 문 대통령의 도쿄올림픽 참석 여부에 관한 의미있는 대화는 진행되고 있지 않다"면서도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교 관례상 개최국 정상인 스가 총리의 공식적인 초청이 이뤄지 않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참석 여부를 선제적으로 밝힐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게 청와대의 고민 지점이다. 스가 내각이 실정을 만회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경색된 한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불편한 인식도 일부 감지된다.
이철희 정무수석은 지난달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 뉴스쇼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의 교착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배경에 관해 "(우리는) 잘 지내려고 (노력) 하고 있는데 일본이 국내 정치 요소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엉뚱한 소리를 하고 (한국의 노력을) 폄훼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불쾌함을 공개 표명한 바 있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북미 정상의 불참으로 도쿄올림픽을 남북미 대화 재개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도쿄 구상'이 무산된 상황에서 뚜렷한 참석 명분을 찾기 어렵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쿄 구상'은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이끌었던 경험을 토대로 도쿄·북경 올림픽을 지렛대 삼아 비핵화 대화 재개에 동력을 불어넣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구상에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북한 참가를 계기로 시작된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 등 3년 전 평화 분위기를 재현하겠다는 기대감이 깔려 있다. 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도쿄올림픽은 한일 간, 남북 간, 북일 간, 그리고 북미 간 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그러나 북한은 한 달 뒤인 4월6일 올림픽 참여를 결정하는 공식 기구인 체육성 성명을 통해 코로나19 감염 우려를 명분으로 도쿄올림픽 불참을 선언했다. 미국 역시 조 바이든 대통령 대신 부인 질 바이든 여사의 참석을 전제로 조율 중에 있다. 남북미 대화 모색을 구상했던 문 대통령이 참석 동기를 강하게 찾기 어려워진 배경이다.
북한의 불참을 공식 확인한 문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 기회의 관점에서 도쿄올림픽 참석 명분을 새롭게 찾으려는 노력의 정황도 꾸준히 감지돼 왔다. 문 대통령은 제66회 현충일 추념사에서 "2001년 일본 도쿄 전철역 선로에서 국경을 넘은 인간애를 실현한 아름다운 청년 이수현의 희생은 언젠가 한일 양국의 협력의 정신으로 부활할 것"이라며 유화적 메시지를 발신한 바 있다.
도쿄올림픽이 가시권에 들어온 시점에서 문 대통령이 '한·일 우호관계의 상징' 고(故) 이수현 씨를 처음 언급한 것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진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계기 한일 정상회담 성사 여건 조성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의 일환으로도 해석됐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G7 정상회의 기간 약식 회담을 비롯한 한일 정상회담은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일본이 우리 군의 '독도 방어 훈련'인 동해영토 수호훈련 실시를 문제 삼으면서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는 G7 정상 만찬 등을 계기로 한 형식적인 인사만 두 세 차례 나눴다.
문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참석 소회의 글에서 "스가 총리와의 첫 대면은 한일 관계에서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회담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며 유일한 아쉬움으로 무산된 스가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 성사를 꼽은 바 있다.
문 대통령의 도쿄올림픽 참석에 대한 국내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도 부담이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달 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 결과 문 대통령의 도쿄올림픽 기간 일본 방문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60.2%로 찬성 의견(33.2%)보다 두 배 가량 높게 나왔다(자세한 조사개요 및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여권 관계자는 "국내 여론이 이토록 부정적인 부담스러운 상황을 문 대통령이 감수하면서까지 도쿄올림픽을 참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면서 "일본 스스로 문턱을 낮추기 전에는 쉽게 참석이 결정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는 이번 도쿄올림픽 개회식에 문 대통령의 직접 참석 대신 김부겸 국무총리와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파견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김 총리는 도쿄올림픽 개회 19일을 남겨둔 이날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일본의 노력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김 총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본과 관계에 있어 과거사는 과거사 대로 해결하되, 실질 협력을 지속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 역시 그간의 부당한 조치를 철회하고 현안 해결을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을 보이길 바란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