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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재 칼럼

【허연재의 미술 인문학 칼럼】 신디 셔먼의 카메라에 담은 멀티 페르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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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허연재 강사 · 작가] 요즘 넷플릭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드라마 <애나 만들기(Inventing Anna)>를 소개하는 주요 키워드다. 호기심과 재미를 유도하는 자극적인 키워드 만큼이나 흥미로운 사실은 몇년 전 뉴욕에서 일어난 실화 사기 범죄를 소재로 다룬다는 점이다. 미국 이민자였던 20대 애나는 자신이 독일 출생의 800억 상속녀라며 신분을 속이고 뉴욕 맨하튼의 엘리트 사교계에 들어간다. 애나의 큰 그림은 뉴욕의 엘리트층 부호들을 속여 얻어낸 불법 은행 자금으로 예술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뉴욕 맨하탄 한복판에 자신의 사업을 실현시키고자 세계 경제, 은행을 주름잡는 똑똑한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애나가 엘리트 층을 매혹시킨 데는 젊음, 패기, 똑똑함, 패션 감각 등이 있지만, 예술 작품에 대한 심미안으로 그들의 친근함과 흥미를 이끌어낸다. 그 중 돋보이는 작품은 미국 출생 포토그래퍼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무제 필름 스틸#17>(1978)이다. 이 사진 작품은 애나가 앞으로 펼칠 범죄의 행각을 암시하는 작품이기도 하며 뉴욕 갤러리 오프닝 파티에서 따분한 작품을 감상하던 부호 여성인 탈리아 말레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이기도 하다.

 

애나는 자신이 큐레이터인 것 마냥 이 작품의 위대함을 인상적으로 설명한다. "어느 날, 작가는 자신의 가치를 알고 더 이상 카메라 뒤에 숨지 않고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죠. 남성이 지배하는 미술 사회에서 강요된 역할을 맡기보다 자신이 작품의 파사체가 되어 리드 하는 역할을 택한 겁니다. 그게 세상을 바꿨어요. 이건 그냥 역할놀이가 아니라 용기에요… 바로 미술사의 한 획이죠." 신디 셔먼에 대한 단호함은 탈리아의 지갑을 열었고 그녀를 부호 사교계 그룹에 진입하게 만든다. 

 


신디 셔먼의 작품에 대한 애나의 설명은 멀티 페르소나를 통해 사기 칠 자신의 정체성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무제 필름 스틸#17> 속 여성은 신디 셔먼 자신이지만, 어디에선가 본 90년대 흑백 영화의 여배우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클로즈 업 된 얼굴과 카메라를 뚫어지게 쳐다 보는 시선은 우리에게 말을 걸 것만 같다. 하지만 굳게 닫힌 입과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눈빛은 그냥 지나쳐버릴 듯 한 인상을 건네기도 한다. 또 다른 스틸 컷 <무제 필름 스틸#12> 속 낯선 여성은 긴 머리를 하고 있고, 트렁크에 짐을 싸다 말고 슬퍼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남자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한 후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프레임 밖에 있는 특정 대상과 대화를 하는 중인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맥락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영화에서 보고 지나쳤을 여성의 몸 제스처와 표정만으로 그 여성의 이미지를 파악한다. 

 

<무제 필름 스틸> 시리즈는 그녀의 초기 사진 작품이며 뉴욕에서 살던 아파트에서 찍기 시작해 70개의 사진으로 구성된다. 소품 준비, 기획, 사진 촬영 모두 셔먼이 진행했으며 가끔은 가족, 남자 친구, 친구들에게 셔터를 눌러 달라고 부탁한다. 시리즈 속 70여개의 프레임에 비춰진 여성의 이미지는 영화 같은 대중 매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의 모습들이다. 일하는 소녀, 요부, 외로운 가정부, 옆집에 사는 아줌마 등 대중매체 속 여성에 꼬리표처럼 붙는 스테리오타입 이미지다.


각 스틸 컷 안에서 신디 셔먼이 능동적으로 만들어 내는 이미지들은 멀티 페르소나로  작용하기 때문에 애매모호하다. 신데렐라 같은 특정 스토리의 캐릭터나 모두가 알만한 스토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스틸 이미지를 통해 관객들이 열린 시각으로 캐릭터나 스토리를 해석하고 구성하는 여지를 주는 것이다. 따라서 닫힌 결말의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디는 어떤 때는 거리를 활보하는 예쁜 숙녀의 모습, 부유하고 까탈스러운 성격의 여인,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여자, 르네상스 명화 속 주인공, 카우보이 걸, 성인영화 배우, 삐에로, 수동적이며 나약한 피해자의 모습 등 수 많은 페르소나로 존재한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진짜 신디 셔먼“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며 진짜 “여성”의 모습을 정의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셔먼의 <패션> 시리즈 작품은 컬러 사진 작품이며 자신이 패션 모델이 되어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미의 기준을 무너뜨린다. 패션 모델 이라는 소재는 대중 매체에서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정치적으로 상품화 시키며 기준화 시켜 사회적으로 항상 논란을 일으키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셔먼은 프랑스 패션 매거진 보그의 화보 페이지를 의뢰를 받아 장-폴 고티에, 꼼데 가르송 같은 프랑스 탑 패션 브랜드의 옷 모델이 되어 촬영한다. 셔먼은 패션 모델의 매끄럽고 잘 빠진 몸매에 대한 반향으로 아름다움이라는 사회적 기준에 벗어난 우스꽝스러운 포즈와 얼굴 표정을 만든다. 학대 받은 얼굴, 지친 표정, 바보 같은 표정으로 웃음을 짓거나 정신적으로 불편함을 주는 모습들을 연출하여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패션 모델이 되어버린다. 

 


20 세기 미국은 대중 매체와 대량 이미지들이 범람하던 시대였고, 재현된 이미지들에 녹아 있는 여성들의 정체성과 페르소나는 가부장적인 시각으로 투영한 프레임 안에 고착되어 버렸다. 우리가 거울을 보고 현재 유행하는 셀럽들의 이미지들을 따라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사진을 찍을 때 실제 나의 모습과 다른 필터 효과를 씌우기도 하고 가짜 메이크업을 덧대는 것 역시 비슷하다. 신디 셔먼의 스냅샷은 그 고착된 이미지들을 해체하고 우리의 지각을 불안하게 하기에 볼 때마다 재현된 여성의 이미지에 새로움을 선사한다. <애나 만들기> 드라마를 보았다면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아직도 애나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는 부분이 많고, 귀신에 홀린 듯 그녀의 정체를 속 시원하게 알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남게 한다. 이 점이 신디 셔먼의 사진과 비슷하다. 그녀의 사진 작품도 교묘하게 우리들을 속이며 ‘나’라는 정체성, 남들의 눈에 보이는 이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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