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송경호 기자] 1969년은 끽연자와 대중음악 청자들이 기념할 만한 해다. 담배 '청자'가 나왔고 가수 김추자(63)가 1집 '늦기 전에'로 데뷔했다.
1970년대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청자와 김추자의 인기는 대단했다.
특히 김추자는 허스키하면서 구성진 목소리와 파격적인 퍼포먼스, 육감적인 몸매로 당대를 풍미했다.
'한국 록의 대부'로 통하는 신중현(76) 사단의 간판으로 활약하며 '늦기 전에' '커피 한 잔'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님은 먼 곳에' 등을 히트시키며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1980년 정규 5집을 발표하고 이듬해 결혼한 이후 활동이 뜸했다.
그러다 33년 만인 27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컴백을 알렸다. '원조 디바'의 복귀에 지난해 조용필(64) 못지 않은 반향이 가요계에 일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한 임진모(55) 대중음악평론가는 김추자의 과거 활약에 대해 "한반도 반쪽을 들었다 놓았다 한 하나의 현상"이라고 평했다. "남진·나훈아의 라이벌 구도, 조용필의 히트, 서태지의 활약 등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이 현상이에요. 이들에 견줄 수 있는 것이 '김추자 현상'입니다."
"당시 트로트는 남진, 나훈아가 했고 젊은 음악으로 록과 포크는 신중현이 했습니다. 특히 신중현은 록과 사이키델릭을 실험했는데 이를 김추자를 통해서 전달했죠. 신중현의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메신저이자 전달자였습니다."
무엇보다 김추자 노래는 서구적인 느낌의 음악 같았다. "펑키·솔 같은 흑인 음악, 즉 우리가 팝송에서나 들을 수 있는 서구적인 음악을 전달한 거죠."
여자 가수 중 최초로 엉덩이를 흔든 '댄스 가수'라는 점도 짚었다. "그전까지 춤을 춘 사람은 있어도 엉덩이를 흔든 사람은 없었습니다. 과격했죠. 새마을 운동을 할 당시였는데 도발이었죠. 엘비스 프레슬리가 냉전 중에 도발한 것과 비슷합니다. 이것을 지금도 하실 수 있다는 거잖아요. 김추자는 절대 복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런 의지와 욕망이 있어 돌아온 것 같아요."
보컬 측면으로도 훌륭한 가수였다. "저음과 중음 고음이 다 좋았다"고 전했다. 그래서 "댄스 음악에 강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이 김추자의 복귀를 고대했을까. "당시 서구음악 같은 놀로 대중음악 판이 굉장히 커지고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줬기 때문입니다. 마니아, 음악을 잘 아는 사람들뿐 아니라 범대중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음악으로 어필했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거죠."
김추자는 다음 주 중 정규 6집 '잇츠 낫 투 레이트(It's Not Too Late) … 몰라주고 말았어'를 발매한다.
33년 만에 내놓은 이번 앨범은 김추자가 생에 처음으로 발매하는 CD 앨범이다. 주로 과거의 미발표곡 등 9곡이 실렸다.
'몰라주고 말았어' '내 곁에 있듯이' '고독한 마음' '태양의 빛' '가버린 사람아' 등 신중현의 곡이 5곡이나 된다. 이와 함께 김추자의 히트곡 '무인도'를 만든 이봉조(1931~1987)가 세상을 뜨기 전 그에게 받은 곡 '하늘을 바라보소'와 '그리고', 트로트 작곡가 김희갑(78)의 '그대는 나를', 자이(jai)라는 이름으로 홍대 주변에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으로 가수 이은미(48) 6집에 참여한 정혜정의 '춘천의 하늘' 등이 담겼다.
'사랑과평화'의 멤버이자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베이시스트 송홍섭(60)을 비롯해 기타리스트 한상원(54), '위대한 탄생'과 '긱스'의 멤버로 활약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정원영(54) 등 내로라하는 세션들이 힘을 실었다.
이날 록을 방불케 하는 '가버린 사람아', 사이키델릭한 '몰라주고 말았어', 허스키한 저음이 매력적인 '고독한 마음', 네오 트로트 '하늘을 바라보소' 등 4곡을 음원으로 들려줬는데 예전 못지 않은 허스키함이 인상적이다. 더 능수능란해지고 보컬의 농도는 더 짙어졌다.
임 평론가는 "역사적인 컴백"이라고 치켜세웠다. "옛날 분들은 주로 잘 알려진 곡을 리메이크하는 형식인데 이 9곡은 우리에게는 신곡과 다름없어요. 옛날 곡은 4곡인데 저희가 잘 모르는 김추자의 곡이죠. '님은 먼곳에' '늦기 전에' 스타일을 가져올 줄 알았는데 새로운 곡들이죠."
김추자 복귀에 대한 가요 전문가들의 기대는 일단 긍정적이다. 옛 가요 전문가인 박성서(58) 대중음악평론가는 "60~70년대 트렌드를 바꾸며 매우 앞서간 가수"라면서 "40~50년 전 추구했던 댄스음악의 시대 그 주인공이 직접 다시 등장해 후배들과 함께 만들어갈 우리 대중음악은 그 폭이 훨씬 넓어지고 두터워질 것"이라고 봤다.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의 지은이인 최규성(53) 대중음악평론가는 "7080 가수들의 붐 이후 등장하지 않은 '빅 3 여성 뮤지션'이 김추자·박인희·이연실인데 그중 한 명인 김추자의 컴백은 중장년에게 첫사랑을 만나는 설렘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추자 이전까지 몸매가 여과 없이 드러나는 가수는 없었다"면서 "오디오 시대를 비디오 시대로 견인한 비디오와 오디오를 겸비한 가수로 활약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다만, 음원 위주로 소비하는 젊은이들과 교감을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박 평론가는 "60~70년대 젊은이들과 현재 젊은이들이 시대를 뛰어넘어 동시에 공감하는 가수의 등장은 우리 대중음악계에 오래된 과제이자 숙원"이라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딸이 함께 손잡고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가수로 탄생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평론가도 "조용필, 이선희처럼 음원 순위에서 얼마나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가 숙제"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