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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웅준의 역사기행

잃어버린 제국, 가야를 찾아서 ③
가야땅에 펼쳐진 별무리 고령 지산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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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박웅준 성보문화재연구위원] 고령에 도착하자 한참 온 비가 그치고 먹구름 사이로 해가 비추기 시작했다. 고분들은 산 위에 있었다. 비가 다시 오기 전에 고분군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아래선 몇 기만 보이던 고분들이 위로 가니 산 능선을 따라 끝없이 늘어서 있다. 오를수록 점점 더 거대한 봉분과 마주쳤고 뒤로는 고분의 행렬이 별처럼 늘어선다.

신라를 뛰어넘는 순장 규모
철갑기마무사의 나라 ‘대가야’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경주를 묘사할 때 절과 탑을 별과 기러기 무리로 비유해서 ‘사사성장 탑탑안행(寺寺星張 塔塔雁行)’이라고 했는데 이 광경이야 말로 ‘분분성장 총총안행(墳墳星張 塚塚雁行, 무덤이 하늘의 별처럼 펼쳐져 있고 기러기 떼처럼 줄지어 있는)’인 모습이었다.

고분군은 축구장 111개의 넓이(81만4816㎡)에 무려 800여기의 무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비교적 큰 봉분은 번호가 매겨져 72호 무덤까지 정해져 있고 가장 큰 무덤은 47호분으로 직경이 49m이다. 44호와 45호 무덤도 직경이 30m에 달하는 큰 무덤인데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각각 36명, 15명의 순장묘가 발견되었다. 순장자들은 남녀 구분 없이 묘주를 둘러싼 형태이며 호위무사, 의례관련자, 시종 등 묘주를 생전에 모시던 사람들이다. 죽어서도 이들로부터 봉사를 받겠다는 의지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신라의 경우 순장자는 10명이 넘지 않는다. 무덤 옆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고령이 한눈에 보인다. 아래의 광경과 하늘과 맞닿아있는 무덤들을 번갈아 보면서 이들은 죽음과 삶을 구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자신이 통치하던 고령을 내려다보며 영원의 제국을 원했을 것이다.
고분군에서 내려온 후 여러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들이 죽어서까지 지키려던 그들의 나라 ‘대가야’는 어떤 이유로 멸망했을까.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졌던 가야. 답사 중 곳곳에 보이던 가야 철갑기마무사들의 강인한 이미지는 이들의 무덤과 조화를 이룬다. 무덤 속에서 발견한 화려한 부장품도 이들의 강성함을 웅변한다. 그러나 562년 신라군사 5000명이 고령을 침입해 오면서 대가야는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삼국사기’에서는 ‘뜻밖에 신라 군대가 갑자기 쳐들어오므로 너무 놀라서 막을 수가 없었다’라고 기록하는데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이 답사를 통해 본 시각적 정보와 상치되어 당혹스러웠다.

신라의 국력성장이 가야의 멸망일까?
드러나는 의문들

역사학계에서는 이러한 가야의 멸망을 신라의 국력확대의 결과로 이야기하고 있다. 신라는 법흥왕 때 520년 율령을 반포하고 528년 불교를 공인하면서 중앙 집권화를 이루게 된다. 이후 적극적인 확장정책으로 한강유역을 백제로부터 빼앗아 주도권을 잡아간다. 금관가야는 532년 신라에 항복하면서 멸망하게 되는데 이에 위협을 느낀 대가야는 백제와 신라가 주도권을 놓고 벌인 관산성전투에서 백제를 도와 참전하지만 패하면서 내리막길을 걷는다. 금관가야를 잃은 후 나머지 지역도 북부의 대가야와 남쪽의 안라가야로 권력이 분산되는데 560년 안라국마저 신라에 병합이 되자 대가야는 여러 면에서 압박을 받아 국력이 쇠약해 졌고 그 와중에 신라의 급습을 받아 멸망했다는 것이다.

대가야를 비롯한 가야의 북부지역은 자체의 제철능력이나 안정적인 농경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다른 지역에 비해 독자적인 세력유지가 가능했다. 이런 이유로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이렇게 오래 버틴 국가가 신라의 급습으로 허망하게 멸망한 것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더구나 신라의 급습 전 별다른 군사적 충돌이나 갈등이 없었고 쳐들어왔을 땐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국력이나 경제력과 별개로 작동한 어떤 이유를 찾아야 할 것 같다.

가실왕과 우륵 그리고 김유신, 가야내부의 사정

아마도 그 어떤 이유는 가야 내부에 있지 않을까. 우륵이 신라로 망명한 사건은 이런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우륵은 대가야 가실왕의 명을 받들어 중국 진(晉)의 악기인 쟁을 모방해 가야금을 만들고 12개의 악곡을 만들었는데 551년 제자 니문을 데리고 신라로 망명한다. 그의 음악을 진흥왕이 좋아하여 궁중음악으로 연주되고 국원(지금 충주)에 살게 된다. 우륵은 당대 최고의 음악가로 가야 왕실의 총애를 받은 대음악가가 신라로 도망간 것이다. 여기엔 가실왕의 사망으로 친신라계는 몰락하는데 이에 따른 우륵도 더 이상 중앙정계에 머물 수 없게 된 데에 따른 정치적 망명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당시 가야왕실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없고 가실왕의 생몰년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객관성을 띄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륵은 신라의 요구에 의해 간 것은 아닐까? 후대 황룡사 구층목탑을 건립할 때도 백제의 장인 아비지가 도와줬듯이 신라는 필요한 문물을 수입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또한 그의 망명을 언급한 삼국사기에서 투아(投我)라는 단어도 일반적으로 망명을 말하는 내투(來投)가 아닌 ‘우리에게 몸을 맡겼다’ 즉 자유로운 몸인 상태에서 선택에 의해 신라로 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설도 있다. 어찌됐든 우륵은 신라에 자신의 음악을 전수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신라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대가야 내부적으로는 신라와 문화적 교류를 통해 문화적인 동질성이 추구되었음을 시사한다. 32호분에서 출토된 금관과 리움미술관의 고령 출토금관은 신라의 금관보다는 덜 화려하지만 출(出)자형 입식과 곡옥 그리고 만듦새는 분명 신라의 영향이 보이는 점에서도 추정할 수 있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금관에서의 유사성은 외형을 넘어 정신적인 동질감도 추구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사서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에 변한(가야)은 진한(신라) 지역과 의복, 거처는 같고 언어와 법속이 서로 비슷한데 귀신에 제사지내는 것은 다르다고 기록하듯이, 가야는 백제나 고구려보다는 신라와 문화적으로 친밀했음은 사실이다. 그리고 신라는 정복한 금관가야 왕실과 동족의식을 숨기지 않았다. 금관가야를 정복한 후 마지막 왕인 구형왕과 그 후손들을 진골로 편입시키고 그의 막내아들인 김무력이 진흥왕을 도와 국토확장에 혁혁한 공을 세우도록 한다. 그의 손자인 김유신의 활약은 너무도 유명하다.

신라와 고구려에 낀 가야는 현재의 대한민국

조선의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대가야국의 시조를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이라고 하며 가야산신인 정견모주(正見母主)가 천신인 이비가지(夷毗訶之)와 감응하여 대가야왕 가야왕(大伽倻王) 뇌질주일(惱窒朱日, 이진아시왕)과 금관국왕(金官國王) 뇌질청예(惱窒靑裔) 두 사람을 낳았다고 기록한다. 이는 대가야의 유일한 건국신화로 논란은 있지만 이를 따른다면 대가야의 이진아시왕과 김수로왕은 형제인 것이다. 대가야국의 왕실도 이러한 인식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가야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 신라에 한 다리를 걸쳐 있는 상황이 신라로 하여금 비교적 손쉽게 가야 지역을 차례차례 정복해 나가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신라와의 동질감이 양국 간의 병합을 매끄럽게 만들었다면 대가야 멸망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가야의 여러 국이 통합되지 못한 점에 있을 것이다. 가야라고 총칭하는 나라의 집합이 연맹체인지 아니면 연합체 인지 
아직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지만 이 나라들이 가야라는 이름아래 통합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여러 정치세력으로 분립해 이해관계에 따라 내부적으로 각축했고 삼국이 갖춘 국가체제와는 현격하게 달랐다. 결국 각국의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아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지만 체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별처럼 펼쳐져 있는 고분군을 보면서 화려했던 그들이 자취와 함께 힘없이 사그라진 한 나라의 흔적을 마주한 것 같아서 씁쓸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지금 처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오싹함이 감돌았다.

History Does Not Repeat Itself, But It Rhymes. 과거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을지 몰라도, 그 운율은 반복된다. -마크 트웨인-
The one who does not remember history is bound to live through it again.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조지 산티아나-
Toutes choses sont dites deja ; mais comme personne n'ecoute, il faut toujours recommencer. 모든 것은 이미 일컬어졌으나 아무도 듣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앙드레 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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