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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1년과 인권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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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외부강연 자리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 이명박정부의 인권성적을 몇점이라고 생각하는가? 아직 학기말이 되지 않아 전체 성적을 매길 수는 없지만, 요즘 하는 행동을 보면 F학점이 아니면 다행이겠다고 대답했다. 촛불집회에서부터 드러난 대로 시민적·정치적 권리는 대폭 축소되었고, 상위 1%에 치중된 정책은 경제적·사회적 권리를 무색하게 만들었으며, 공교육과 모국어에 대한 무지한 공격으로 인해 문화적 권리 역시 땅에 떨어진 상태다. 여기까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요즘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의제가 '인권'이라는 열쇳말 주위에 모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집회와 시위, 비정규직, 언론정비, 철거민, 연쇄살인범 얼굴공개, 사형집행 논란 등 대다수 사회·정치문제가 넓은 뜻의 인권의제 속에서 제기되고 있다. 왜 그럴까? 과거에는 인권을 정치의 일개 분야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어째서 인권이 정치의 전 분야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이명박 정부의 인권점수는 F학점
정치현상을 해석하는 데에는 구조, 제도, 사상, 심리 등 네 가지 방식의 설명이 가능하다. 우리의 경우 민주화투쟁을 벌이던 시대에는 정치를 주로 '구조적'으로 설명하곤 했다. 그러나 제도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은 후부터는 다른 방식의 설명도 나름대로 유효성을 지니게 되었다. 즉, 민주화 단계 이후의 시대 특성상 정치를 설명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통하게 되었는데 그런 흐름 속에서 인권이라는 종합적 성격의 주제어가 모든 정치·사회적 이슈들을 대변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앞으로 이같은 경향은 더 심해질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현정권 들어 너무나 악화된 인권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두 가지 직접적인 설명을 들 수 있겠다. 첫째, 이명박 정부의 '사상적'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현정부는 소위 실용주의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사상의 나침반이 없는 상태에서 출발했다. 아니, '여의도 정치' 자체를 싫어하는 탈정치적 성향이 농후한 상태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정권도 탈정치에 기대어 정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그러한 공백을 뉴라이트 같은 설익은 신보수 '정치이론'으로 메워야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정치수사의 차원에서 흉내낸 것에 불과했고, 현정권의 본질은 여전히 탈정치―정치냉소주의라고 보는 게 옳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진지한 정치담론이 나올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정치적 사안의 고비마다 거짓말, 발뺌, 왜곡, 이중어법, 자기기만으로 대응해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현정권의 특징은 모든 것을 '부인하는' 권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진실을 부인하는 것이 자신의 사상이자 철학이 돼버린 정권이다.
부도덕한 권력이 인권을 유린하는 세 가지 방식
정치에서 부인 기제를 중요한 인권침해 요인으로 간주하는 스탠리 코언 같은 사회학자는 언어적 도덕성이 없는 권력이 세 가지 부인 방식에 의존해 정치를 농단하고 인권을 유린한다고 지적한다. 우리 현실에도 정확히 들어맞는 분석이다. 최근 용산사태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청와대가 군포 연쇄살인사건을 적극 홍보하라고 지침을 내렸던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처음에는 "그런 공문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문자적 부인'을 시도했다. 그 다음에는 "그런 이메일을 보낸 사실은 있으나 개인 아이디어를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는 '해석적 부인'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개인의 단독행동이므로 청와대가 책임질 일은 아니다"라는 '함축적 부인'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이런 식의 언어적 부도덕성 그리고 엄연한 현실의 부인은 대운하에서도, 경제정책에서도, 촛불집회에서도, 용산사태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되었고, 앞으로도 판박이처럼 되풀이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권침해는 계속 일어나고, 그런 사실은 계속 부인되며, 인권의 요구는 정권에 반대하기 위한 좌파의 정치공세쯤으로 치부될 것이다. 부인하는 권력을 선출한 우리 국민의 비극이다.
둘째, 최근 들어 이명박 정권은 사적 일탈행위인 범죄와 공적 통치행위인 정치를 '제도적' 차원에서 연결하려는 유혹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뜬금없이 흉악범죄자의 얼굴사진 공개 여부가 사회의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사형수의 처형을 통해 범죄에 대처하겠다는 즉흥적 발상을 내놓고 있다. 그 명분은 강력범죄에 대해 억지력을 높이겠다는 것이지만 극약처방을 통해 전 사회에 위협을 가하고 시민들의 심리를 위축시키겠다는 속내가 들여다 보인다. 정권 초기에 법질서를 강조할 때부터 이런 위험은 예고되었지만 정치적 자원이 일찌감치 바닥을 드러낸 상태에서 이런 추세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정부의 경쟁논리와 약자경시 '철학'에 비추어보면, 아무리 얼굴을 공개한들, 아무리 사형수를 처형한들, 범죄가 빈발할 조건이 더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지는 않게 되어 있다. 오히려 정치가 범죄발생의 배경조건을 형성하고, 범죄가 발생한 후에는 그것을 다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악순환이 일어날 개연성이 커진 것이다. 더구나 응보를 요구하는 인간의 원초적 심리를 자극하여 정치영역으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는 선전기법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개연성도 커졌다.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학문분야인 정치범죄학에서는 이런 식의 사회통제술이 시민들의 인권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경고한다. 하나 덧붙일 점은 이러한 사회통제 기법이 정치적으로 성공한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법질서에 대한 기본전제가 잘못됐으므로 길게 보아 대중의 혐오만 키우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고통에 대응하는 인권투쟁
하지만 좀더 근본적으로 보자면 시장만능주의를 국정운영의 기본으로 선언한 순간부터 인권의 파국적 험로가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용산참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구조적' 설명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장만능주의의 폐해는 시장경쟁에서 도태되는 수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한다는 점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피해자들로 하여금 시장만능주의의 전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도록 하고, 자기들이 운 나쁘게 시장 활동의 유탄을 맞았다고 생각하게끔 만든다. 인권은 인간을 억누르는 모든 억압권력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던지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그러한 의문제기 자체가 점점 줄어들고 어려워지는 암울한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인권이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할 때 개인의 권리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 사회 전반의 안전, 즉 '인간안보'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1990년대 중반 유엔에서 처음 등장한 인간안보 개념은 전통적인 안보와 평화 개념을 초월하여 인간중심적인 사회안녕을 지향한다. 즉, "국민국가의 영토보존만이 안보가 아니다" 그리고 "전쟁의 부재만이 평화가 아니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하여, 인권이 인간안보의 큰 틀 내에 포함되어야 하고, 인간안보가 사회공동체 내외의 평화유지에 직결된다고 본다. 요컨대 인권이 땅에 떨어지면 사회 전체의 인간안보가 흔들리고, 그것과 함께 평화도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시점에서 한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이명박정권하에서 두고두고 정치의 주요 이슈들이 인권문제로 프레임되고, 우리 사회의 인간고통에 대응하는 모든 움직임이 인권투쟁의 형식으로 표출될 것이다. 또한 그것이 우리에게 인간안보와 평화에 대해 발본적인 모색을 요구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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