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6.01.14 (수)

  • 맑음동두천 -9.3℃
  • 맑음강릉 -4.1℃
  • 구름조금서울 -7.4℃
  • 맑음대전 -4.1℃
  • 맑음대구 -1.9℃
  • 맑음울산 -1.2℃
  • 맑음광주 -1.4℃
  • 맑음부산 1.6℃
  • 맑음고창 -3.1℃
  • 맑음제주 5.0℃
  • 흐림강화 -10.9℃
  • 맑음보은 -4.7℃
  • 맑음금산 -3.6℃
  • 맑음강진군 0.2℃
  • 맑음경주시 -1.7℃
  • 맑음거제 2.7℃
기상청 제공

기본분류

부서진 벼루 먹기

URL복사
1
시조(始祖)새가 있다. 까마귀만한 크기에 대가리는 작고 대가리에 달린 눈은 어쩌자고 크다.
새의 가장 오래된 조상인 이 시조새란 녀석 ― 조상쯤의 생물을 이 녀석 저 녀석이라고 낮추는 것 실례이지만 ― 은 텃새로나 철새로 펄펄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화석으로 박혀 있다. 나는 그 화석 사진을 본 적이 있을 따름인데 그때 새의 조상인 시조새 화석이 있다면 시의 조상인 시조시(始祖詩)의 화석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유치한 노릇이다.
시란 이런 유치한 천지창조론 근처와는 아무 상관없으리라는 사실을 짐작하면서도 나의 소년적인 고고학 충동은 시의 어떤 생성 기점을 만들고 싶었던가?
상고시대 수메르의 점토판에 남겨진 카노슈 카드로라는 시인이 쓴 시 한편이 굳이 시조시 노릇을 할지 모른다. 아니면 5천 5백년 전의 그것보다 더 앞선 어떤 아득한 선사시대 그림글씨로 한편의 시가가 어느 암벽에 새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공상 끝에 한국 시문학사의 처음은 한반도 동남의 한 암각화에 있지 않고 훨씬 뒤의 고구려 유리왕의 '꾀꼬리 노래'라든가 고대 중국으로 건너가서 그곳 한자로도 남겨진 '공후의 노래'라든가에 생각이 미치면 차라리 우리의 시조시는 숫제 아침이슬이거니 공중에서 노니는 티끌이거니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다.
허나 시의 시작이 호젓이 나오는 노래이기도 하고 여럿이 더불어 누리는 노래이기도 한 것이 고대시가의 삶이라면 굳이 화석으로, 점토판이나 돌에 새기는 낙서로 남아 있지 않고 그 노래가 노래 뒤의 허공에 스러지는 것이 더 시다운 일이기도 하겠다. 김시습이 시를 쓰는 대로 개울물에 흘려보낸 일을 떠올려보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조시는 5천년 전이나 1만년 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지금 누군가가 쓰는 그 시의 지금이 바로 시의 조상이라는 근본시학의 비약에 이르는지 모른다.
모든 시는 지금의 시이므로!
2
어제 나는 우연찮게 김기림전집을 읽었다. 전집이라고 하지만 그이의 품격 그대로 시와 수필, 시론을 망라한 한권의 전집이다. 그것도 1988년 3월 당시 문공부장관이던 시인 정한모가 해금조치한 이후 10년쯤 지나서야 나온 것이었다.
6녀 1남의 막내 외동아들인 김기림의 막내누나 김선덕이 미국 이민생활의 노경에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로 서문을 삼았다. 김기림의 아들 세환의 고모 역시 지난날 동생 기림과 함께 일본 유학을 한 여성이라 그동안 접어둔 글솜씨가 퍽이나 높은 수준이다.
(…) 38년이란 긴 세월 동안 억울한 사형수가 재심에 지쳐서 무죄판결을 받고 출옥했을 때의 그 기쁨보다는 비정했던 세대를 응시하면서 첫발을 디뎠을 적에 하늘도 땅도 울어주지 않겠는가?
이런 애끊는 한을 품고 동생의 문학 사면에 대한 처절한 감회를 담고 있다.
나는 〈기상도〉 〈태양의 풍속〉 〈바다와 나비〉 등의 시편들을 소년의 마음으로 읽었다. 그런 다음 〈시와 문화에 부치는 노래〉라는 시도 읽었다. 이것은 신석정이 해방 연간 전국문학인대회에서 지은 즉흥시와도 얼핏 맞닿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과 같다.
손을 벌리면 산 넘어서 바다 건너서
사방에서 붙잡히는 뜨거운 체온
초면이면서두 만나자마자 가슴이 열려
하는 얘기가 진리와 미의 근방만 싸고돎이 자랑일세
그대 모자 구멍이 뚫려 남루가 더욱 좋구려
거즛과 의롭지 못한 것 우에 서리는 눈초리
노염 속에 감추인 인정의 불도가니
나라나라마다 우리들 소리 외롭지 않어 미뿌이
나기 전부터도 시의 맥으로 이낀 어리석은 종족
피 아닌 계보가 보석처럼 빛나서 더욱 영롱타
도연명과 한용운과 노신과 타골
단테와 뽀들레르와 고리키와 오닐
포대와 국경을 비웃으며 마음마음의 고집은 뚜껑을 녹이며
강처럼 계절처럼 퍼져오는 거부할 수 없는 물리
메마른 사막을 축이는 샘 어둠 속에 차오는 빛
세계와 고금에 넘쳐흐르는 것 아― 시여 문화여
이런 시의 마음 순종(純種)이 한국시의 오늘을 낳았다는 생생한 감회 앞에서 시 1백년 그다음의 시대를 여는 오늘이 벌써 열렸다.
3
김기림의 절창 〈바다와 나비〉의 그 어눌한 진정을 읽다가 건너뛰니 어쩌면 그의 본령이기도 한 해박한 시론에 사로잡혀야 했다. 심지어 〈시론〉이라는 시까지 쓴 그이가 아니던가.
이 시가 1930년대에 씌어진 것과 함께 〈1933년 시단의 회고〉라는 시 총평은 이를테면 김안서 등을 비판한 나머지 정지용 등을 상찬함으로써 그의 풍부한 시학적 진폭을 내보이고 있다. 요컨대 쎈티멘털리즘과 과거에 대한 노예적 맹종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시의 지점에 그이가 서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더 나아가 현대 한국시사에서 가장 중요한 그 30년대를 마감하는 시론에서도 한층 더 강렬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는 동양시의 오랜 관습대로 조선시대 양반시단 여항시단(閭巷詩壇)의 풍속이었던 시회(詩會)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당대의 주도적 모더니스트 김기림이 보기에 이런 시인행태는 시적 발전과정에서 하나의 시대정신을 만나는 일 따위와는 상관없이 오랜 정체 속의 되풀이로 단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행태로서의 시가 보여주는 장식성밖에 다른 여지가 없고 골동으로서의 언어유희밖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지탄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그가 강조하는 바가 곧 시정신이다. 그것은 안이한 시인적 기질의 동의어가 아니라 '한 시대가 품고 있는 문화의욕을 자신 속에 나누어 가지고 그것을 시에 구현해가는 창조적 정신'이라는 것. 사실 전통시대의 시회는 고대 중국의 남북조시대와 당?송시대를 이어오는 시단의 풍류 아류이다. 고려시대 해좌파(海左波)나 죽림(竹林) 강변(江邊) 군상들이나 조선후기 여러 시회 시사(詩社)에 이르기까지 그 관행은 자못 뿌리가 깊다.
이규보의 시화(詩話) 〈백운소설〉에는 4, 5인이 각각 말을 타고 느적느적 가며 이른바 마상시회(馬上詩會)를 베푸는 광경이 나온다. 누가 맨 먼저 운을 달고 나오면 그 운에 따라 즉흥작품을 읊어가는 것이다. 그런 시의 한두편이 송나라에까지 건너가 그곳 시단에 탄상(歎賞)되는 경우도 있었다니 그 역량이 상당한 경지였을 것이다. 이런 행운의 다른 편에 이규보 등과 한 시기 동인이던 임춘(林椿)의 불운이 있다. 그의 시에서 보듯 임춘은 '갈아먹을 밭뙈기 없어 부서진 벼루를 갈아 먹어야' 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런 풍류가 기운생동의 작품을 자아내는 드문 경우 말고는 그 상투성에 떨어지고 마는 사례가 허다했다. 그런데 이 고질적이기까지 한 시놀이가 끝난 것은 근대시 1백년 단초일 것이다.
4
그간 식민지 시기의 근대시 분야의 인구는 서로 간담을 비출 만큼 형제적이고 동인적이었다. 그런 시기는 전근대의 시회 시사의 분위기와는 같지 않더라도 시인사회의 여러 관계들을 거의 혈연에 가깝게 만들었다. 그런 우정이 한국시의 행로에 얼마나 기여하는 생산성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거기서 움트는 연민과 선린의 미덕은 오랜 농경사회의 인정과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닌 향토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사실 시는 일종의 농업이었다. 척박한 현실이나 곤궁한 일상을 견디어내는 그들의 시적 무능이 곧 시의 가능이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이후의 시인 증가율은 급수증가를 거듭하는 도시적 다중화로 치달았다. 시인 5천명 내지 1만 5천명 이상이라는 오늘의 시단 상황은 거의 대책 불능의 비농촌적인 한계상황이다. 가위 시단의 아파트대단지이다. 날마다 시집과 시지, 시동인지들이 간행 배포되고 있다. 이를테면 한해의 마감날짜인 12월 31일에도 새해의 시작인 1월 3일쯤에도 가장 먼저 오는 것은 연하장 못지않은 시집의 우편배달이다.
외국 시인들이 한국은 시집이 2백만부나 팔리는 나라라 부러워하고 이웃 나라에서는 시가 죽었는데 한국에서는 시가 살아 넘친다는 기적론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덕담의 안쪽인 한국시에서의 완강한 시적 절망이 자리잡고 있는 내상(內傷)은 그런 상황에서 정작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같은 시의 남획 남발과 시의 초과생산의 한쪽에서는 현세적 이기주의와 배타주의 출세주의로 얼룩져 있는 현실이 탐욕적으로 표상되는 것과 동행한다. 그러므로 이로부터의 한국시는 시적 탐구의 고향만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질적 품성을 배양하는 일과 자본사회에서의 궁핍한 심신의 존엄성을 지켜내는 일이 어찌 나 자신의 몫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이전의 시회놀이와는 또다른 전우감(戰友感)의 시인사회를 개척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태어난 해인 1933년 새해에 김기림은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너는 황금과 지위와 그리고 민중의 아첨의 달콤한 유혹을 돌보지 말고 나를 따를 수는 없느냐?" 이 말은 〈파랑새〉라는 시의 이상을 의인화(擬人化)해 그 '파랑새'가 화자인 나-김기림에게 하는 경종이다.
그로부터 76년 뒤의 나에게 오는 경종이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당정, 공소청 검사 보완수사권 폐지에 사실상 합의...“수사·기소 분리 원칙 지켜지게 최선”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정부가 12일 입법예고한 ‘공소청법안’과 ‘중대범죄수사청법안’에 대해 범여권에서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당대표와 김민석 국무총리가 모두 공소청 검사에게 보완수사권도 부여하지 않는 것을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정청래 당대표는 13일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 출연해 공소청법안과 중대범죄수사청법안에 대해 “검찰개혁과 관련해 수사·기소 분리가 대원칙이고 검찰청을 폐지하면 검사는 공소 유지만 하라는 것이다”라며 “이런 기본 정신에 어긋나면 안 된다는 게 민주당 의원 대부분의 생각이고 아마 그것대로 (입법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청래 당대표는 13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검찰개혁 정부법안은 민주당에서 충분하게 토론하고 수사·기소 분리라는 국민 눈높이에 맞게 수정하겠다”며 “토론하는 과정에서 수사·기소 분리라는 대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는 13일 국회에서 개최된 원내대책회의에서 “당과 정부 사이의 이견은 없다”며“명실상부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는 검찰개혁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검찰개


사회

더보기
내란 특검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사형 구형!...“12·3 비상계엄 사태는 중대한 헌법 파괴”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사형을 구형했다.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은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과 제25형사부(지귀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이같이 선고해 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박억수 특별검사보는 “비상계엄 사태는 헌법 수호 및 국민 자유 증진에 대한 책무를 저버리고 국가 안전과 국민 생존을 본질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목적, 수단, 실행 양태를 볼 때 반국가 활동의 성격을 갖는다"며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으로 지적한 반국가세력이 누구였는지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 선거관리위원회 난입과 언론사 단전·단수 시도 등 헌정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반국가세력에 의한 중대한 헌법파괴 사건이다”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자신의 행위가 헌법 질서와 민주주의에 중대한 침해를 초래했는지에 대해 성찰하지 않았다. 가장 큰 피해자는 독재, 권위주의에 맞서 희생으로 이를 지켜낸 국민이다”라고 말했다. 박억수 특검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은 사법부와 입법부를 장악해 장기간 집권할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며 "국가 공동체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돼야 할 물적 자원을 동원한

문화

더보기
연합합창단이 하나의 무대를 이루는 ‘통합의 장’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새해의 문턱에서 하나의 노래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2026년 1월 20일(화) 오후 7시 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미라클보이스앙상블, 현대문화기획 주관 신년음악회 ‘우리 이제는 쫌 더 나은 세상으로’가 열린다. 이번 공연은 단순한 신년음악회를 넘어 전국과 해외에서 모인 연합합창단이 하나의 무대를 이루는 상징적인 ‘통합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음악회의 중심에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4악장 ‘환희의 송가’가 놓여 있다. 인류 보편의 연대와 형제애를 노래하는 이 작품에 한국 최초의 발달장애인 성악앙상블 미라클보이스앙상블이 핵심 주체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이번 무대의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성악 전공자에게도 높은 난이도로 알려진 이 합창곡을 통해 미라클보이스앙상블은 음악적 도전과 사회적 메시지를 동시에 무대 위에 올린다. 무대에는 프랑스와 일본을 포함한 해외 참가자들, 그리고 대한민국 전국 각지에서 모인 합창단원들이 함께 오른다.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총 150명의 연합합창단은 지역과 국경을 넘어 하나의 목표로 모였다. ‘베토벤의 합창에 함께 서기 위해’, 그리고 ‘함께 노래함으로써 더 나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활력과 열정이 넘치는 ‘붉은 말띠의 해’, 새해의 목표는?
다사다난했던 2025년 ‘푸른 뱀띠의 해’를 보내고, 활력과 열정, 속도와 변화의 에너지가 강하다고 여겨지는 ‘붉은 말띠의 해’ 병오년(丙午年)이 밝았다. 새해는 개인에게는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출발점이며, 국가적으로는 변화의 흐름을 점검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지난 한 해 국가적으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이후 치러진 6·3 대통령 선거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제2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큰 정치적 변화를 겪었다. 이후 경제와 외교 전반에서 비교적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경주 APEC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미국과의 관세 전쟁 속에서도 나름의 성과를 거두며 사상 첫 수출 7천억 달러를 달성해 세계 6위 수출 국가라는 기록을 남겼다. 대한민국 정부는 새해 국정목표를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국민 삶의 질 향상과 사회적 연대를 핵심 가치로 삼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국민이 하나 되는 정치 ▲세계를 이끄는 혁신 경제 ▲모두가 잘사는 균형 성장 ▲기본이 튼튼한 사회 ▲국익 중심의 외교·안보 등 5대 국정 목표와 123대 국정 과제를 추진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