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5.12.19 (금)

  • 맑음동두천 7.3℃
  • 구름많음강릉 14.3℃
  • 맑음서울 8.8℃
  • 맑음대전 10.5℃
  • 구름조금대구 11.0℃
  • 구름조금울산 14.8℃
  • 맑음광주 15.8℃
  • 맑음부산 15.6℃
  • 맑음고창 15.4℃
  • 구름많음제주 16.9℃
  • 맑음강화 8.3℃
  • 맑음보은 9.3℃
  • 맑음금산 12.2℃
  • 맑음강진군 14.1℃
  • 맑음경주시 12.0℃
  • 맑음거제 10.5℃
기상청 제공

문화

욕망과 폭력이 빚어내는 지옥도…영화 '강남1970'

URL복사

[시사뉴스 김한나 기자] "땅종대! 돈용기! 그래 우리 끝까지 한번 가보자!"

김종대(이민호)와 백용기(김래원)가 가닿으려 했던 그 끝은 어디였을까. 그들은 그 끝에 뭐가 있다고 생각했을까. 어차피 터널 속에 갇힌 삶, 머무르다 죽나 전진하다 죽나 죽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들은 간다. 악착같이 기어서 간다. 팔꿈치가 까지고 무릎이 닳아도 꾸역꾸역 간다. 혹시나 그 끝에 빛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러나 그들은 사실 빛이 뭔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쩌면 전진하는 게 아니라 터널 속을 맴돌며 헤매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고아 종대와 용기는 출생신고도 돼 있지 않은 거지다. 세상은 벼랑 끝에 매달려 사는 그들의 손을 짓밟는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손을 밟고 있는 그 발을 잘라버리는 방법밖에 없다. 종대와 용기의 살아남기 위한 '발악'이 1970년 강남으로 모여들던 권력과 조우해 폭력으로 터져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유하 감독은 영화 '강남1970'에서 땅과 돈과 권력을 향한 욕망이 펼쳐보이는 지옥도 속에서 이리저리 휘젓고, 또 휘둘리는 '두 주먹'의 처음과 끝을 조용히 따라다니며 응시한다.

넝마주이인 종대와 용기의 삶은 야당 전당대회에 깽판을 놓으라는 명령을 받은 깡패 무리에 우연히 뒤섞이면서 바뀐다. 3년 후 종대는 은퇴한 조직의 중간보스 길수(정진영)의 가족이 되고, 용기는 또 다른 폭력조직의 행동대장이 된다. 종대는 희망 없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민 마담(김지수)을 도와 강남 땅 투기 사업에 뛰어든다. 용기와 다시 만난 종대는 더 큰 야망을 위해 용기와 힘을 합쳐 서 의원(서태곤)의 강남 땅 이권다툼에 뛰어든다.

유하 감독의 영화에는 언제나 폭력과 욕망이 뒤섞여 있다. 유하 감독 본인이 밝혔듯이 그의 신작 '강남1970'은 '말죽거리 잔혹사'(2004) '비열한 거리'(2006)와 한 데 묶을 수 있는 작품이다. 유하 감독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폭력의 탄생을, 폭력에 대한 매혹과 반성의 경계선에 선 사춘기 남학생을 통해 관찰한다. '비열한 거리'는 돈을 향한 욕망이 폭력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한 남자의 삶을 거울삼아 바라본다. '강남1970'은 폭력과 욕망에 대한 두 영화의 시선을 하나로 겹쳐 바라보는 작품이다. 생존에의 욕망은 폭력을 촉발하고, 권력은 폭력을 이용한다. 여기서 유하 감독이 드러내고자 하는 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어코 얻어낸 기득권이 아니라 그 아수라장 속에서 스러져가는 강자처럼 보이는 약자들이다. '강남1970'은 이런 점에서 볼 때 '거리 3부작' 혹은 '강남 3부작'이 아니라 '폭력과 욕망 3부작'의 완결편이라고 말하는 게 더 옳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강남1970'은 성실하게 서사를 끌고가는 방식을 택한다. 스타일에 기반을 두고 예쁜 화면을 보여주거나 파격적인 형식을 취하거나 시각효과를 극대화하거나 단순히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건 애초에 유하 감독의 방식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영화에서 항상 서사에 집중했다.(아이러니 한 건 그가 시인이었다 점이다) 아마도 '강남1970'은 그가 들려준 이야기 중 가장 복잡한 이야기일 것이다. 유하 감독이 전작보다 상대적으로 복잡한 서사를 택한 이유는 매우 당연해 보이는데, 그것은 좀 더 극적인 마무리나 새로운 서사로의 도약을 위한 것은 아니다. 등장인물 각자의 욕망이 서로 뒤엉켜 만들어내는 부분적 성공과 일부의 파국을 더 명징하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세 무리가 한 장소에서 벌이는 진흙탕 싸움은 이 서사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유하 감독은 13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대부분을 서사를 빽빽하게 쌓아올리는 데 할애한다. 덕분에 '강남1970'의 서사는 치밀한 논리를 확보하고, 관객이 자연스럽게 극 속에 몰입하게 한다.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촬영 면에서 유하 감독은 전작에서 택한 방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쇼트가 많은 것이 그렇다. 종대나 용기는 타고난 악인이 아니다. 그들은 악인이 돼야 살아남을 수 있는 불행한 시대의 인물들이다. 그들의 마음은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김종대와 백용기의 폭력에는 쾌감이 아닌 불안감이 엿보인다. 이런 그들의 우수(憂愁)를 객석으로 스며들게 하는 건 역시 클로즈업된 얼굴이다.

언뜻 '강남1970'은 누아르 영화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빗나간 독법이다. 이 영화는 누아르와는 거리가 멀다. 종대와 용기를 장르적으로 과장된 인물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드라마틱하게 조형된 캐릭터는 아니기 때문이다. 종대와 용기는 오히려 현실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있다.

이 세계에서 영화의 폭력은 정당성을 얻는다. '강남1970'의 폭력은 '말죽거리 잔혹사'나 '비열한 거리'의 그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사용된다. 앞선 두 작품에서 유하 감독은 폭력을 어느 정도 즐기는 것처럼 보이나(표현 방식에서) 이번 영화에서는 다르다. '강남1970'의 폭력은 가진 것이라곤 몸뚱아리 밖에 없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실세들이 지도를 보며 강남 개발사업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달리 폭력조직은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들을 해결하기에 급급한 집단이다.

종대와 용기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는 건 터널 끝에 보이는 빛에 다가가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빛 자체가 애초에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하 감독이 말하는 "권력이 폭력을 소비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의미다.

이미 한류스타로 수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이민호는 이번 영화를 통해 스타가 아닌 배우로 힘찬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비극을 향해 달려가는 불안한 청춘의 이미지를 자신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한다. '강남1970'에서 재벌 3세를 연기하던 이민호는 없다. 김래원은 이 영화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드라마 '펀치'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그는 자기 속에 숨겨진 비열함을 꺼내 보임으로써 연기인생 제2막을 열어젖혔다. 두 사람 외에도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역할에 부응하는 정확한 연기를 보여준다.

어떤 관객은 '강남1970'을 전작들의 '동어반복'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또 영화적 발전이 없다고 꾸짖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측면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때로는 관습적인 장면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한국영화의 매우 취약한 서사 전개를 고려할 때 유하 감독의 신작이 갖는 가치는 무시할 수 없다. 유하 감독은 연출가 특유의 인장(印章)이 없다는 말을 들어왔다. 이제는 서사 자체가 그의 인장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는 '폭력과 욕망의 3부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비만학회·한국릴리 미디어 세션...올바른 비만·2형당뇨병 관리 방안 모색'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비만을 질환으로 인식하고, 정부가 적극적인 치료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견이 나왔다. 17일 대한비만학회와 한국릴리가 17일 비만과 2형 당뇨병을 사회적 건강 과제로 규정하고, 치료 중심의 관리 전략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릴리와 대한비만학회는 이날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사회적 건강 과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비만·2형당뇨병 관리 방안 모색'을 주제로 미디어 세션을 공동 개최했다. 이번 세션은 국내 비만·당뇨병 치료 환경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인크레틴 기반 주사 치료제를 포함한 최신 치료 옵션이 적절히 활용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논의하고 미충족 수요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제2형 당뇨병 및 비만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의 약물들이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등 여러 비만치료제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첫 번째 연사로 나선 대한비만학회 총무이사인 이재혁 명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왜 비만 치료가 중요한가?: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대한비만학회의 노력'을 주제로 학회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비만은 단순한 체중증가 상태가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지만, 여전히 법정비급여 질환

정치

더보기
내란특검 수사 결과에 與“헌정 회복 이정표”vs野“태산명동서일필로 끝난 정치보복”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15일 발표된 내란 특검 최종 수사 결과에 대해 여야는 상반된 평가를 내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헌정 회복에 많은 기여를 했음을 강조한 반면 국민의힘은 성과 없는 ‘내란몰이’로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16일 국회에서 개최된 원내대책회의에서 “'12·3 내란사태는 권력 유지를 위한 불법 계엄이었다‘ 어제 내란 특검은 12·3 내란 사태 수사의 결론을 공식 발표했다”며 “활동을 마무리한 내란 특검은 헌정을 회복하기 위한 중요한 이정표였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 한 시도에 국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분명히 보여준 과정이었다. 관련자 기소와 사실 규명, 책임 구조의 윤곽까지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 누구든 헌정을 흔들면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다는 원칙도 분명히 세웠다”며 “아직 남은 과제도 분명하다. 내란의 기획과 지휘 구조, 윗선 개입 여부 등 핵심 쟁점 가운데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재판은 신속하고 단호하게 진행돼야 한다”며 “준엄한 단죄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내란 세력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민주주의의 역사에 분명히 새겨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대법원, 내란전담재판부 설치...“특별법 계획대로 추진”vs“위헌 법률 만들 이유 사라져”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대법원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위한 예규를 제정한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계획대로 추진할 것임을 밝혔고 국민의힘은 내란전담재판부 특별법 제정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대법원은 18일 보도자료를 발표해 “2025년 12월 18일 개최된 대법관 행정회의에서 ‘국가적 중요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행 헌법 제108조는 “대법원은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소송에 관한 절차, 법원의 내부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정할 예규의 주요 내용은 형법상 내란의 죄와 외환의 죄, 군형법상 반란의 죄에 대한 사건의 국가적 중요성, 신속 처리 필요성을 감안해 대상사건만을 전담해 집중적으로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하는 것이다. 현행 형법 제87조(내란)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우두머리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2.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그 밖의 중요

문화

더보기
고립돼 가는 현대인의 내면... 연극 ‘동물원 이야기’ 공연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에드워드 올비의 대표작 ‘동물원 이야기(The Zoo Story)’가 12월 20일(토) 오후 2시 밀양아리나 꿈꾸는 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이번 공연은 밀양시가 주최하고 대경대학교 공연예술ICC가 주관하며, 극단 가변과 극단 예빛나래가 공동 제작했다. 작품은 뉴욕 센트럴파크의 한 벤치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인물 제리와 페트라(원작의 피터를 여성으로 트랜스한 설정)의 대화를 통해 현대 사회의 고립과 소통의 부재를 날카롭게 드러내는 심리극이다. 사회의 주변인에 가까운 제리와 평범한 중산층 페트라의 만남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관계의 의미를 드러내며, 예상치 못한 결말로 관객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이번 무대는 ‘1960년대 초연 이후 지금 시대에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에드워드 올비의 대표작을 새롭게 해석한 공연’을 표방하며, 도시의 소음 속에서 점점 고립돼 가는 현대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작품은 단 두 명의 인물과 최소한의 공간만으로도 강렬한 긴장과 몰입을 만들어 내며, 관객에게 나와 타인 간의 거리와 소통의 의미를 되묻는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이자 연출을 맡은 배우진은 “‘동물원 이야기’는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유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마음이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 아직 살 만한 세상이다
일상생활과 매스컴 등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은 때로는 냉혹하고, 험악하고, 때로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삭막하게 만든다. 하지만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혹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주하는 작고 따뜻한 선행들은 여전히 이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처럼, 우리 주변에는 서로를 향한 배려와 이해로 가득 찬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필자가 경험하거나 접한 세 가지 사례는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해 소개할까 한다. 첫 번째 이야기: ‘쪽지 편지’가 부른 감동적인 배려 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를 저지른다. 아무도 없는 어느 야심한 밤. 주차장에서 타인의 차량에 접촉 사고를 냈는데 아무도 못 봤으니까 그냥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양심에 따라 연락처와 함께 피해 보상을 약속하는 간단한 쪽지 편지를 써서 차량 와이퍼에 끼워놓았다. 며칠 후 피해 차량의 차주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손해배상 절차에 대한 이야기부터 오가기 마련이지만, 차주분은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쪽지까지 남겨주셔서 오히려 고맙다”며, 본인이 차량수리를 하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