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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와 역동적 복지국가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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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국 등 이른바 선진 자본주의국들과 한국은 실물경제의 위기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부동산 거품 붕괴로 촉발된 금융위기에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위기는 10년 전 아시아 경제위기와 매우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이번 위기의 근본 원인은 이 국가들이 그동안 강력히 추진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추진은 '경제의 금융화'를 심화시켰고, 이에 따라 기업과 가계의 투자 및 소비가 금융시장에 깊이 얽혀든 사정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를 우리는 금융자본주의라 부른다.
이런 금융자본주의 체제에서 주택·자동차 구입 등 가계소비는 이들이 소유한 집값의 동향, 구입한 펀드의 수익률, 주식시장에 투자된 퇴직연금의 미래 수익률 등 금융시장의 변동에 깊이 의존하게 되었다. 기업들 역시 자본시장의 압박에 따라 주주가치 극대화를 가장 우선시하면서, 임금비용 절감 등으로 기업가치를 높이고 주가관리에 주력하며 장기투자는 기피하는 경향을 가지게 되었다. 기업들이 금융논리에 포획된 것이다. 이러한 기업환경 변화의 관점에서 금융자본주의는 주주자본주의로 규정된다.
금융화된 경제의 결과
케인즈에 따르면 시장경제에서 투자는 미래에 대한 전망(=예상 투자수익률)에 의존하는데, 이는 지극히 주관적이므로 상당히 불안정하다는 특징을 가진다. 또한 그는 이러한 투자의 불안정성이 경기변동의 주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난 시기의 특징 중 하나는 '경제의 금융화'로 가계가 금융시장에 깊숙이 얽혀들면서 가계의 소비행태 역시 기업의 투자행태와 비슷하게 불안정한 양태를 띠게 되었다는 점이다. 소비규모는 통상 투자의 두배에 이르므로(중국 같은 신흥시장은 비슷한 규모이다) 이같은 소비행위의 불확실성은 실물경제의 불확실성을 크게 증대시켰다.
예컨대 신용이 경색되는 경우 기업의 통상적인 영업활동이 위축되고 흑자도산이 발생하는 것처럼, 금융순환에 포섭된 소비자 역시 금융시장의 붕괴와 신용경색에 따라 일상적인 소비활동을 크게 제약받게 되었다. 더욱이 그동안 위험투자를 늘린 연기금의 경우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고 있는데, 이는 미래 연금수익 감소를 우려한 연금생활자들의 소비위축으로 이어져 국민경제 전반의 역동성을 해칠 것이다. 이런 폐해의 주된 원인은 금융자본주의이며, 멀리 보면 신자유주의 20년의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현재의 금융위기는 투자, 소비 등 경제 전부문에 동시다발적으로 악영향을 미치며, 이에 따라 곧바로 실물부문 침체로 나타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소비자 신용으로 조달되는 자동차 등 내구재의 소비감소 효과가 철강산업 침체로 이어지는 식이다.
세계경제의 단기전망과 한국
미국의 써브프라임,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의 주택금융에 잉여자금을 유인하여 거품을 일으킨 주범은 누구인가? 물론 일차적 책임자는 미국의 모기지 대출은행과 거대 투자은행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좀더 면밀히 관찰하면,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경제체제를 만든 신자유주의 정책, 즉 실물부문으로부터 자립한 금융시장(특히 자본시장)에 기업·개인가계·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를 얽어맨, 이른바 '과잉금융화'를 주범으로 지목할 수 있다.
어쨌든 현상황에서는 실물수요, 특히 소비수요를 유지하는 것이 세계경제의 파탄을 막는 길이다. 따라서 '경제 안정화'(특히 심리적 불안감 해소)가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특히 당국이 일관성 있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서구 선진국의 소비위축을 대체할 만한 수요가 창출되면 세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므로, 서방 언론들은 연일 중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의 수요팽창 정책을 주문하고 있다. 일리가 있는 생각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국가부채가 과중하여 한계가 있을 것이다. 다만 중국은 국가 주도로 사회간접자본 투자 중심의 팽창정책이 가능할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8천억달러 규모 이상의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유럽 각국도 GDP 대비 1% 또는 그 이상의 부양책을 동원함으로써 1930년대 같은 대불황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부양책이 기대만큼의 역할을 해낼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우선 미국의 경우 곧 이르를 10조달러 이상의 총부채를 관리하고 줄이는 데 주력하느라 더이상 여력이 없을 것이다. 특히 미국의 소비수요는 결국 수년 내로 대내외 균형을 위해 적어도 연간 7천억달러 이상 감소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같이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는 큰 어려움에 직면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래서 내수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볼 때도 우리 경제 내부에서 수요를 창출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또한 그런 보장은 없지만 설령 미국이 아닌 곳에서 동일한 규모의 수요가 창출된다 해도, 예컨대 중국인이 미국인의 애용품인 대형차('기름 먹는 하마')를 구입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같은 수요변화에 맞춰 산업구조 조정이 수년간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금융 중심'에서 '생산 중심'으로
그런데 내수가 받쳐주는 안정적 국민경제 창출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우선 한국경제의 기조를 지난 10여년 동안의 '금융 중심'에서 '생산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금융은 어디까지나 생산(실물부문)을 지원하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시장이 과잉팽창하지 않도록 하는 한편, 은행에도 주주자본주의 논리가 억제되도록 경영환경을 바꾸어주어야 한다. 큰 동맥을 거쳐 작은 실핏줄로 피가 원활히 공급되어야 생물체가 건강하게 성장하듯이, 자금이 투기로 실물경제를 왜곡하거나 불안정하게 할 것이 아니라 생산의 말단 부분(특히 중소기업)으로 원활히 흘러갈 수 있도록 금융씨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 인내하고 헌신하는 자본이 중소기업에 충분히 그리고 낮은 가격(이자율)에 지속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 금융씨스템을 구축하자는 말이다. 기업 경영자가 어떻게 하면 저렴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생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주가 관리에 목매는 일이 최대한 억제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금융자본주의로 가는 길을 멈추어야 한다.
한국이 중화학공업, 첨단 전자산업 등에서 갖춘 세계적 경쟁력은 너무도 소중한 자산이며 이를 살려야 한다. 대기업에는 가급적 자율적 경영으로 유도하되, 중소기업과의 불공정 관행을 단절하기 위한 정책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한국경제의 성장과 고용창출을 위해서는, 고용의 90% 가까이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활력을 찾고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예컨대 중소기업의 노동환경, 재교육 여건 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중소기업의 경영환경, 즉 연구개발(R&D)이나 기업써비스 지원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가복지씨스템을 대폭 확충해서 중소기업 부문의 종사자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이 부문의 지속적 고용이나 혁신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에 대한 여성의 노동참여를 높이려면, 4대강 치수사업이 아니라 최고 수준의 공공 보육시설을 전국적으로 확충하는 데 납세자의 돈을 사용해야 한다. 전액 무료나 파격적인 싼 비용으로 수준 높은 영유아 보육이 가능하다면 교육평등은 물론 총수요 진작, 복지확충, 노동력의 안정적 공급, 출산율 제고 등이 함께 이뤄지는 생산적 복지가 가능할 것이다.
복지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자
근본적으로 보자면 '복지개발 5개년 계획' 같은 것을 수립하여 시행할 것을 주장한다. 이것이 '금융 중심'에서 '생산 중심'으로 이행하는 전략이자, 생산과 내수를 살리고 고용을 창출하는 바람직한 방안으로 생각된다. 현단계에서는 세금 감면이 아니라 증세로 재정지출을 늘리고, 현위기 돌파를 계기로 삼아 생산적·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의 초석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정권의 행보는 모든 점에서 이러한 길과 정확히 '거꾸로'다. 수요부족에 대한 이명박정부의 대안은 고작 부동산 투기였다. 그래서 '재개발 속도전'을 하겠다고 마구 공권력을 휘두르다 용산참사를 초래했다. 금융으로 먹고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미국에서도 포기한 위험한 제도들을 기존의 자본시장통합법에 추가하는가 하면, 상업은행, 투자은행을 망라한 금융 전부문을 재벌에 헌상하려 한다.
지금의 세계 경제위기는 그 본질에서 보면 앞에서 밝힌 대로 전대미문의 위기며, 금융시장은 경색의 위기에 노출되어 있고, 이 금융시장에 꼬여들어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이 농후한 소비수요를 살리는 방법은 지금까지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와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경제가 거품을 다시 일으켜 마구 질주하는 것은 참으로 무모하다. 수요를 진작시키는 것도 신자유주의적으로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다.
현정부는 마치 '해방 이후 신자유주의를 마음껏 해본 적이 없으니 죽을 때 죽더라도 한번 해보고 죽자'는 식인 것 같다. 이건 아니다. 만약 현정부가 향후 1~2년간 거품을 마음껏 조장하는 동안 세계경제가 기대와 달리 미궁 속으로 더욱 빠져버린다면, 그리고 이에 따른 외부충격으로 한국경제의 거품이 다시 꺼져버린다면, 그것은 한국경제에 대한 최종적 사형선고가 될 것이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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