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건 전총리가 그랬던가. 이번 선거는 ‘한나라당의 승리라기보다 여당의 완패’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고 전 총리가 보고 싶은 건 여당의 완패였을지 모르지만 언론이 주목한 건 한나라당의 완벽한 압승이자 박근혜 대표의 완승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유세지원 도중 발생한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은 부메랑처럼 5.31 지방선거에서 승리의 월계관이 돼 한나라당에 돌아왔다.
박근혜 ‘차분한 대선 출정’
5월31일 늦은 저녁, 11cm나 찢어진 상처를 보듬고 박근혜 대표가 미소를 삼켰다. 지방선거 완승의 순간을 앞에 놓고도 박 대표는 ‘100원어치만 웃어달라’던 이계진 대변인의 농담에 끝내 화답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지방선거를 압승으로 마감하고 오는 16일이면 2년2개월간에 걸친 당 대표 최고위원의 자리를 내놓고 대선주자로 첫 발을 내 딛는다.
박 대표의 주가는 연일 최고치다. 여론전문기관들은 2주연속 1위를 치닫고 있는 대선주자 박근혜를 주목하고 있다. 전국 230개 기초자치단체장중 박근혜 대표의 한나라당은 155곳에서 승리했다. 수도권 기초단체장 66석중 61석은 모두 한나라당 후보가 차지했다. 서울시 25개 구청장과 96명의 시의원(광역의원)도 모두 한나라당에 돌아갔다. 경기도 31개 기초단체장중 27곳이, 인천 10개구청장중 9곳이 한나라당으로 채워졌다. 지방선거 승리의 바로미터였던 16곳의 광역단체장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광주와 전남북, 제주 4곳을 제외한 12곳에서 압승했다.사실 5·20피습사건 이전에도 박 대표는 한나라당 승리 메이커였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시절, 노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당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던 때에도 ‘용서’를 빌며 전국을 헤맨끝에 국회의원 299석중 121석을 한나라당 깃발로 메웠다.
이명박,손학규와 함께 7월엔 당고문으로
‘23대 0’으로 집권당에 참패를 안겼던 2005년 4·30재보선과 ‘4대 0’으로 기록된 10.26재선거에 이르기까지 한나라당의 승리뒤엔 박 대표가 있다. 당내 대선주자 ‘빅3’중 유일하게 그는 매번 선거때마다 당의 선두에서 당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유독 주목됐던 5·20피습사건과 5·31지방선거를 치루면서 박 대표는 대권주자로서의 영향력과 위상을 그 어느때보다 강화했다는 평가다. 대권 경쟁에서 늘 앞선 주자로 여겨졌던 이명박 서울시장으로선 꽤나 씁쓸해 할 일이다.
박 대표가 이달 16일 대표직을 물러나고 당내 ‘빅3’로 알려진 손학규 경기지사 역시 이달말 임기를 마치고 당에 복귀하면 이명박, 손학규, 박근혜 세 사람은 나란히 당의 고문으로 어깨를 맞출 참이다.
7월 전당대회 ‘포스트 박’ 누가될까7월초 열리는 당 전당대회를 앞둔 한나라당 표정은 부산하다. 당 대표를 새로 선출하는 만큼 당내 당권 후보들의 물밑 경쟁역시 치열한 상태다.
누가 ‘포스트 박근혜’가 될 것인가. 당내에선 이재오 원내대표를 비롯해 박희태 국회부의장, 김무성, 이상배 의원과 맹형규 전의원 또 강재섭 전 원내대표의 도전도 함께 점쳐지고 있다.
전대가 열려봐야 아는 사실이겠지만 이중 이재오 원내대표는 어찌됐든 박 대표가 피습사태로 병원신세를 지는 동안 지방선거 유세지원을 위해 곳곳을 누비면서 톡톡한 ‘프리미엄’을 건졌다는 후문이다. 그야말로 유세지원도 하고, 곧 있을 전당대회 대표 출마준비도 한 셈.
사학법 파동으로 지난 겨울 한나라당이 혹독한 장외투쟁을 진행하던 무렵, 박 대표의 최측근으로 알려졌던 김무성 의원을 누르고 당 원내대표에 당선됐던 이재오 원내대표는 하지만 이명박 시장계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포스트 박근혜’를 선출하는 대표최고위원 선출대회에 쏠리는 당내 ‘빅 3’의 관심은 남다르다. 특히 박 대표와 이 시장간에 흐르는 미묘한 심리전 역시 궁금증을 자아낸다. 대선까지 당을 이끌어 갈 당 대표최고위원 선출을 놓고 양 진영이 ‘대리인’심기에 몰두할 경우 전대는 ‘흙탕물 싸움’을 벌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일찌감치 박 대표가 반박 계열의 이재오 원내대표를 수용했듯 자연스레 친박 이재오 대표 체제를 통해 이명박 시장과의 건전 경쟁을 유도한다면 당내 ‘빅 3’는 탄탄한 대선구도를 지속할 가능성도 높다.
압승하고도 대선패배 안하려면…
언제부턴가 정치권엔 두가지 톡톡한 ‘학습효과’가 교과서처럼 자리 잡았다. ‘이인제 탈당 학습효과’와 ‘이회창 대세론 학습효과’가 바로 그것. 이명박과 박근혜 두 대선후보의 고민은 자신들이 결코 이 두가지 학습효과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하기에 복잡할 수 밖에 없다. 남은 대권주자 손학규의 고민은 과연 어디에 맞춰질까.
어찌됐든 역대 대선의 교훈은 ‘분열한 정당은 패했고, 통합을 이뤄낸 당은 승리했다’는데 맞춰진다. 탈당도, 대세론도 여의치 않은 대선. 지난 2002년 6·13지방선거에서 압승하고도 대선에서 패했던 한나라당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대선주자들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