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송경호 기자] 주변 사람이 정체불명의 누군가에게 납치됐다. 어떻게 할 것인가.
리엄 니슨('테이큰')이었다면 "찾아서 죽일 것"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처절한 응징에 나섰을 것이다. 브루스 윌리스('다이하드')였다면 "오늘은 일진이 더럽다"며 자동차, 비행기 할 것 없이 다 박살 낸 뒤 일을 '처리'하고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덴젤 워싱턴('맨 온 파이어')이었다면 한마디 말 없이, 쿨하면서 잔인하게 상대를 고문하고 정보를 얻어 임무를 완수하고 산화했을 것이다. 원빈('아저씨')이었다면 시종일관 노려보다가 자신이 '옆집 아저씨'라고 운을 뗀 뒤 치고받고 싸우다 상대를 죽인 뒤 눈물 흘리며 감옥으로 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빅매치'(감독 최호)의 '최익호'(이정재)는.
이 해맑은 남자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 '몰래 카메라'라고 생각하다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달리고 그러다가 잠시 멈춰 정말 몰래 카메라가 아니냐고 되묻는다. 이 긍정주의 스포츠맨은 복수에 관심이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굳이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단지 사랑하는 형을 찾고자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치고 달릴 뿐이다. 유머를 잃지 않은 채 그의 과거 별명 '돌아오지 않는 포워드'처럼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격투기 선수가 돼 얻은 별명 '좀비 파이터'처럼 강한 맷집으로.
'빅매치'는 '최익호라는 캐릭터'가 만드는 액션 활극이다. '빅매치'를 단순히 액션영화로 분류하는 건 의미 없다. 액션에도 캐릭터의 특성이 묻어나는 법. '빅매치'는 '최익호식 액션 영화'다. 액션보다는 최익호의 캐릭터가 포인트다. 최익호라는 인물의 성격 자체가 이 영화의 지향점이다.
최익호는 이종격투기 세계 최강자 중 한 명이다. 전직 축구선수였던 그는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격투기 선수로 전업, 승승장구한다. 챔피언 결정전이 취소된 다음 날 조깅을 마치고 온 최익호는 형이자 코치인 영호가 살인 사건에 휘말렸고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최익호 또한 용의자로 경찰에 붙잡힌다. 경찰서에 갇힌 그에게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 "내가 네 형을 붙잡아 두고 있다. 내 지시를 따라야 형을 만날 수 있다." 익호는 형을 구하기 위해 영문 모를 목소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최호 감독은 장르의 결을 살릴 줄 아는 연출가다. 그의 최근작인 '고고70'(2008)은 한국 음악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작품이었다. 허다한 음악영화가 음악을 삶의 애환을 담아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만, '고고70'은 달랐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온전히 '데블스'라는 밴드의 생로병사를 담기 위해 소진된다. 본연의 목적에 충실함으로써 밴드 음악이 줄 수 있는 짜릿함을 영화적으로 재현한다. '사생결단'(2006)에서도 그랬다. 선과 악의 경계가 일그러진 누아르 장르의 음울함 그 자체를 담아내려고 했다.
최호 감독은 영화가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장르의 본질을 살리는 것 자체가 곧 메시지라는 믿음이다.
'빅매치'는 액션이 주는 카타르시스에 영화적 힘을 옹골지게 쏟아부었다. 납치소재 영화 특유의 응징과 복수가 주는 끈적함은 없다. 납치한 사람이 있고, 납치당한 사람이 있고, 찾으려는 사람이 있다는 단순한 설정만 있다. 이들 사이에 장애물을 만들어 놓고 '찾는 사람'이 어떻게 관문을 차례로 통과해 마지막 스테이지에 도달하는지를 관찰할 뿐이다.
이런 연출은 정확히 액션어드벤처 게임의 형식과 일치한다. 이런 종류의 게임은 캐릭터를 선택하고, 그 캐릭터가 전진하면서 적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스테이지가 진행될수록 난도가 높아지고, 마지막에는 최종 보스를 만난다. 영화는 이를 노골적으로 흉내낸다. 최익호가 '에이스'(신하균)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그는 시간 안에 에이스가 설계한 게임을 차례로 '클리어'해야 한다.
'빅매치' 연출은 스스로 정한 콘셉트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영화의 세부사항을 정확하게 통제한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최익호는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싸우지 않는다. 다만 내가 가는 길을 막기 때문에 잠시 옆으로 치우는(클리어) 식이다. 이런 액션은 게임이라는 설정에 부합한다. 기계적으로 적을 처치하는 게임 속 캐릭터와 최익호의 행동은 똑 닮았다. '빅매치'의 액션은 실감을 살리기보다는 쾌감을 살리기 위해 스턴트와 컴퓨터그래픽(CG)을 적당히 섞는다. 이는 실제 인간이 구현하기 힘든 동작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다. 과장된 액션이나 설정이 보인다면 그것은 '빅매치'가 철저하게 유도했다고 봐야 한다. 그 과함은 게임을 할 때 적을 무너뜨리는 순간의 짜릿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촬영 방식도 다양하다. 컷을 잘게 나누기도 하고 롱테이크를 쓰기도 한다.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움직여 액션의 질감을 더욱 풍부하게 보여준다.
'수경'(보아)의 과거가 드러나는 장면 등 몇몇 장면은 매우 관습적이다. 도형사(김의성), 도끼(배성우) 등 주변 인물들이 도구적이고 기능적으로 쓰인다. 그럼에도 '빅매치'가 러닝타임 내내 힘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건 마치 게임 같은 액션이 주는 짜릿함을 선명하게 구현했기 때문이다.
'빅매치'의 가장 큰 장점은 최익호를 조형하는 방식이다. '빅매치'는 아주 짧고 효과적으로 최익호가 어떤 인물인지 설명한다. 많은 영화가 인물의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인위적인 에피소드를 집어넣으면서 시간을 소비하는 데 반해 '빅매치'는 짧은 오프닝 시퀀스만으로 최익호의 모든 것을 말한다. 그가 어떻게 격투가가 됐는지, 격투기 선수 이전과 이후의 별명은 무엇인지, 그가 어떤 유형의 파이터인지를 격투기 캐스터의 목소리로 설명하는 방식은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장면이다. 그리고 이런 최익호의 개성은 영화 내내 지속된다. 어설픈 감동 따위를 최익호에게 기대해선 안된다.
최익호가 영화상에서 딱 두 번 보여주는 일명 '좀비 댄스' 하나만으로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기도 하다. 이 액션영화는 캐릭터의 특성과 액션의 특징, 연출 방식을 통일시켜 영화가 정신없이 진행되는 듯한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이정재는 '관상'(2013)과 '암살'(2015년 개봉 예정) 사이 소품처럼 찍은 이 영화에서 오히려 최근 가장 좋은 연기력을 보인다. 힘을 완전히 빼고 즐기면서 연기하는 듯한 그의 모습은 최근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한다.
신하균, 이성민, 라미란, 김의성, 배성우 등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탁월하다. 특히 김의성과 배성우는 앞으로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호 감독은 애초에 걸작 같은 걸 만들 생각이 없었다. '빅매치'는 영화가 왜 '오락(게임)'이면 안 되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일 뿐이다. '뭐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