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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준의 역사기행

[역사기행] 스스로 열린 성문 남한산성과 만리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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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준 성보문화재 연구위원] 오랜만에 남한산성에 올라갔다. 예전에 비해 차도 많이 막히고 방문하는 사람도 많아 북적였다. 아마도 최근 흥행하는 영화 ‘남한산성’의 영향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필자 또한 영화를 관람하고 현장 답사를 하고픈 욕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산성은 생각보다 넓고 험난했다. 이 정도라면 물자만 충분했어도 더 버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어떻게 흘러갔을까. 삼전도의 굴욕을 면할 수 있었을까. 명나라와 함께 청을 무찌를 수 있었을까.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나름대로 상상을 하면서 거닐다가 작년에 갔었던 만리장성이 떠올랐다.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에 땀을 흘리며 올라가면서 이렇게 힘들게 쌓은 성이 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거야? 하고 의아해 했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의 만리장성은 대부분 명나라 때 축성한 것이고, 여진족인 청나라는 남한산성을 정복했듯이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을 지배한 것이다. 청나라는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그 과정을 되짚어 봐야겠다.

■ 후금, 중국 진출 방해세력 견제위해 조선 침략 

1616년 누르하치는 만주의 여진을 통일하고 후금을 세웠다. 후금은 임진왜란으로 국력이 약해진 명나라와 지속적인 전쟁을 벌이는데 조선군도 참여한 1619년 사르후 전투의 대승을 계기로 승기를 잡게 되고 명나라는 조금씩 밀리기 시작한다.

1626년 영원성 전투 후 누르하치가 사망하고 아들 홍타이지가 즉위한다. 그 다음 해인 1627년 명과의 전쟁을 잠시 멈춘 홍타이지는 3만5000명의 군사로 조선을 침략하니 바로 정묘호란이다. 후금의 남진 정책에 방해가 되는 배후세력을 견제 하기 위함으로, 조선이 명나라 장수 모문룡과 난민 1만여명을 평안남도 가도로 피신시켜 요새화시킨 것이 후금을 자극한 것이다.

당시 조선은 서인세력의 힘을 통해 반정으로 집권한 인조(1623-1649년 재위)가 통치하고 있었다. 인조는 집권 초 후금과의 충돌을 예상하여 전쟁시나리오를 만들어 어영군을 발족하고 서북방의 군사력 증강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1624년 일어난 이괄의 난으로 실행하지 못한다. 또 다른 반란을 두려워하여 스스로의 방비에만 힘쓴 탓이다. 그리고 조정은 주화파와 척화파의 대결 구도로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 척화파 “철저한 항쟁” VS 주화파 “외교적 대응 통한 전쟁방지”



척화파는 명과의 의리를 배신하지 말고 철저한 전쟁을 각오하자고 했고 주화파는 외교적 대응을 강화하여 전쟁을 방지하자고 했다. 갈팡질팡하던 조선은 결국 후금의 침략에 재대로 대응을 못하고 형제의 국이 된다는 화약을 맺게 된다.

조선으로서는 한숨을 돌렸고 후금으로서는 후방의 안전을 도모했다. 후금은 명나라를 다시 공략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명의 명장인 원숭환이 북경으로 가는 길목인 요서지역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어서 쉽지가 않았다. 이에 홍타이지는 전략을 바꿔 정복전쟁이 아닌 물자획득을 목적으로 하고 멀리 초원지대를 돌아 하북 북방의 장성인 용정관(龍井關)과 대안구(大安口), 희봉구(喜峰口)를 통해 북경을 침략한다. 

이 루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십여 차례에 이르는 대규모 약탈전이 감행되었고 그 와중에 명나라는 재정이 붕괴되고 도적이 창궐하면서 점차 국운이 쇠하게 된다. 반대로 후금은 물자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1631년에는 명의 기술자를 통해 당시 최신 무기인 홍이포도 만들어내게 되는 등 점차 국력을 키울 수 있었다. 1636년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고치고 다시 조선을 침략하니 이것이 병자호란이다. 

■ 조선의 친명정책, 결국 병자호란 자초…영화 ‘남한산성’의 배경   

본격적인 명 정벌에 앞서 다시 한번 배후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조선은 친명정책을 변경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인식시켜 침략의 빌미를 제공했으며 주화파와 척화파의 대립으로 외교적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더구나 정묘호란 이후에도 변경의 군사력은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다. 청군은 압록강이 얼자 속전속결로 10일 만에 한양을 점령한다. 왕은 강화도로 미처 못가고 남한산성으로 급하게 피신한다.

남한산성은 그동안 청군이 지긋지긋하게 여겼던 명나라의 장성과는 사뭇 달랐다. 만리장성이 군사적 요새로서 축성한 방어용 성곽이라면 남한산성은 유사시에 대피하여 군사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산성이자 하나의 도시였다. 다행히 인조는 1624년 남한산성 수축을 명하여 방비가 가능한 상태였다. 험난한 산에 구축된 성은 기병을 위주로 하는 청군으로서 점령이 쉽지 않았다. 명나라의 동쪽 장성을 넘지 못한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인조는 이곳에 행궁을 설치하고 청군과 대치하면서 신하와 대책을 논의한다.최근 개봉한 영화 남한산성은 그 과정과 결과를 보여준다. 김상헌이 대표하는 척화파와 최명길이 대표하는 주화파 사이의 논쟁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조의 모습은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되었지만 있었음직한 사실을 묘사한다. 실리를 중시하는 주화파의 외교적 노력과 명분을 중시하는 척화파의 군사적 노력은 치열하게 이루어지나 너무 늦은 방안들이었다. 

■ 인조, 식량 떨어지자 스스로 문을 열어 

홍타이지가 홍이포로 직접 압박을 하고 산성 내 식량이 떨어지자 인조는 버틸 힘이 떨어진다. 근왕군이 와해되고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까지 겹치자 인조는 결국 45일 만에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나간 것이다. 청나라는 조선으로부터 군신관계를 얻고 물자와 인력을 공급받아 명나라를 점령할 힘을 비축한다. 명나라는 내부 혼란이 지속되는데 결국 농민 반란인 이자성의 난으로 1644년 북경이 함락된다. 

당시 명나라 군의 주력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에서 10만에 이르는 청군과 대치 중이어서 반란을 진압할 수 없었다. 산해관은 바다에 닿아있어 청군이 한 번도 돌파한 적이 없는 천혜의 요새였다. 청나라가 7년 전 남한산성에서 조선과 대치했듯이 명나라의 마지막 군사를 만리장성에서 대치한 것이다. 여기만 함락하면 무주공산이 된 북경까지 진격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당시 산해관에는 오삼계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이미 북경이 이자성에게 함락되었고 그들의 10만 대군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도 오삼계 역시 조선의 인조와 같은 고뇌를 했을 것이다. 이자성과 같이 청과 싸우느냐 아니면 배신하고 청나라에 붙을 것인가. 처음에는 이자성에게 항복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자성의 부하인 유종민이 북경에 있는 오삼계의 집을 약탈하며 아버지를 감금하고 고문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청나라에 항복하기로 결정한다. 일설에는 진원원(陳圓圓)이라는 그의 애첩이 유종민에게 유린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1636년의 조선, 2017년 한국 주변국 상황과 유사

결국 오삼계는 스스로 성문을 열고 청군을 맞이한다. 청나라는 오삼계의 3만 군대와 함께 산해관으로 오는 이자성 군을 패퇴시키고 북경으로 진격하여 중국대륙을 장악한다. 이번에도 성문은 스스로 열렸다. 남한산성과 만리장성의 공통점은 청나라와 대치하다가 스스로 문을 열어줬다는 점이다. 외부의 압력에 못 이겨 내부부터 무너진 것이다. 

영화 남한산성이 흥행하면서 여러 정치적 해석이 난무한다. 

척화나 주화의 대상을 지금의 미국이나 중국과 대비하기도 하고 북한의 핵위협을 당시 상황과 빗대기도 한다. 지금의 국제정치 상황을 400년 전과 비교할 순 없다. 그러나 예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여러 국제적 상황이 우리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다르지 않다. 이럴 때 역사는 내부로부터 무너지면 끝이라는 교훈을 준다. 이제는 스스로 성문을 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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