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5.10.29 (수)

  • 흐림동두천 15.1℃
  • 흐림강릉 15.7℃
  • 흐림서울 16.5℃
  • 흐림대전 19.4℃
  • 흐림대구 19.1℃
  • 흐림울산 19.5℃
  • 흐림광주 22.1℃
  • 흐림부산 21.7℃
  • 구름많음고창 23.2℃
  • 맑음제주 26.3℃
  • 흐림강화 15.4℃
  • 흐림보은 18.0℃
  • 구름많음금산 19.7℃
  • 흐림강진군 23.0℃
  • 흐림경주시 18.6℃
  • 흐림거제 21.8℃
기상청 제공

문화

웃을 수밖에 없을걸…영화 '스물'

URL복사
[시사뉴스 송경호 기자]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만 해도 청춘영화의 주인공은 오직 청춘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방황하는 인물이었다. 그들은 그 방황하는 청춘을 '간지'로 승화했고(비트·태양은 없다), 관객은 그들의 모습에 환호했다.

최근 청춘영화(넓은 의미의)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그들은 마음 한구석에 또렷이 남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내면의 붕괴를 멍하니 지켜보거나 그 상처와 조용히 맞서느라 세상과 불화하는 인물들이다(거인·한공주·파수꾼). 관객은 이들에게도 반응했는데, 그것은 시대와 사회 현실이 투영된 어떤 징후였다. 이런 영화들에서 청춘의 에너지와 발랄함 따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두 가지 큰 맥락에서 볼 때 '스물'(감독 이병헌)은 정체불명의 청춘영화다. 이 영화에는 방황하는 모습에도 겉멋이 잔뜩 든 예전의 청춘도 없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악을 쓰는 듯한 최근의 청춘도 없다. 이 영화의 '스무 살들'은 술만 마시면 실수를 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자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른 채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는 백수다. 또는 '그냥' 가난한 재수생이다. 그들이라고 고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진지하지 않다.(진지할 줄 모르고). 상처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상처는 오히려 친구들의 놀림거리일 뿐이다. '스물'은 '애어른'이 된 청춘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관객에게 '그거 아니잖아. 스무 살은 이렇게 우스운 거잖아. 왜 이래'라며 눙치는 것처럼 보인다.

'스물'은 어떤 콤플렉스도 없이, 혹은 아무런 자격지심 없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최소화한 채 스무 살을 사는 이들에 관한 영화다. 이병헌 감독에게 스무 살은 소소한 에피소드(이들의 아지트인 중국집도 '소소반점'이다)에 성적인 유머와 '병맛' 코드를 결합한 코미디에 불과하다.

치호(김우빈)와 경재(강하늘), 동우(이준호)는 고등학교 시절 한 여자와 엮이며 친구가 된 사이다. 스무 살이 된 그들은 조금씩 각자의 길을 간다. 경재는 대학에 가 선배와 사랑에 빠진다. 치호는 하고 싶은 것 하나 없이 연애에 매진한다. 만화가가 되고 싶은 동우는 대학 등록금이 없어 재수를 결심한다.

'스물'은 오래간만에 나온 관객을 웃길 줄 아는 코미디 영화다. 이 재기발랄한 영화는 소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성인이라고 할 수 없는 '미성숙(가치판단을 뺀 개념)의 시기'의 세 인물을 활용해 마음껏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이는 이 영화의 제목이 '스물'이어야 하는 이유와 맞닿아있다. 스무 살은 모든 게 어설프고 하는 짓마다 찌질해도 귀엽게 보일 수 있는 나이다. 동시에 법적으로는 미성년자가 아니므로 성적인 유머의 남발을 그 시기의 혈기왕성함으로 포장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스물'의 이야기들은 과함과 과하지 않음의 경계에 정확하게 위치해 최소한 기분 나쁘지 않은 개그를 친다.

이 영화의 유머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건 그것이 철저히 이병헌 감독 개인의 취향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신선함은 보편과 관습의 틀을 넘어서는 창의성의 결과물이라기보다 매우 자기중심적인 유희에 가깝다. 가령, 치호의 '꼬추 행성의 침공' 시나리오라든지, 경재의 동영상이 공개되는 순간의 '모래시계 패러디', 동우의 2대8 가르마 에피소드는 철저히 이병헌 감독의 장난기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스물'의 유머를 떠받드는 또 하나의 축은 '비틀기'다. 극 중 스무 살들이 겪는 이야기들은 매우 보편적이고, 때로는 관습적이다. 여선배를 좋아하는 대학생 이야기나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꿈을 찾은 청년 이야기, 가난한 재수생과 쓰러진 엄마 이야기는 평범한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이병헌 감독이 이런 에피소드를 끝맺는 방식이다. 스무 살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이들의 대화는 "섹스하자"라는 말로 끝난다. 꿈과 현실의 괴리를 이야기하는 동우를 향해 친구들은 "근데 머리는 왜 그래?"라고 묻는다. 여선배를 보호하고자 경재의 의리있는 행동에는 아무런 힘이 없다. 이병헌 감독은 이를 통해 반전의 웃음을 제공함과 동시에 청춘을 다룬 극의 전형성을 비웃는다.

감독 개인의 취향과 비틀기라는 유머의 두 개 축은 흡사 영화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감독 매슈 본)의 그것을 떠올리게도 한다. '킹스맨'의 매슈 본 감독은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유머를 영화에 장착했고, 기존의 스파이 영화를 쉬지 않고 조롱했다.

이런 지점에서 볼 때, 이병헌 감독은 애초 '스물'을 통해 어떤 메시지도 전달하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스무 살이라는 설정은 감독이 자신의 유머코드를 이식하기에 가장 적절한 나이였고,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객을 웃기기 위해 역으로 스무 살이라는 나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코미디를 만드는 게 아니고, 이병헌 감독 자신의 코미디가 스무 살에 딱 맞았을 뿐이다.

'스물'의 코미디를 살리는 건 역시 주연 배우 세 명의 연기다. 김우빈, 강하늘, 이준호의 배우로서 가능성은, 이 세 사람 중 누구도 튀려 하지 않고 서로의 캐릭터를 살릴 줄 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스물'에서 좋은 연기를 한다기보다 좋은 앙상블을 보여준다. 치호, 경재, 동우가 각각 다른 캐릭터로 독립된 에피소드를 수행하면서도 함께 모인 장면에서 이물감 없이 섞일 수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서로 스타로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연기하는 세 사람은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이 포기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영화가 부진한 이유는 간단하다. 뻔해서다. 뻔한 서사와 뻔한 연출, 뻔한 연기에 한국 관객은 지칠 대로 지쳤다. '킹스맨'의 성공과 '위플래시'의 선전은 한국영화 침체 이유에 대한 방증이다. '스물'은 춘래불사춘의 상황을 맞은 한국영화계에 작은 봄이 가져다줄 수 있는 영화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박찬대 의원 “캄보디아 ODA, 50억원 불용 직후 국제개발협력위 심사 안 받고 1300억원 예산 편성”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캄보디아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 추진 과정에서 50억원이 제도 미비로 불용된 직후 국제개발협력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1300억원의 예산이 편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28일 국무조정실과 한국수출입은행이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인천 연수구갑, 정무위원회, 3선, 사진)실에 제출한 답변 자료 등에 따르면 지난 2023년 12월 확정된 2024년도 민간협력전대차관 사업 예산 50억원은 전액 불용됐다. 이에 대해 한국수출입은행은 “사업 추진에 앞서 관련 제도 정비 및 리스크 관리 강화 등 내부 절차 마련을 진행했으나 동 작업에 예상보다 긴 시간이 소요돼 50억원 예산은 불용됐다(불용 시기=2024년 11월)”고 밝혔다. 국무조정실은 “캄보디아 대상 민간협력전대차관 사업은 2025년도 종합시행계획(요구액) 심의‧의결 이후에 정부예산안 수립 과정에서 편성된 사업이다”라며 “이후 국회 심의를 거쳐 2025년도 종합시행계획(확정액)에 포함돼 심의·의결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무조정실의 한 관계자는 “국회 심의‧의결 단계에서 해당 사업이 포함된 것을 나중에 인지했고, 앞선 절차가 정상적으로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지역네트워크】박용철 강화군수 취임 1주년 맞아 안정 ‧ 미래 ‧ 혁신으로 답하다
[시사뉴스 강화=지창호 기자] ‘군민 소통과 통합’을 슬로건으로 내건 박용철 강화군수가 취임 1주년을 맞았다. 강화군은 안정·미래·혁신의 세 축이 조화롭게 맞물리며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16일 보궐선거를 통해 취임한 박 군수는 흔들리던 군정을 신속히 안정시키는 한편, 대규모 국책사업 추진으로 미래 비전을 세우고, 혁신 과제를 잇달아 가동하며 군 전역에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군수는 “접경지역과 인구감소, 각종 규제라는 3중고에 혁신하지 않으면 지방소멸의 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지난 1년 군정에 매진했다”며, “7만 강화군민의 통합된 힘과 우리 공직자의 헌신으로 이제 강화 발전의 밑그림이 완성되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지난 1년 간의 주요 성과와 정책 방향들을 살펴본다. 안정 : 군정 공백 혼란, 현장 리더십으로 정면 돌파 박용철 군수는 지난 1년간 군정을 빠르게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임 군수의 갑작스러운 유고로 7개월간 군정 공백이 이어지고, 대남 소음공격 피해가 겹치며 지역 불안이 고조됐던 점을 감안하면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취임 직후에는 최우선 과제였던 북한 소음공격 문제에 발 빠르게 대

문화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스포트라이트 받는 주인공 뒤에 숨은 조력자를 기억하자
지난 14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파라과이의 축구 평가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는 단연 오현규였다. 그는 후반 30분 승리에 쐐기를 박는 결정적인 골을 넣으며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러나 그 골의 배후에는 수비수 두 명을 제치는 현란한 드리블 후 냉정히 경기의 흐름을 읽고 찬스를 만들어낸 또 다른 주인공이 있었다. 바로 이강인이다. 그는 전방으로 빠르게 침투한 오현규에게 정확한 타이밍의 패스를 연결해 골의 90%를 만들어 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후 조명은 오직 골을 넣은 선수에게만 쏟아졌고, 이강인의 이름은 짤막이 언급되었다. 지난 21일 한국프로야구 2025 플레이오프 한화 대 삼성의 3차전에서 한화가 5대4로 역전승을 거둔 뒤, 단연 승리의 주역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선수는 구원투수로 나와 4이닝 무실점으로 역투한 문동주였다. 그런데 사실 한화가 역전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상대적으로 어린 문동주를 노련한 투수 리드로 이끌어간 최재훈 포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난 후 역투한 문동주와 역전 투런 홈런을 친 노시환만 승리의 주역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최재훈의 이름은 언급조차 없다. 이러한 장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