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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그리스 비극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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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 - 숭실대 교수

세계경제가 그리스라는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 2008년 가을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상징되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경제는 1929년 이후 최대 충격에 빠졌다. 그후 미국, 유럽연합, 중국, 일본 등 주요 경제세력의 신속한 유동성 공급과 경기부양 정책으로 최악의 상황은 면하면서 서서히 재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2010년 봄에는 다시 그리스에서 적신호가 켜지면서 위기 탈출의 꿈에 찬물을 끼얹었고, 그리스 위기가 ‘돼지들(PIIGS, 포르투칼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을 연상시키는 유럽의 다른 나라로 도미노처럼 전파될 위험이 부각되었다.


그리스 자체의 문제는 비교적 단순하다. 그리스정부가 예산적자를 메우고 공공부채의 이자와 상환금을 갚기 위해 빚을 얻는 과정에서 국제시장의 금융기관이 점점 더 높은 이자율을 요구했고, 그 결과 그리스 정부가 더 이상 자금을 조달할 수 없어 파산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과거 빚을 갚기 위해 새 빚을 얻었던 그리스라는 채무자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채권자들이 ‘살인적’ 이자율이 아니면 이제 돈을 더 빌려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로화 그물망 타고 번지는 경제위기


그리스가 과거처럼 ‘드라크마’라는 자국 화폐를 사용하고 있었다면 세계는 그리스의 비극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한 국가가 자본의 급격한 이탈로 위기를 맞는 것은 세계적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경제규모는 유럽 전체의 3%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리스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 16개국의 공동화폐인 유로를 사용하고 있는 까닭에 그리스의 지급불능이나 파산은 유럽 전체의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 나아가 유럽의 붕괴나 위기는 세계적 위기로 직결되는 위험이 있다.


그리스의 위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첫째, 위기의 원인에 대해서 그리스정부의 책임과 국제투기세력의 역할에 대한 지적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해 일각에서는 그리스정부가 무책임하게 적자를 누적하고 공공부채가 국내총생산 대비 120%에 달할 정도로 잘못된 정책으로 위기를 자초했다고 본다.


반면 프랑스의 싸르코지 대통령은 국제투기자본이 필요 이상으로 그리스를 공격함으로써 부도덕하게 위기를 조장했다고 비난한다. 과거 아시아 경제위기 때 마하티르와 쏘로스의 논쟁을 상기시키는 대립이다. 그리스정부가 예산 및 부채 관련 통계까지 조작하면서 국제사회를 속여온 책임을 벗을 수는 없겠지만 국제자본이 이 과정에도 개입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누구의 잘못이라고 단정하는 일방적인 원인 분석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원인과 책임에 대한 뚜렷한 시각차


둘째, 유럽의 단일화폐에 대한 영미와 유럽의 시각차가 두드러진다. 영국과 미국의 유럽통합회의론자(eurosceptic)들은 그리스 위기와 함께 때를 만났다는 듯이 경제수준이 다른 국가들이 하나의 화폐를 사용할 경우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경직적인 제도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미국의 진보적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조차도 유럽의 위기는 이미 경고됐던 일이라고 꼬집었다. 영미 쪽에서는 위기가 자연스럽게 유로권의 붕괴로 연결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측에서 보면 이런 시각은 역사를 모르거나 희망을 현실로 착각하는 태도다. 유럽은 1979년부터 유럽통화제도(EMS)라는 고정환율제를 운영했고 1992년∼93년에 환율제도(ERM)의 위기를 극복했기에 결국 1999년 유로화를 출범시킨 것이다. 그리스는 이 첫 배에 승선하지 못하고 그 이듬해에 간신히 유로선에 올라탔는데, 바로 이 과정에서 통계조작이라는 잘못된 단추를 끼게 된 것이다. 이는 역으로 유로권에 속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를 상징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셋째, 위기의 해결책에 관해서는 유럽내에서도 프랑스와 독일의 대립이 부각된다. 프랑스는 1980년대부터 유럽의 단일화폐를 만들면 이에 상응하는 유럽경제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독일은 통화정책이 정치에 좌우되면 인플레의 우려가 있다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현재까지 유럽은 독일의 입장을 반영하여 물가안정을 유일한 목표로 추구하는 독립적인 유럽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번 위기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1100억유로의 1차 그리스 지원계획과 7500억유로의 2차 유로권 안정화대책 등 회원국 정부의 긴밀한 협력, 유럽집행위원회의 조정능력 강화, 유럽중앙은행의 채권 매입 등 유럽경제정부의 필요성이 어느 정도 인정되고 강화되는 참이다.


그리스 위기는 좌파정부의 복지정책 탓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위기의 결과로 유럽이 세계금융에 대한 통제와 관리를 적극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라가르드 재무장관은 S&P사가 증시 폐장을 15분 앞두고 그리스의 신용등급 강등을 발표한 행태를 두고 패닉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난하면서 신용평가회사 통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유럽 차원에서 신용평가를 담당하는 투명한 공공기관을 설립해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또한 유럽연합 차원의 헤지펀드(투기성 기금)에 대한 규제도 준비중이며 유럽 헤지펀드의 70%가 활동하고 있는 영국도 그 필요성에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나섰다.


이처럼 다양한 논의구도에 비추어보면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의 언론보도와 담론은 매우 편향되고 편협하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 위기의 원인은 좌파정부의 과다한 복지정책 때문’이라는 식의 주장이 범람한다. 이런 말초적 수준의 분석이라면 2004년부터 위기 직전 2009년까지 집권한 우파정부의 통계조작 책임은 어쩔 것인가. ‘우파의 좌파적 포퓰리즘’의 결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영미 유럽통합회의론자들의 분석을 베끼다 보니 7500억유로라는 연합 차원의 대규모 대책이 나올 수 있으리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유로권의 붕괴 가능성이나 읊어대고 있다. 그리고 마치 시장의 반응이 신의 판결이라도 되듯이 추앙하고 있다.


금융자본의 배은망덕 복수극, 두고 볼 것인가

 
시장은 신(神)이 아님은 물론 냉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못하다. 시장이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최선의 결과를 낳는 요술 방망이가 아니라 큰손들이 주무르는 세계적 도박판에 가깝다. 돈 불리기에만 급급하다 망한 국제금융계의 큰손은 리먼브라더스 이전에도 부지기수다. 사기와 사업의 경계가 불분명해 수사를 받고 있는 골드먼 삭스의 계보도 세계 금융사에 뚜렷한 맥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시장을 규제하는 정부가 순결하거나 정의롭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세계경제위기의 주범은 분명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국제금융이며, 각 국 정부가 나서서 국민의 세금으로 그들을 구원해준 것은 명백하다. 그리고 이들 국제금융이 자신을 살려준 정부에 감사하기는커녕 ‘배은망덕’하게 그중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 공격하고 있는 것도 비극적인 현실이다. 다른 한편 유럽의 반자본주의 정당들이 주장하듯이, 그리스를 비롯한 주요 선진국 정부의 적자와 부채도 결국은 지난 30여 년간 지속된 부자와 자본에 베푼 감세 정책의 결과라는 해석에도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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