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6.05.03 (일)

  • 흐림동두천 11.5℃
  • 흐림강릉 14.0℃
  • 서울 12.8℃
  • 대전 12.9℃
  • 흐림대구 13.8℃
  • 울산 14.1℃
  • 흐림광주 12.9℃
  • 부산 13.8℃
  • 흐림고창 12.3℃
  • 제주 15.3℃
  • 흐림강화 11.4℃
  • 흐림보은 12.9℃
  • 흐림금산 13.2℃
  • 흐림강진군 12.8℃
  • 흐림경주시 14.0℃
  • 흐림거제 12.2℃
기상청 제공

산이야기

【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 ⑭ - 백운대

URL복사

 

[ 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  오늘은 백운대다. 벌써 12월도 마지막 주말이다. 올 한해는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비정상의 상황을 맞아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어느덧 세모가 왔다. 매주 같이 산행하는 친구들도 정부의 거리 두기 강화 정책으로 모든 산행은 잠시 쉬기로 했다.


지는 해는 다시 뜨기 위해 지는 법. 2020년 경자년의 마지막은 아무래도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고양시의 자랑인 ‘고양시 덕양구 산 1번지’의 북한산 백운대로 정하고 혼자서 구파발로 향한다. 


구파발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북한산성 입구 정류장에 내려 김밥 한 줄 사서 배낭에 넣으며 신발을 단단히 매었다.
계곡을 따라 오르기 시작하니, 허! 한동안 안 와본 사이 달라진 것이 있었네, 몇 년 전부터 유적 발굴 조사를 하던 ‘서암사’ 터에 한옥 건물 두 채가 들어서 있다. 아마도 대웅전과 요사체가 거의 완성을 바라보는 듯하다. 

 

 

북한동 공터에서 잠시 휴식하며 바라보는 백운대는 저만치 까마득히 서 있다.
‘보리사’를 옆에 끼고 본격적으로 계곡 길을 향해 오르기 시작하니 땀이 나기 시작한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길옆으로 일주문 하나가 서 있다. 대동사일주문의 양옆에는 주렴으로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意) 시제불교(是諸佛敎)(그 어떤 나쁜 짓도 하지 말며, 착한 일은 받들어 행하고, 스스로 그 마음을 맑히는 것,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고 쓰여 있다. 법구경의 한 구절이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에게 또 착하게 살라 가르침을 던지고 있다.


계곡 길은 점점 가파르고 숨이 턱에 차오른다. 오를 때는 힘들고 숨차니 백운대를 오른다는 목표만을 가지고 견디며 주변을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 삶을 돌아보니, 젊은 시절은 사회가 던져준 목표를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다 보니 주변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이제 은퇴를 하고 돌아보니, 힘들게 살았더라도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고 살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되지만, 산을 오르며 느끼는 것은 오르는 길에 주변의 경치를 살피기에는 그만한 내공을 쌓아야만 가능하며, 난 아직 그런 여유를 가질 그릇이 못 됨을 알겠다. 오르는 길도 힘을 잘 분배하여 여유를 가지고 주변 경관을 즐기며 사는 내공을 미리 배워 놓을 걸 하는 아쉬움도 든다.


겨우 오른 백운동 암문. 이만큼 오르니 주변을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 언제 올라와도 백운대 주변의 경관은 정말 서울의 보물이다. 그 복작거리는 서울을 떠나 한 시간 내에 이런 비경(祕境)을 만날 수 있다니! 마지막 피치를 올린 끝에 드디어 백운대 정상에 섰다.


정상에서 힘차게 나부끼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백운대 넓은 바위에 앉아 김밥으로 요기를 하며 가지고 간 차 한잔을 마신다. 정상에서 보는 것은 아래에서 보던 풍경이 아니다. 바람도 세차고 환경도 다르다. 옛사람들이 젊었을 때는 높은 곳에 올라 호연지기를 기르라는 말뜻이, 이제야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 같은 곳을 바라보아도 보는 높이에 따라 그곳의 인상이 많이 달라진다. 사람도 같은 것을 바라보아도 생각의 위치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인식을 가질 수 있다. 


맹자도 설명하기 어렵다던 호연지기(浩然之氣)란 어떤 현상이나 상황을 가능하면 높은 위치에서 부분적이 아닌 전체적인 것으로 파악하려는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내려오는 길은 급경사를 피해서 만경봉을 돌아 북한산 대피소 쪽으로 돌았다. 오랜만의 산길은 예전 다니던 때보다 정비가 되어 오가기가 많이 편해졌다. 길옆의 나무들이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겨울눈을 만들고 있는 것도 눈에 들어온다. 겨울눈은 아린(芽鱗)이라 하여 ‘잎눈’과 ‘꽃눈’의 두 가지가 있으며 잎눈은 잎의 압축된 정보를, 꽃눈은 꽃의 압축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이다. 겨울의 나목은 이렇게 한겨울에도 내년을 꽃피울 잎눈과 꽃눈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용암문을 지나 북한산 대피소에 도착. 보온 차 한잔을 마시며 주위를 둘러본다. 이곳은 용암사가 있던 절터로, 3층 석탑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돌무더기가 옛 자취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공터에 대피소를 지었다. 대피소에서 중흥사 길 계곡으로 하산을 하니, 계곡물은 얼음으로 뒤덮여 있고 산길은 햇살을 머금고 따스하다. 낙엽 수북한 산길을 내려오니 길옆으로 중흥사가 보인다.


중흥사는 몇 년의 복원 공사로 제법 산사의 정취가 있다. 살짝 올라가 본 중흥사. 안내판에는 숙종 때 북한산성을 쌓고 산성 내 사찰의 승병을 관리하고 지휘하던 승군 사령부가 있던 큰 사찰이었다 하나, 큰 사찰이 되기 전, 조선 초의 어느 시절, 신동으로 소문난 김시습이 이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하다가,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양위했다는 소식을 듣고 발광한 김시습이 해우소에 빠진 뒤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전국을 떠돌며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냈다고 한다.


율곡은 김시습을 일러 심유적불(心儒跡佛/마음은 유가였지만 자취는 불가)이라 평했다지만, 한 시대의 천재도 시대를 만나지 못하면 그저 한 기인(奇人)일 뿐인가 아니면 또 다른 역사의 소용돌이가 조용히 꺼져간 것인가 의문도 든다.


중흥사 밑의 ‘산영루’는 언제인가 단청을 했다. 복원한 지 몇 년 만에 단청 입은 산영루의 화려한 자태가 그 아래 계곡과 참 잘 어울리며 추운 겨울에도 화사한 한국적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며 북한산 계곡의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내려가는 산길의 중성문을 지나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서, 2020년을 보내고 2021년 신축년을 맞이하며 우리에게 앞으로 갈 길이란 무엇이며 모두가 힘들어하는 이 코로나 상황은 어떻게 될 것인가 누군가에게 묻고 싶은 생각이 났다. 아무도 가르쳐 주는 이 없는, 가보지 않은 길 앞에서는 한 발 내딛는 것조차 두려운 법이다. 


그래서 석가 입멸 시 ‘아난’도 “세존께서 안 계시면 저희는 무엇에 기대어 인생길(道)을 가느냐”고 여쭈었을 때 석가는 自燈明, 法燈明이라 답했다. ‘스스로의 등불로 길을 밝히라, 불법으로 길을 밝히라’. 부처 아닌 우리가 스스로 길을 밝히기가 어디 쉬운가!


나무는 자등명(自燈明)의 어려움을 안다. 그래서 나무는 힘들 때는 아무 말 없이 서로 곁에서 버텨 주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되는 법임을 안다. 혼자서는 힘들고 무서워도 함께 견디며, 춥고 긴 겨울을 견디는 게 성숙이며 옛 솔로몬 왕자의 지혜인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명언처럼, 봄에 화사한 꽃으로 피려면 이 추운 시간이 꼭 필요했음을 북한산의 겨울 숲은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나무처럼 같이 견디며 이 한 시절도 잘 넘길 수 있음을 안다.


5시간의 산행으로 다시 북한산성 입구에 서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올 한 해를 보낸다.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자 양향자 확정 추미애와 격돌!...“정치선거→경제선거로 바꾸겠다”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오는 6월 3일 실시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자로 국민의힘 양향자(사진 왼쪽) 최고위원이 선출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사진) 경기도지사 후보자와 격돌하게 됐다. 국민의힘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중앙당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이하 공천관리위원회)는 2일 보도자료를 발표해 “금일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는 경기도지사 후보자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 개표를 완료했다”며 “4월 30일∼5월 1일 실시된 선거인단 투표와 일반국민 여론조사(2개 기관, 각 1000명) 결과를 각 50% 비율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거인단 투표 결과와 여론조사 수치를 선거인단 유효투표수 기준으로 환산한 값을 합산한 뒤 이를 100% 기준 비율로 변환하고 후보별 가·감산점을 적용해 최종 심사했다”며 “그 결과 양향자 후보가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로 최종 확정됐다”고 밝혔다. 선거인단 투표는 선거관리위원회 위탁경선 투표 및 ARS(Audio Automated Response System, 음성 자동 응답 시스템) 투표로 진행됐다. 국민의힘 양향자 경기도지사 후보자는 ‘삼성전자주식회사 최초의 고등학교 졸업자 출신 여성 임원’이라는 기록을

경제

더보기
5월 1일부터 주유소에서 연 매출액과 관계없이 고유가 피해지원금 사용 가능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5월 1일부터 연 매출액과 관계없이 주유소에서 고유가 피해지원금 사용이 가능해진다. 행정안전부는 30일 보도자료를 발표해 “행정안전부는 4월 30일 ‘고유가 피해지원금 범정부 TF’(Task Force) 제3차 회의를 개최하고 연 매출액이 30억원을 초과하는 주유소를 고유가 피해지원금 사용처에 추가하기로 했다”며 “이번 조치는 중동전쟁으로 인해 가중된 국민들의 유류비 부담을 완화하고 고유가 피해지원금의 사용편의를 증진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현재까지 고유가 피해지원금 사용처는 연 매출액 30억원 이하 소상공인 매장 및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으로 제한돼 있었다. 이번 조치로 주유소는 연 매출액과 무관하게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신용·체크카드 및 선불카드로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지급받은 경우 5월 1일부터 주소지 관할 지방자치단체 내에 소재한 주유소에서 연 매출액과 관계없이 고유가 피해지원금 사용이 가능하다. 지역사랑상품권으로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지급받은 경우 기존 지역사랑상품권 가맹점인 주유소와 고유가 피해지원금 사용을 위해 한시적으로 추가 등록된 주유소에서 연 매출액과 관계없이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열여덟 어머니의 선택 연극 ‘춘섬이의 거짓말’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은 누구나 알지만, 그의 어머니 ‘춘섬이’를 아는 이는 드물다. 극단 모시는사람들의 연극 ‘춘섬이의 거짓말’은 조선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이 영웅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빈칸으로 남겨뒀던 어머니의 자리에서 시작한다. 꽃다운 나이 열여덟, 사랑하는 이와 혼례를 꿈꾸었으나 양반의 욕망에 휘말려 벼랑 끝에 선 춘섬. 그가 선택한 ‘거짓말’은 한 아이, 나아가 세상을 뒤흔드는 운명을 지어낸다. ‘조선여자전’ 시리즈의 완결편으로 지난해 평단과 관객의 뜨거운 호평을 받았던 ‘춘섬이의 거짓말’이 제47회 서울연극제 공식선정작으로 5월 22일(금)부터 31일(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이건 너하고 나하고 짓는 팔자여!’ 시대의 억압 앞에서 주체적인 결단을 내리는 춘섬의 곁에는 마님의 몸종 쫑쫑이, 찬모 딸 끝네, 어머니가 있다. 그들이 함께 짓는 거짓말은 단지 생존이 아니라 운명을 새로 쓰는 여성들의 은유적 저항이자 찬란한 연대다. 전통 서사의 감성과 현대적 재해석이 맞닿은 무대 위에서 폭압적인 현실 속에서 삶을 지어냈던 조선 여인들의 웃음과 눈물, 슬기와 생명력이 되살아난다. 지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삼성전자 총파업만은 안된다. 노사 손잡고 세계1위 기업 만들어 내길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심장부인 삼성전자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 국면에 직면했다. 오는 5월 21일부터 예고된 총파업은 단순히 노사 간의 임금 협상을 넘어,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시점에서 국가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한 변곡점이 되고 있다. 지난 23일 평택캠퍼스에 집결한 4만여 명의 조합원이 외친 성과급 제도 투명화와 상한제 폐지는 단순한 금전적 요구를 넘어선, 조직 내 뿌리 깊은 ‘불신’의 발로라는 점에서 사태의 엄중함이 크다. “사측에 무리하게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성과급이 어떻게 책정되는지 투명하게 알기를 원한다”는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은 공정한 보상 시스템에 대한 정당한 권리 주장이라는 측면에서 나름의 타당성을 지닌다. 특히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하고 상한을 폐지하며 산정 기준을 단순화한 사례는 삼성전자 직원들에게 뼈아픈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었고 결국 노조 총파업이라는 강수를 두게 되었다. 하지만 파업이라는 수단이 가져올 결과는 노사 모두에게 가혹하다. 업계와 학계는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단순한 생산 차질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과 시장 지위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