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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지방선거와 지식인의 정치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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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 한신대 교수

6·2 지방선거가 끝났다. 그 결과 중대한 권력변동이 발생했으며, 정치인과 정당은 이 변화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책임으로부터 한발 비켜선 집단들이 있다. 예컨대 정치적 발언을 한 지식인들이 그렇다. 지식인의 정치적 발언은 학문적 명망과 시민적 참여를 적극적으로 결합함으로써 동료 시민들과 동등하게 한 표를 행사하는 것 이상의 지도적 행위를 수행하게 된다. 따라서 그만큼 책임의 무게가 무겁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책임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에게는 정치인이나 정당처럼 그 책임이 객관적으로 부과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식인의 정치적 발언은 공론장 안에서 그 책임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그런 견지에서 내가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일군의 지식인들이 주도한 하나의 선언과 그 선언의 배경을 이루는 하나의 담론이다. 전자는 ‘교수·연구자 107명 진보신당 지지선언’(이하 ‘107인 선언’)이고, 후자는 반MB 정치연합을 위한 노력을 ‘묻지마 반MB연합’으로 격하한 담론(이하 ‘연합정치 견제론’)이다. 대부분 나의 학문적 선배와 동학인 107인의 지식인들의 학문적 업적에 대해 나는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적 발언은 비판적 논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지식인의 정치행위가 갖춰야 할 덕목


지식인의 정치적 발언도 그것이 정치적 행위인 한 정치적 행위 일반에 적용되는 기준에 입각해 타당성이 검사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나는 막스 베버의 주장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소명을 가진 정치가는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감각(Augenmass)이라는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자질은 직업정치가에 한정되지 않고 진지한 정치적 행위 모두가 충족해야 할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107인 선언의 참여자들은 열정과 책임감이라는 기준을 쉽게 통과할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걸고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지식인의 모습은 깊은 열정을 배경으로 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앞서 이들의 행위가 객관적 책임에 직면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행위가 야기한 사태 전체를 감당하려는 의지의 수준에서 이들이 책임감을 결여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이들의 정치적 발언을 문제삼는 것은 바로 이런 주관적 의지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균형감각의 수준에서 발생하며, 이것이 진정으로 중요하다. 다시 한번 막스 베버를 인용하자면, 균형감각은 “”정치가의 매우 중요한 심리적 자질이다. 균형감각이란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 즉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 “”거리감의 상실은 그것 자체로서 모든 정치가의 가장 큰 죄과 가운데 하나“”이다.
 

107인 선언이 겨냥하는 바는 명료하다. 그것은 진보신당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호소는 상황 판단의 수준에서 그리고 연합정치에 대한 판단에서 사실과 상당한 거리를 가진 것으로 판명되었다.


‘107인 선언’의 기우뚱한 균형감각


107인 선언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과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판하는 유권자들조차 누구를 찍어야 할지 헛갈리기만 합니다. 대안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만과 분노가 쌓아져감에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이 좀처럼 빠지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이런 진술은 선거 결과에 의해 잘못된 판단임이 입증되었다. 선언은 정부와 여당에 대한 높은 지지율을 판단 근거로 삼고 있지만 선거 결과는 그간의 여론조사에 체계적 편향이 존재했음을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사실 이명박 정부 아래서 치러진 재보선들이 6·2 지방선거 결과를 어느 정도 예시하고 있었음을 생각할 때, 이런 판단은 균형감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일례로 지난해 10·26 안산 재보선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안산 재보선은 민주당의 패권주의의 예로 인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면이 두드러진다는 데에는 십분 동의하지만, 역으로 그런 패권주의적 행태 속에서도 대중이 민주당을 선택한 이유는 깊이 숙고되어야 할 사안이었다. 안산 재보선 결과는 반MB라는 노선이 대중의 목소리에 근거한 것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만이라면 107인 선언의 균형감각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선언이 발표된 시점이 5월 26일이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천안함 사건을 통해 정부와 언론이 대대적인 북풍몰이에 나선 상황에서 6·15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 성원들의 심성이 얼마나 근저에서 변화되었는지는 가늠하기 힘들었고, 여론조사 결과 또한 하나같이 야권의 패배를 고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여론조사 일반을 불신하며 사태를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연합정치에 대한 평가 자체가 애초에 균형감각을 결하고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07인 선언은 연합정치를 ‘묻지마 반MB연합’이라고 폄훼하는데, 이런 연합정치 견제론은 107인 선언 훨씬 전부터 손호철 교수에 의해 제기되어 여러 진보적인 학자들에 의해서 줄곧 되풀이돼온 것이어서 6·2 지방선거 직전의 정세에 의존한 판단은 아니었다. 나는 이런 연합정치 견제론이 소극적으로는 민주당의 패권주의를 경계하고 적극적으로는 민주당의 변화와 혁신을 촉구하는 담론으로서 일정한 가치와 객관적 근거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연합정치에 대한 오해: 묻지마 반MB 연합?


하지만 굳이 ‘묻지마 반MB연합’ 같은 표현을 사용해야 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이런 식의 표현과 그것이 함축하는 프레임은 연합정치의 시도에 대해 어떤 선험적인 불신을 유포한다. 연합정치를 위한 협상이란 당사자들이 모든 정치적 자원을 동원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상호협박과 패권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인 동시에 타협과 조율 그리고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 입각한 섬세한 언어와 결정을 빚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묻지마 반MB연합’ 같은 발언은 이런 과정에 각 정당의 진정어린 투신을 촉구함으로써 성과를 이끌어내는 데 일조하기보다 그 과정을 훼손함으로써 연합정치로부터의 이탈을 유도하는 면이 있다. 더불어 스스로 연합정치 견제론이라는 최초의 의도로부터 벗어나 독단론을 굳어버릴 위험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107인 선언은 한 정치학자의 발언을 인용하며 “반MB연합의 틀은 한국정치의 희망이기보다는 절망에 좀더 가까운 결과를 낳았다”고 말한다. 이 발언이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와 합치하지 않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거니와, 이런 사후평가를 떠나서도 그 발언의 전후 맥락을 검토하면 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난다. 그는 5+4로 불린 연합정치의 틀을 시민운동의 원로들에 의한 “사제적 권력”의 행사쯤으로 치부하고 이견을 억압하는 “도덕주의적 강요”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과연 5+4(내지 4+4)의 연합정치를 그렇게 볼 수 있을까? 5+4의 구성방식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시민운동이 선거시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오래된 틀을 깨고 최초로 당파성을 가지고 연합정치에 참여함으로써 형성된 틀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실험이었다.


시민운동이 이런 입장을 취한 이유는 한편으로는 참여정부를 경과하면서 보수적 시민단체가 활성화됨으로써 시민운동이 내적 분화를 겪게 된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성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의 법을 빙자하거나 우회하는 통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한명숙 전 총리뿐 아니라 다수의 촛불시민들이나 네티즌에게도 매우 억압적으로 행사되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107인 선언은 대중의 경제적 상황이라는 단일 준거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신자유주의 세력으로 등치할 뿐, 압제로부터의 정치적 해방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성과와 궁핍으로부터의 사회적 해방이라는 사회복지적 성과 사이에서 유지되어야 할 균형감각을 유지하지 못했다.


반MB 정서에서 읽어야 할 것


6·2 지방선거를 앞둔 시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언젠가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가 실패로 귀결될 것임을 믿었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4대강 사업이나 천안함 사건에서 보듯이 이명박 대통령의 실패가 우리 모두의 실패가 될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당장 중지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대중적인 반MB 정서의 핵일 것이다. 이런 대중의 지향을 생각하면 5+4 같은 시도는 더욱 존중되어야 옳다. 그런 형태의 틀이 충분한 성과를 냈는가는 별도로, 거기 참여한 시민운동가들은 연합정치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 대중의 반MB 투표행위로 인해 민주당의 패권주의가 더 강화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연합정치를 통해 민주당과 진보적인 정당들의 동반상승을 지향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균형감각을 고려한다면, 나는 저명한 지식인들이 자기 존재를 걸고 더 의미있게 6·2 지방선거에 개입하는 다른 방식이 적어도 두가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연합정치 견제론을 좀더 이른 시기에 더욱 힘차게, 그러나 ‘묻지마 반MB연합’ 같은 선동적 용어를 쓰지 않으면서 밀고 나감으로써 패권주의의 위험이 흐르는 정치적 협상을 제어할 규범적 틀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107인 선언이 나온 5월 26일 시점의 상황을 더 충실히 고려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 시점에서 지식인들이 진정으로 개입해야 할 지점은 진보신당에 대한 지지이기보다 이명박 대통령의 5·24선언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5·24선언을 통해서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모든 합리적 의문을 배제했다. 설령 합조단의 발표가 이명박 대통령 자신에게 확신에 이를 만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는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의 폭넓은 합의를 뒤집는 선언을 하기 위해서 국민적 논의를 구하지도 않았으며, 폭넓은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또다른 주권적 기관인 국회와도 아무런 논의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선언 장소조차 청와대나 국회가 아니라 하필이면 전쟁기념관에서 했다.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식의 대통령의 발언이야말로 합리주의의 보루가 되어야 할 지식인들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즉각 제동을 걸어야 했을 사안이었으며, 그것이 107인의 지식인이 동반자적 관점을 가진 진보신당을 보호하고 확장하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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