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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정부, 희망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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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명박정부를 '기득권 정부'로 규정한다. 추진하는 주요 정책들이 모두 기득권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정부가 스스로 기득권 정부임을 내세울 리는 없다. 그들은 한국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할 뿐이라고 강변한다. 경쟁력 강화가 국가의 최대 목표가 되는 것도 논쟁거리이고 '경제 살리기'가 국가경쟁력 강화의 핵심인가 하는 문제도 논란거리이지만, 일단 그런 논의는 제쳐두자. 이런 가치관에 관한 문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이 정부가 기득권 정부라는 점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자유시장과 경쟁을 핵심원리로 내세운다. 더 쉽게 말해, 한마디로 '자유경쟁'이다. 정부규제를 줄이고 시장에서 각 행위자들이 자유롭게 경쟁해야 그 행위자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더 나은 결과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열등한 행위자는 제거하고 우등한 행위자를 강화시켜야 사회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경쟁하면 힘센 자가 이기고 약한 자가 지게 되어 있다. 약한 자가 죽고 힘센 자들이 남아야 바깥의 다른 힘센 자와 대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장의 자유경쟁을 강화하면 필연코 강자가 득세하고 약자는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교과서만 열심히 보면 알 수 있는 간단한 원리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약자들의 아우성이 일어나니 대놓고 힘센 자가 득세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자유시장이니 큰 정부의 폐해니 선택과 집중이니 경쟁이니 하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게 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경제규모가 빨리 커져서 약자들도 그 혜택을 볼 수 있으면 사회양극화의 폐해를 참을 수도 있지만, 경제가 어려워지면 약자들이 생사의 기로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현실이다.
기득권 강화정책의 결정판, 교육정책
이명박정부는 취임하기도 전에 인수위원회에서 영어 몰입교육이니 뭐니 해서 혼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정말로 한국인의 영어실력이 형편없는 게 국가적인 문제이고 초중등학교에서 몰입교육을 하면 영어실력 향상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가져올 사교육 광풍 같은 것은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들 눈에는 영어 때문에 나라를 떠나는 어린 학생들과 혼자 남는 '기러기 아빠'들의 애환이 더 가슴 아팠고, 영어로 나가는 나랏돈이 무척 아까웠을 것이다. 가상한 애국심이기는 하다. 하지만 사교육 경쟁이 치열해야 기득권을 더 강화할 수 있는 그들의 처지가 알게 모르게 이런 애국심에 스며들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영어교육뿐 아니라 정부의 교육정책은 국제중 설립, 자사고 100개 설립, 대입전형 자율화, 초중고생 일제평가 등 모조리 사교육을 부추기는 것들이다. 한마디로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들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공교육 정상화 정책은 결국 '사교육 진흥책'일 뿐이다. 그 결과 사교육비, 특히 영어 사교육비는 지난 1년간 11.8%나 상승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대통령은 틈만 나면 사교육비 삭감이 자신의 목표라고 공언하고 사교육 없이도 일류대학에 갈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알고도 그러는 것인지 헷갈리지만, 나는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는 정말 뭘 잘 모르는 것이다. 개인적 성향이나 주변 인사들이나 사적인 이익이나 모두 기득권 강화 쪽이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사회문제들을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교육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지는 알 능력이 없고, 그저 옆에서 또 밑에서 조언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측근들은 대통령보다 더 사회적 책무의식이 부족하고 기득권 이익을 지키려는 세력들이라 그럴듯한 세계화논리, 경쟁논리, 시장논리를 대통령에게 주입하고 국민에게 호도하면서 기득권 강화 시장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재벌이 원하는 대로, 기득권층이 원하는 대로
교육정책이 가장 분명하게 기득권 강화 방향을 띠고는 있지만, 다른 정책들이라고 해서 별다를 것은 없다. 실제로 민영화, 금산분리 완화, 법인세 인하, 재벌의 출자총액제한 완화 등의 경제정책들은 모두 재벌들이 원하는 것들이다. 그들에게 돈과 힘을 더더욱 많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부동산값이 겨우 잡히는 듯하자 정부는 건설경기를 진작하겠다며 여러 규제들을 풀고 있다. 다시 부동산값이 꿈틀거린다. 여기서 이익 보는 사람이 집 없는 서민일 리가 없다. 누가 이익 볼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이 정부는 강남 사람들의 아우성에 못 이겨 (아니면 앞장서서?) 종부세도 많이 깎아주었다.
요사이 국회에서 벌어지는 싸움판의 원인이 된 미디어통합법도 돈 많고 힘센 재벌언론사들에 유리하게 되어 있다. 시장규제가 풀리면 거대 언론재벌들이 활개치게 된다. 정부여당은 방송을 민영화하고 그것을 신문재벌이 소유할 수 있게 만들어야 세계 미디어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언론이 언론 같지 않게 될 터인데 세계 미디어시장에서 돈 벌기로 경쟁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언론재벌의 거대화다. 한나라당이 이 법에 매달리고 민주당이 한사코 반대하는 것은 모두 자기 이익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자기에게 비판적인 일부 방송사들의 힘을 빼기 위해 보수적인 언론재벌과 거대기업들을 방송에 진출시켜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공정한 언론'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더 시급히 고쳐야 할 것은 방송시장의 독과점이 아니라 오히려 신문시장의 독과점일 텐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는 것을 보면 이 정부는 역시 기득권 정부임에 틀림없다.
정부는 또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서 수도권으로의 집중을 가속화하겠다고 한다. 세계에서 수도권 집중도가 가장 높은 대한민국! 그 집중도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이제 심각한 국가문제가 되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수도권 규제완화를 추진한다. 이 또한 명백한 기득권 강화책이다. 이에 대해 지방 사람들이 떠들어봐야 힘 빠진 하소연밖에 되지 않는다. 수도권 사람들 가운데도 자기 지역의 과밀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지만, 땅값·아파트값이 오른다니 대놓고 반대하지는 않는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지식인들 가운데 지방균형발전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을 찾기 어렵다. 도덕적인 양 행세하는 각종 시민단체들이나 지식인집단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들 또한 자기 이익을 엄수하려는 똑같은 사람들일 뿐인가. 수도권의 힘은 점점 거대해져서, 이제 지방균형발전이란 말은 권력투쟁에서 졌을 뿐 아니라 그나마 옛날에 가지던 도덕적 힘마저 잃었다. 수도권으로 집중해야 국가경쟁력이 커진단다. 그 말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래야 수도권 기득권이 더 확실히 커진다는 점이다.
비기득권·비주류 세력이 집권한 동안 역사해석이 참 빨개졌나 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뒤 교과부는 서둘러 근현대사 교과서를 수정하라고 엄포를 놓았고 실현에 성공했다. 기득권층의 과거 친일행각과 독재행각을 들추어내면 안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긍정적으로 보자는 취지다. 좋은 취지다. 그러나 친일과 사대, 독재행각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 모두 기득권층의 이익에 봉사하기 때문에 정부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섰다.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과거 정부가 이룬 남북합의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제사회에서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더구나 남북화해와 통일여건 조성에 역행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기득권층의 정서적인 북한 혐오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그들의 정서적인 만족 말고 북한과 대결해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일까? 아무것도 없다. 잃은 것만 많다. 하지만 기득권층에게는 그런 정서적인 만족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이명박정부 1년, 인수위 시절과 얼마나 달라졌나
이렇듯이, 이명박정부의 주요 정책들은 거의 모두 기득권 강화책이다. 일자리 나누기라든가 빈곤층 돕기라든가 하는 것들을 들먹이면서 내 주장을 반박하려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일시적이거나 시혜적인 정책들은 그야말로 거대한 몸통에 가냘프게 붙어 칼바람에 휘날리는 곁가지에 불과하다. 구조적으로 기득권 강화정책을 펼치면서 거기서 희생되는 일부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구제하겠다는 조치들은, 물론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정말 미봉책에 불과하다.
인수위 시절 정말 불쌍할 정도로 아마추어적이고 미숙하고 그러면서 분명하게 기득권 정부임을 드러냈던 이 정부가 이제는 조금 더 세련되고 덜 기득권 옹호적이 되었을까? 글쎄, 이제 '고소영'이니 '강부자'니 하는 비아냥은 면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본질이 변하지 않는 한 기득권 정부라는 꼬리표를 떼기는 힘들어 보인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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