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쭈~욱 간다’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고유가는 올해도,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미 작년 초부터 1년6개월이상 30불(2005년3월), 40불(8월)씩 오른데 이어 올 4월에는 50불을 돌파한 상태다. ‘그러다 말겠지’수준이 아니다. 80~90불대가 지속되진 않겠지만 적어도 70불대는 지속가능 유가로 자리매김 할 전망이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작년초만해도 유가급등은 금융시장의 투기자금 유입이나 산유국의 정정(정치정세)불안으로 인한 리스크 프리미엄이 반영된 일시적 상승이란 견해가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유가급등의 근본 배경엔 ‘석유시장의 패러다임 이동’이 깔려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석유공사 유전정보처 해외조사팀 구자권(47)팀장은 “2차 석유위기 후 고유가 지속에 따른 수요감퇴, 과잉 공급 설비의 발생, OPEC의 시장 영향력 약화를 배경으로 지속됐던 저유가 시대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종말을 고했다”고 밝혔다. 바로 그 밀레니엄 첫해인 2000년, 정부는 고유가 대비책을 수립했어야 됐단 말인데….
‘만만디 저유가’기대 속 석유개발 ‘싹’조차 자른 정부알만한 사람들끼리만 ‘쉬~쉬’하는 얘기가 하나 있다. 1988년이던가, 유가 10불대라는 환상적 저유가 시절, 당시 국내 에너지 개발부서들은 ‘저유가 시대 웬 유전개발타령’이냐며 속속 철수를 서둘렀다. 무슨 ‘개미와 베짱이’ 동화도 아니고 한치 앞도 못 내다본 이같은 에너지 부서 철수사태 속에서 다시 유가 20불대 초읽기에 직면한 지난 1996년. 국내 한 에너지기관이 발빠른 에너지 개발을 위한 북해유전 프로젝트를 다시 내놨다고 한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유전라이프 20년 정설. 적어도 10년 20년 꾸준한 석유정책이 요구되는 현실에도 불구, 이 프로젝트는 유가가 다시 10불대로 곤두박질하자 고위기관의 처분압력에 시달려 사업포기를 선언하고 말았다. 참을성, 일관성, 장기 석유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에서 그 ‘싹’을 뽑힌 셈이다.
‘에특’에 관한 이야기 하나 더. 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라고 불리는 이 ‘에특’에 의해 조성된 자금을 에특자금이라 하는데 정부가 그 시절 ‘저유가 만만디’시대가 계속된다고 믿었던지 그나마 에특의 재원조달을 위해 원유나 LNG 등에서 징수하던 부과금을 리터당 14원에서 8원으로 인하조치 했다고 한다. 에너지관련 사업투자는 아예 반 접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수년여. 늦어도 2000년에는 시작됐어야 할 석유개발 사업은 모조리 철수, 여기에 석유개발 재원마저 깍여버렸으니 그야말로 재원도 ‘꽝’ 에너지 관련 사업 투자도 ‘꽝’이 되버린 셈이다.
10부제가 대안일까
고유가 장기화 시대를 받쳐주는 이론은 꽤 탄탄하다. 석유공사 권 팀장은 “중국을 비롯한 개도국들의 폭발적 수요증대와 저유가 시대 투자부진으로 공급능력이 한계점에 도달한 점, OPEC 산유국들의 고유가 정책선회와 함께 철강 및 인건비 등 석유산업 투입가격의 인상, 산유국의 생산 과제 강화조치로 실질 생산 코스트가 크게 상승한 사실에 주목할 때”라고 말한다.이런 구조적 요인들이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지난 2004년 이후 유가급등 추세는 바로 이렇게 변화된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대면 ‘기름값이 언제 내릴까’라는 환상은 아예 접어야 할 판이다. 더욱이 4/4분기 유가역시 55~60불 내외 수준이 예상된다는 전망이다. 내년역시 올해수준의 유가가 지속될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떨어지지 않을 고유가 시그널. 하지만 고작해야 차량 10부제 운행 이라는 소극적 에너지절약 방안을 강구하는 정부의 대처는 고유가 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준다. 둔감해진 에너지 의식. 일반 시민들은 고유가보다 오히려 휘발유 1500원중 1000원을 차지하는 높은 세금구조로 인해 원유가의 급등 폭 만큼 최종 제품의 가격 상승폭을 인식하지 못할뿐 아니라 지역따라, 주유소별로 제품의 가격차가 크게 나는 바람에 유가 급등의 심각성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판이다.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 세계 7대 석유 소비국이자 4대 원유 수입국. 정부는 올 9월 ‘국가에너지위원회’를 발족할 예정이라고 한다. 중국과 인도의 급성장 속에서 국가간 에너지 확보전쟁은 더욱 치열해 질 수 밖에 없는 현실. 에너지 정책이 이미 국가안보차원으로 확대되는 세계 환경 속에서 차량 요일제는 과연 장기적 대안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