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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의 진실과 과학, 그리고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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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 참여연대 사무처장

천안함사건 1주년을 맞아 침몰 원인을 과학적으로 그리고 좀더 투명하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9월 13일 발표된 정부의 최종 조사결과를 두고 여전히 수많은 의문과 반론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과 정부는 이런 문제제기 일체를 ‘친북좌파의 음모론’ 혹은 ‘이념에 치우친 트집’으로 낙인찍는 압도적인 물량공세를 펼쳤다.

이 공격의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5개국(한·미·영·호주·스웨덴) 전문가들과 민군합동조사단(합조단)이 북한 잠수정이 발사한 어뢰에 의해 천안함이 폭침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둘째, 그럼에도 이를 믿지 못한다면 이념적 혹은 정치적인 편견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셋째, 이렇듯 이미 검증된 ‘천안함 폭침’을 두고 발생한 국론분열이 연평도 피격 같은 안보위협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천안함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하는 근거로 다음과 같은 주장 역시 제기될 수 있다.

사건 실체 밝히라던 보수언론의 표변

첫째, 천안함 조사과정 자체에 불신을 자초할 이유가 너무 많았다. “국민 불신이 사그라지지 않고 오히려 커진 것은 정부의 초기 접근이 정치적으로 무신경했고, 군의 세부 사항에 대한 잇따른 발표 실수가 의혹을 확대 재생산한 탓이 크다. 특히 무엇보다 6·2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은 피해야 마땅했는데도 그러지 못했다.”

둘째, 각 분야의 민간 전문가들에게 검증을 의뢰해야 한다. “이 난삽한 내용을 국민에게 날것으로 내놓기 전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검증하도록 하는 신뢰 보강 절차를 밟아야 했다.”

셋째, 국회검증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두 번 열리고 활동을 마감한 국회 천안함조사특위를 즉시 재가동해 국정조사에 버금가는 강도로 이 최종보고서에 대해 토론하고 검증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와 더불어 각계의 최고 전문가를 총동원해서라도 이번 결과에 대한 반론과 이론(異論)을 기탄없이 제시하도록 하고 조사단이 그들을 납득시키는 모습을 공개함으로써 그 과정을 통해 일부 국민이 갖고 있는 의혹을 해소하도록 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일이다.”

몇몇 독자는 이미 알아차렸을지 모르지만, 따옴표로 표시된 부분은 최종보고서가 발표된 직후 조선일보가 내놓은 사설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의문을 제기한 몇몇 전문가, 언론인, 그리고 시민단체 활동가와 지식인은 이 사설이 주문했던 바를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바로 그것 때문에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으로부터 공격받는 기괴한 상황에 처한 셈이다.

합조단 최종보고서의 핵심 모순

먼저 ‘추적 60분’ 제작진의 예를 들어보자. 이들은 지난해 11월 17일 방영된 〈천안함 의혹, 논란은 끝났나?〉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400여명의 전문가에게 천안함과 어뢰추진체에서 발견된 이른바 ‘비결정질 알루미늄산화물(흰색 분말)’의 샘플 분석을 의뢰했다. 그 전문가들은 요청을 받아들이는 대신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를 추천했다. 이에 KBS 프로듀서들과 《한겨레21》기자들은 K모 교수에게 분석을 요청했다. K모 교수가 내놓은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외부폭발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합조단이 주장한 흰색 분말이 자연상태에서 형성되는 침전물(황산염알루미늄수화물)의 일종으로서, 폭발로 형성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겨레21》에 따르면, 윤덕용 전 합조단장은 이 물질이 “대체로 폭발이 아닌 100℃ 이하의 자연상태에서 침전으로 생성되는 물질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역으로 이 물질이 폭발로 생성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는 없었기 때문에 폭발이 없었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물질을 분석한 합조단의 구성원은 황(S)이 포함된 화학물질이 폭발로 형성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이 물질이 폭발재(알루미늄 산화물)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인지했으면서도 합조단은 최종보고서에서 “수중에서 (폭발 외의 다른 원인에 의해--인용자) 비결정질 알루미늄산화물이 형성될 어떤 요인도 없다”고 발표한 것이다.

합조단의 ‘과학적인’ 검증과정을 논리적으로 다지 정리해보자.
1) 흰색 분말은 황산염알루미늄수화물로서 통상 100℃ 이하의 자연상태에서 침전된다. 황이 포함된 화학물질은 폭발로 형성될 수 없다.
2) 다만, 이 물질이 폭발로 절대 생성되지 않는다고 입증한 연구결과가 없으므로 폭발이 없었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3) 이 물질을 통칭하여 비결정질 알루미늄산화물이라 부르기로 한다.
4) 수중에서 폭발 외의 다른 원인에 의해 비결정질 알루미늄산화물이 형성될 어떤 요인도 없다. 

위의 검증과정을 종합해보면 합조단은 천안함에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자신들의 믿음에 과학적 사실을 꿰어맞추고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황산염알루미늄수화물이 알루미늄산화물로 둔갑해, 황이 포함된 화학물질은 폭발로 형성될 수 없다는 사실이 (비결정질) 알루미늄산화물은 폭발 외의 다른 방법으로 형성될 수 없다는 정반대의 전제로 뒤바뀌었다. 조선일보의 주문대로, 그리고 과학적 검증절차에 따라 ‘추적 60분’ 제작진은 합조단의 조사결과가 부정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그 결과 그들이 직면한 것은 해명이나 재반론이 아니라, 중징계였다. 

해외조사단은 과연 무엇을 밝혀냈나

한편, 조선일보나 국방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논리가 바로 ‘5개국 전문가들이 직접 참여하여 내린 결론’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음모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만일 해외조사단이 과학적으로 밝혀낸 것이 무엇인지 합조단이 투명하게 제시하고 있다면 이런 비난도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물론, 조사단을 파견한 각 국 정부도 자신이 찾아낸 진실을 드러내는 데 몹시 인색하다. 국방부는 합조단에 전문가를 파견한 4개국 정부와 조사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담은 양해 혹은 합의각서를 체결했다. 이 각서의 목적 조항에는 “천안함사건 조사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조사에 참여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사실상 정보공개금지라 할 만하다.

예컨대 토머스 에클스 미 조사단장은 2010년 5월 20일 조사결과 발표 회견에서 “미군 조사단은 한국과 긴밀한 협조하에서 조사를 진행했고 증언과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한 조사결과에 모두 동의한다”고 발언했다. 그 후 미국정부는 한국정부의 조사결과를 ‘과학적 분석’이라고 평가하면서,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언론과 민간과학자들은 어뢰추진체의 흡착물질과 관련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중요한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지만, 국방부 최종보고서 어디에도 해외조사단이 어뢰추진체에 대한 분석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없다.

또다른 사례는 천안함의 우현 스크루가 크게 휘어진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다. 스크루가 회전 반대방향으로 휘어졌다면 이는 선체 외부의 저항이나 장애물로 인한 것이며 좌초나 충돌의 가능성을 시사하므로 매우 중요한 쟁점이다. 국방부가 발간한 최종보고서는 “스웨덴 조사팀은 이와 같은 변형은 좌초로 발생할 수 없고, 프로펠러의 급작스러운 정지와 추진축의 밀림 등에 따른 관성력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하였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KBS ‘추적 60분’의 인터뷰에서 합조단의 민간위원 노인식 교수는 “스웨덴 쪽에 5000불을 주더라도 스크루 변형의 원인에 대한 조사결과자료를 받아보자”고 했지만 합조단에서는 유료조사를 의뢰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도 ‘보고서 기술(記述)상’의 실수임을 ‘인정했다’고 시인했다.

중립국감독위, “비밀정보에 접근 가능해야”

스웨덴 정부는 중립국이므로 이 조사와 검증의 과정이 과연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졌는지 평가하기 적합한 위치에 있다. 문제는 스웨덴 정부가 이를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스웨덴 정부가 전문가를 파견했을 뿐만 아니라 군사정전위의 중립국감독위 구성원으로서 천안함사건에 대한 유엔사의 검증작업을 참관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유엔안보리에 회람된 참관보고서에 따르면, “중립국감독위 참관인들이 정보 브리핑에 참여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스웨덴 대표는 세탁된 버전(a scrubbed version)의 정보 브리핑을 받았다. 폴란드와 스위스 대표들도 취사선택된 정보에 한해 별도의 브리핑을 받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이 보고서는 “충분한 수준의 투명성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중립국감독위가 한반도에 파병한 국가들(교전국)과 같은 수준으로 비밀정보에 접근하도록 제도가 갖추어져야 한다”고 권고한다.

참여연대는 현재 주한 미대사관에 이와 관련된 질의서를 전달하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주한 스웨덴대사관에도 사실관계를 밝혀주기를 요구하는 질의서를 발송했다. 그런데 보수언론과 국방부는 이런 의문점에 대해 보도하는 대신, 질의서 발송 자체를 ‘음모론’에 경도된 국론분열 행위로 매도하기에 급급하다. 

합리적 문제제기는 시민의 기본권

참여연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천안함사건 최종 조사결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합조단이 발표한 내용을 번복한 사례는 무려 23개 항목에 이른다. 심지어 합조단은 최종보고서 발표 이후에도 여러차례 말을 바꾸었다.

물기둥, TOD 동영상, 어뢰설계도처럼 잘 알려진 쟁점도 있지만, 어뢰를 발사했다는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에 대한 말바꾸기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사례도 있다. 합조단 주장에 따르면 한미 정보당국은 지난 5년간 연어급 잠수정을 식별하여 추적하고 관련 정보를 세계 유수의 군사정보기관에 제공해왔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미 정보당국이 주축을 이루는 다국적정보분석 태스크포스(TF)는 5월 20일 발표 당시 연어급 잠수정의 배수량이 130톤급이라고 발표했다가 유엔 보고서에서는 70톤급∼80톤급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과 정부는 의문을 제기하는 과학자와 시민을 좌경분자로 매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정부에 요구하는 바는 지극히 자유민주주의적인 것이다. 최소한의 투명성, 책임성, 표현의 자유, 과학적 엄밀성이 그것이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기초가 아닌 것이 있는가?

지금 천안함사건 조사결과에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는 민주적 기본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친북 반국가세력은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없다, 차라리 북으로 가라’는 비난을 숱하게 듣고 심지어 일신상의 위협마저 감수해야 하는 지경이다. 그러나 확신하건대, 우리가 사는 여기가 부족하나마 민주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한방에 갈 수 있다’는 눈 부라림에 주눅들지 않는 이성적이고 용기있는 시민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천안함의 진실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또한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할 민주적 권리는 어떤 경우에도 존중되어야 한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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