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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의 정치와 정치의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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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재보선을 목전에 앞둔 시점까지 한나라당, 민주당 그리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조차 각각 전략 선거구를 선포하며 후보자의 공천(公薦)이라기보다 사천(私薦)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뚜렷한 프로그램을 내세우는 당간 정책경쟁이 아니라 권력욕에 빠진 듯한 당내 파벌싸움에 몰두하고, 선거승리를 위해서라면 민주적인 절차조차 경시하기 일쑤다. 한나라당은 '친이'와 '친박' 계파간 권력싸움 때문에, 민주당은 정동영 전 장관의 출마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전자가 지난 총선 결과 '친박연대' 같은 기형적 정치집단이 출현하며 촉진된 것이라면, 후자는 당내 신주류와 비주류 간의 갈등에서 시작해 급기야 전 대통령 후보의 탈당과 현직 대학교수의 출마라는 어색한 발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두 정당의 공천 난항은 모두 3년 후 대선을 염두에 두어서일지도 모르지만, 대선승리를 위해서라 해도 민주주의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다.
4.29 재보선 자체가 작년 18대 총선 공천에서의 문제 때문에 치러지는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당시는 객관성과 정의라는 명분을 앞세워 공천 자체를 당 외부인사에게 '외주화'했지만, 이로 인해 국민은 물론 당원들까지 공천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자질이 의심스러운 국회의원이 탄생했다가 당선무효라는 판결을 받는 웃지 못할 촌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도 만성적인 분파갈등의 역사가 되살아나고 있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결국 단일후보에 겨우 합의를 했지만, 두 당의 참된 신뢰관계와 아래로부터의 결정과정을 통한 결과라고 하기엔 어려울 뿐 아니라 아슬아슬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렇게 실망스러운 정당들의 공천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배제된 국민이나 당원들은 또다시 낭패를 볼 것이 뻔하다.
재보선 공천 난항, '그들만의 잔치'가 반복되는가
올가을 독일에서 치러지는 총선에 나설 후보자의 선출은 일찌감치 작년 봄부터 시작됐다. 가장 많이 주목받은 출마자는 진보진영인 녹색당에서 보수진영인 기독민주연합(기민련)으로 옮긴 오스발트 메츠거(Oswald Metzger)일 것이다. 재선의원이자 금융전문가인 그는 녹색당의 경제 및 사회복지 정책을 더이상 지지하기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기민련으로 당적(黨籍)을 바꿔 2009년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정치활동을 시작했으며 연방 수준에서 인정받고 언변도 뛰어난 메츠거에게 해당 선거구의 기민련 당원 혹은 대의원들은 냉담했다. 치열한 논쟁 끝에 당적 이전은 허용됐지만, 중앙당과 주(州) 당조직 지도부의 기대와 달리 메츠거는 공천에서 끝내 탈락하고 말았다. 지구당 대의원들에 의해 내려진 최종 결정에서 후보자로 뽑힌 출마자는 그 지역의 농민이었다. 조직화된 지구당이라는 제도에 따라 대의원들이 선거구 유권자를 대신해 자기 선거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 후보자를 직접 뽑는다는 실질적 주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다시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 선거가 국민과는 동떨어져 벌어지는 '그들만의 잔치'로 보일 때가 많다. 정당들은 대선이든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단지 자기 당의 후보자가 당선되면 그만일 뿐 그가 어떤 인물이며 무슨 정책을 옹호하는지는 상관없다는 '수(數)의 논리'에 빠져 있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정치의 질이 떨어지고 국민주권은 소외되기 일쑤다. 민주화와 3김시대 이후에도 이러한 승자독식을 동반하는 '수의 정치'가 개선되지 않은 것은 물론, 정당정치의 민주화와 저비용·고효율 개선이라는 명분 아래 이루어진 개혁--지구당 폐지, 원내정당화, 공천위원회 도입 등--으로 인해 오히려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나무의 '분재(盆栽)화'가 더 심해지고 있음이 이번 재보선에서 또다시 확인된다.
정당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필수적이다. 정치학자들이 말하듯이 "정당 없이는 민주주의를 상상도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시민사회와 정부를 연결하는 핵심적 매개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이 정당정치의 취약성이다.
민주주의 토대 다지는 '재래시장'식 대중정당
대의민주주의의 참뜻은 대표와 참여에 있지만, 국민이 참여를 안하거나 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의사는 제대로 대표될 수 없다. 정당이라는 매개구조는 시민사회와 정부를 연계하는 기능으로 개념화되는데, 여기서 전제조건은 '토대에서의 정당'(party on the ground)의 형성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정당이 1960년대 형식적으로 제도화되었을 때부터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웠고, 급기야 2004년 지구당 제도의 폐지는 이러한 토대의 발전가능성이 크게 위축된 대표적 사례다. 그간 거의 작동되지 못한 토대민주주의(Basisdemokratie)는 이제 아예 제도적으로도 차단된 것이다. 그 결과 국민의 적극적이고 질적인 참여보다 소극적인 혹은 양적인 참가를 유인하는 정당제도가 자리잡았다. 공천 때는 여론조사, 경선, 언론홍보 등의 통로로 선거운동을 하지만, 이는 참여정치라기보다 동원정치, 즉 국민에 의한 그리고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라기보다 국민 위에 있는 피상적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홈쇼핑이나 인터넷몰은 물건을 사고팔기가 편하고 효율적일지 몰라도 재래시장처럼 직접 만지며 고를 수가 없다. 선거는 불량품이 배달되면 4년이나 기다려야 반품이 가능한 거래이기 때문에 조금 불편하고 번거롭다고 해도 재래시장에서 선택하는 것이 결국 더 효과적이다. 이 재래시장처럼 동네와 가까운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규칙적으로 만나 교류하고 이해관계를 토의함으로써 신뢰를 쌓아가는 것, 즉 적극적 참여를 통해 가장 힘없는 사회구성원을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의 의사가 적절하게 반영될 수 있게 해주는 대중정당이라는 조직형태가 필요한 것이다.
18대 총선에서는 공천위원회 제도가 도입되어 전문가라는 엘리뜨들에 의해 후보자가 지명됨으로써 민주적 공천과정 자체가 생략된 터였다. 요컨대 유권자는 정당이 공급하는 상품(후보자) 가운데 악과 차악 중에서 고를 수 있을 뿐이었다. 시장논리에도 못 미치는 원리로 운영되는 민주주의는 국민이 소극적으로 참가(!)하는 수동적 '선다형 민주주의'와 다름없다. 당원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공천이 극소수에 의해 관리됨으로써 정치엘리뜨는 점점 국가기관으로 변하고, 이에 무력감과 분노를 느낀 국민은 사적 영역으로 잠복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에 따라 정당이 매개기능으로 채워야 할 정치적·정책적 공간은 비워지고 일종의 정치진공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지만, 일각에서 운운하는 것과 달리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님은 앞의 독일의 사례가 보여준다.
정치참여 제도와 현실의 거리를 좁히려면
한국은 이론적으로 독일과 매우 비슷한 제도를 갖추었지만 실천은 영 딴판이다. 한국 헌법과 정당법은 독일 기본법과 정당법을 받아들인 면이 상당한데, 정당조직에 관한 조항은 오히려 모형인 독일 법률보다 더 구체적이다. 한국 헌법과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고, 여기서 '필요한 조직'은 '당원의 총의를 반영할 수 있는 대의기관'으로 규정되어 있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왜 실천은 이렇게 다른 걸까?
우선, 선거법이 병립식 비례대표제를 바탕으로 되어 있는 탓에 정당 지도부가 공천과정에 개입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제도적인 설명이 가능하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관련 법규를 제정·개선하지 않고 오히려 자익을 위해 활용하는 정치권의 의도와 더불어 '공중전화 관습'이 결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출마자가 선출과 당선을 목적으로 당원들과 잠시 '연락'하는 데 마치 공중전화를 쓰듯 먼저 지구당(당원)에 돈을 넣어야 한다. 반면 독일에서는 거꾸로 당원들이 중앙당 및 정부와 지속적인 '통화'를 통해서 정치과정(공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집전화'의 기본요금은 물론 가끔 부가요금까지 자발적으로 지불한다.
국민의 정치참여 배제가 반독재 민주화와 촛불시위 같은 운동을 촉진한 근자의 사례에는 '억압된 만큼 폭발한다'는 법칙이 잘 드러난다. 여기서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비용이야말로 개선해야 할 대상이다. 19세기에 또끄빌(Tocqueville)이 미국에서 인상깊게 목적한 공회당 회의(town hall meeting)라는 이상형은 아니더라도, 21세기 민주주의에는 국민이 정치에 관여하며 토의과정을 통해 타협과 합의를 이루는 적극적인 참여와 개입의 문화가 더욱더 요구된다. 따라서 제대로 된 제도를 마련할 필요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도와 실천의 양립을 위해서는 주권을 행사하는 국민의 깨어 있는 문제의식과 책임있는 행동이 필수적이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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