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5.07.28 (월)

  • 맑음동두천 32.0℃
  • 맑음강릉 33.9℃
  • 맑음서울 32.7℃
  • 맑음대전 32.8℃
  • 맑음대구 31.6℃
  • 맑음울산 31.0℃
  • 맑음광주 32.3℃
  • 구름조금부산 31.5℃
  • 맑음고창 33.1℃
  • 구름조금제주 29.9℃
  • 맑음강화 30.8℃
  • 맑음보은 30.5℃
  • 맑음금산 30.8℃
  • 맑음강진군 33.3℃
  • 맑음경주시 31.9℃
  • 구름조금거제 29.1℃
기상청 제공

문화

웃을 수밖에 없을걸…영화 '스물'

URL복사
[시사뉴스 송경호 기자]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만 해도 청춘영화의 주인공은 오직 청춘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방황하는 인물이었다. 그들은 그 방황하는 청춘을 '간지'로 승화했고(비트·태양은 없다), 관객은 그들의 모습에 환호했다.

최근 청춘영화(넓은 의미의)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그들은 마음 한구석에 또렷이 남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내면의 붕괴를 멍하니 지켜보거나 그 상처와 조용히 맞서느라 세상과 불화하는 인물들이다(거인·한공주·파수꾼). 관객은 이들에게도 반응했는데, 그것은 시대와 사회 현실이 투영된 어떤 징후였다. 이런 영화들에서 청춘의 에너지와 발랄함 따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두 가지 큰 맥락에서 볼 때 '스물'(감독 이병헌)은 정체불명의 청춘영화다. 이 영화에는 방황하는 모습에도 겉멋이 잔뜩 든 예전의 청춘도 없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악을 쓰는 듯한 최근의 청춘도 없다. 이 영화의 '스무 살들'은 술만 마시면 실수를 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자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른 채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는 백수다. 또는 '그냥' 가난한 재수생이다. 그들이라고 고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진지하지 않다.(진지할 줄 모르고). 상처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상처는 오히려 친구들의 놀림거리일 뿐이다. '스물'은 '애어른'이 된 청춘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관객에게 '그거 아니잖아. 스무 살은 이렇게 우스운 거잖아. 왜 이래'라며 눙치는 것처럼 보인다.

'스물'은 어떤 콤플렉스도 없이, 혹은 아무런 자격지심 없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최소화한 채 스무 살을 사는 이들에 관한 영화다. 이병헌 감독에게 스무 살은 소소한 에피소드(이들의 아지트인 중국집도 '소소반점'이다)에 성적인 유머와 '병맛' 코드를 결합한 코미디에 불과하다.

치호(김우빈)와 경재(강하늘), 동우(이준호)는 고등학교 시절 한 여자와 엮이며 친구가 된 사이다. 스무 살이 된 그들은 조금씩 각자의 길을 간다. 경재는 대학에 가 선배와 사랑에 빠진다. 치호는 하고 싶은 것 하나 없이 연애에 매진한다. 만화가가 되고 싶은 동우는 대학 등록금이 없어 재수를 결심한다.

'스물'은 오래간만에 나온 관객을 웃길 줄 아는 코미디 영화다. 이 재기발랄한 영화는 소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성인이라고 할 수 없는 '미성숙(가치판단을 뺀 개념)의 시기'의 세 인물을 활용해 마음껏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이는 이 영화의 제목이 '스물'이어야 하는 이유와 맞닿아있다. 스무 살은 모든 게 어설프고 하는 짓마다 찌질해도 귀엽게 보일 수 있는 나이다. 동시에 법적으로는 미성년자가 아니므로 성적인 유머의 남발을 그 시기의 혈기왕성함으로 포장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스물'의 이야기들은 과함과 과하지 않음의 경계에 정확하게 위치해 최소한 기분 나쁘지 않은 개그를 친다.

이 영화의 유머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건 그것이 철저히 이병헌 감독 개인의 취향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신선함은 보편과 관습의 틀을 넘어서는 창의성의 결과물이라기보다 매우 자기중심적인 유희에 가깝다. 가령, 치호의 '꼬추 행성의 침공' 시나리오라든지, 경재의 동영상이 공개되는 순간의 '모래시계 패러디', 동우의 2대8 가르마 에피소드는 철저히 이병헌 감독의 장난기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스물'의 유머를 떠받드는 또 하나의 축은 '비틀기'다. 극 중 스무 살들이 겪는 이야기들은 매우 보편적이고, 때로는 관습적이다. 여선배를 좋아하는 대학생 이야기나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꿈을 찾은 청년 이야기, 가난한 재수생과 쓰러진 엄마 이야기는 평범한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이병헌 감독이 이런 에피소드를 끝맺는 방식이다. 스무 살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이들의 대화는 "섹스하자"라는 말로 끝난다. 꿈과 현실의 괴리를 이야기하는 동우를 향해 친구들은 "근데 머리는 왜 그래?"라고 묻는다. 여선배를 보호하고자 경재의 의리있는 행동에는 아무런 힘이 없다. 이병헌 감독은 이를 통해 반전의 웃음을 제공함과 동시에 청춘을 다룬 극의 전형성을 비웃는다.

감독 개인의 취향과 비틀기라는 유머의 두 개 축은 흡사 영화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감독 매슈 본)의 그것을 떠올리게도 한다. '킹스맨'의 매슈 본 감독은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유머를 영화에 장착했고, 기존의 스파이 영화를 쉬지 않고 조롱했다.

이런 지점에서 볼 때, 이병헌 감독은 애초 '스물'을 통해 어떤 메시지도 전달하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스무 살이라는 설정은 감독이 자신의 유머코드를 이식하기에 가장 적절한 나이였고,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객을 웃기기 위해 역으로 스무 살이라는 나이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코미디를 만드는 게 아니고, 이병헌 감독 자신의 코미디가 스무 살에 딱 맞았을 뿐이다.

'스물'의 코미디를 살리는 건 역시 주연 배우 세 명의 연기다. 김우빈, 강하늘, 이준호의 배우로서 가능성은, 이 세 사람 중 누구도 튀려 하지 않고 서로의 캐릭터를 살릴 줄 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스물'에서 좋은 연기를 한다기보다 좋은 앙상블을 보여준다. 치호, 경재, 동우가 각각 다른 캐릭터로 독립된 에피소드를 수행하면서도 함께 모인 장면에서 이물감 없이 섞일 수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서로 스타로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연기하는 세 사람은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이 포기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영화가 부진한 이유는 간단하다. 뻔해서다. 뻔한 서사와 뻔한 연출, 뻔한 연기에 한국 관객은 지칠 대로 지쳤다. '킹스맨'의 성공과 '위플래시'의 선전은 한국영화 침체 이유에 대한 방증이다. '스물'은 춘래불사춘의 상황을 맞은 한국영화계에 작은 봄이 가져다줄 수 있는 영화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한 가족의 삶을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 100년을 통찰하다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페스트북은 정일남 작가의 소설 ‘반갑다, 지리산 무지개여!: 격동기를 살아낸 한민족의 이야기’를 올해의 추천 도서로 선정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강제 노역과 해방을 거치며 한반도를 휘몰아친 격동의 역사를 평범한 민초의 삶을 통해 그려낸 역사소설이다. 정일남 작가는 노스텍사스대학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평생을 화학 연구자로 살았다. 정년 퇴임 이후에는 벤처기업 JSI실리콘을 설립했다. 그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룬 발전이 결코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님을, 개개인의 수많은 노력과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또한 지나온 역사 속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바로잡아야 할 부분들을 함께 성찰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출간 소감을 전했다. 페스트북 편집부는 ‘반갑다, 지리산 무지개여!’는 위대한 영웅이 아닌 지리산 부근에 사는 한 가족의 삶을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 100년을 통찰하는 소설로, 그들의 삶과 슬픔, 저항을 날 것의 모습 그대로 꾹꾹 눌러 담았다며, 강제 노역과 전쟁, 분단의 파고를 지나야 했던 사람들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의대생 전공의 복귀하려면 무조건 사과부터 해야
지난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해 집단 이탈했던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지난 14일 전격 복귀 의사를 밝히면서 17개월 만에 의정 갈등이 마침표를 찍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복귀자들에 대한 학사일정조정, 병역특례, 전공의 시험 추가 응시기회 부여 등 특혜 시비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면 의정갈등의 불씨는 계속 남아있게 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1년5개월 만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의정 갈등의 해법은 의대생, 전공의들이 무조건 국민과 환자들에게 의정 갈등으로 인한 진료 공백 사태에 대해 사과부터 하고 그 다음 복귀 조건을 제시하는 수순을 밟는 것이다. 지난해 2월부터 발생한 의정 갈등은 정부가 고령화 시대 의료 수요 증가와 지역·필수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지역의료 강화, 필수 의료 수가 인상 등을 묶어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추진을 강행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의료계는 이에 대해 의사 수 부족이 아닌 ‘인력 배치’의 불균형 문제이며, 의료개혁이 충분한 협의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었다고 반발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의료계는 의사 수 증가가 오히려 과잉 진료와 의료비 증가를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