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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페이터’ 역사는 돌고 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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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의 제왕'으로 명성을 날리던 실로몬 소로비치(카알 마르코빅스)가 경찰에 체포된다. 그러나 그가 끌려간 곳은 교도소가 아닌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유대인인 그는 죽음의 수용소로 악명 높은 그 곳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예의 자신의 숨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타고난 그림 실력과 예술적 재능으로 나치 친위대 간부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다른 수용자들보다 나은 생활을 누리는 소로비치.
그러나 그의 운명이 다시 위태로워졌다. 독일이 불리한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비밀리에 베른하트작전을 거행하면서 소로비치를 전격 투입한 것이다. 세계 경제를 흔들기 위해 적국의 화폐를 위조하려는 이 작전의 실질적 총책임자가 된 소로비치. 실패하면 죽음뿐인 이 작전에서 그와 유대인 재소자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완벽한 위조지폐를 만드는 것 뿐. 그러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영국 국립은행이 진폐라고 공식 인정할 정도로 완벽한 위폐를 만든 것이다. 영국 파운드에 이어 미국 달러까지 제작하는 소로비치와 동료들. 허나 달러 위폐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서 이들은 '목숨'과 '양심'이라는 선택 속에서 갈등하기 시작하는데 (중략)
이 영화는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유태인 수용소에 수감된 위조지폐범 살로몬 스몰리아노프를 비롯한 140여명의 위조전문가들이 투입된 지상최대의 위조지폐 작전이라는 실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당시 작전을 지휘한 나치 친위대의 베른하트 크루거 소령의 이름을 딴 작전에서 나치는 세계 경제를 흔들기 위해 총 1억 3천 2백만 파운드라는 당시 영국 국고의 네 배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위조하였다. 결국에는 포기했으나 애초의 계획대로 영국 상공에서 위조지폐를 투하하고 나서 야기될 혼란을 상상해보라.
이 영화는 전쟁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극단적인 상황에 몰렸을 때의 집단 심리 양상을 디테일하게 제시하고 있다. 실존 인물이자 영화 속 주인공 소로비치는 베른하트 작전에 투입되기 전까지는 목숨을 연명하려는 평범한(?) 유대인 재소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역사적인 이 사건에 개입되면서, 그는 예상치 못한 복잡한 갈등과 번민에 휩싸이게 된다.
<그림1>
본인 스스로 겪는 번민은 물론이고 위조지폐 팀원 사이에서의 갈등 그리고 훨씬 열악하고 위태로운 처지에 있는 일반 재소자들이 보내는 증오의 시선 등이다. 소로비치는 완벽한 위폐를 만든다는 조건 하에서 일반 재소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접을 받았다. 그것은 분명히 거저 받는 것이 아닌 목숨을 걸고 완벽한 위폐를 만드는데 따른 최소한의 대접이다. 그럼에도 일반 재소자에게 비쳐지는 소로비치와 동료들의 모습은 나치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공공의 적'이 된다.
이유인즉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위폐를 만들었다고 항변해도 그것은 틀림없이 이적행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언제 어느 때 가스실로 향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재소자들이 푹신한 침대와 부드러운 빵 그리고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는 소로비치를 비롯한 동료들을 향해 냉랭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이 영화는 유대인 수용소를 소재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영화에 비해 참혹한 장면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 이유를 소로비치와 동료들의 생활이 안락해서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프롤로그에서 소로비치는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물로 비쳐졌다. 그러나 베른하트작전에 참여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따뜻한 인간으로 변모하였다. 결핵에 걸린 동료를 구할 약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건 담판을 벌이는 그에게 더 이상 비난의 화살을 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적인 논리만을 강요하는 동료에 맞서 당당히 자기 행위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분명이 이 영화는 재미와 감동 두 가지를 모두 선사한다. 제작사 베타시네마는 <타인의 삶>에 이어서 <카운터페이터>를 통해 2년 연속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부연하여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몇 년을 주기적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같다. 바로 유대인에 대한 만행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수상을 한다는 점이다. <쉰들러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 그리고 <카운터페이터>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림2>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동서양의 역사를 통틀어서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물론 어느 한 민족이나 국가가 다른 민족에 대한 적개심으로 학살을 자행한 적은 있지만, 나치만큼 잔혹하게 철저하게 그리고 장기적으로 민족 전체를 말살하려한 경우는 없었다. 오죽하면 이 사건 하나로 "역사는 진보한다"라는 주장에 회의감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몇 백 만명이나 대학살을 당한 유대인의 상처는 전쟁이 끝난 지 60여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생생히 남아 있으며, <카운터페이터>와 같은 영화를 통해서 한층 각인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재의 영화를 보면 무엇인가 허전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바로 현재의 유대인 아니 이스라엘이 영화 속 희생자라는 이미지와 괴리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초강대국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경제를 주무르고 할리우드를 지배하는 이가 바로 유대인이다.
<카운터페이터>에서 따뜻한 인간애가 느껴지는 소로비치의 모습은 '과거의 사실'이고 <천국을 향하여>에서 주인공인 팔레스타인 자살테러범이 겪는 죽음의 공포는 바로 '현재의 상황'이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2007년 방영되었던 일요스페셜 <장벽>에는 오늘날 팔레스타인인의 참담한 생활이 여과없이 묘사되어 있다. 화면 속 그들이 겪는 고통과 분노의 배경에는 지난 2002년부터 팔레스타인자치구지역을 고립 차단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세우고 있는 '분리장벽'이 존재하고 있다. 철근과 콘크리트 그리고 철조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장벽은 아무리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워도 비열하고 잔인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날 나치로부터 억압받던 유대인이 이제는 팔레스타인인을 핍박하는 또 다른 가해자가 된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래서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돈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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