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5.12.18 (목)

  • 맑음동두천 1.6℃
  • 맑음강릉 9.4℃
  • 맑음서울 3.9℃
  • 맑음대전 4.6℃
  • 맑음대구 6.4℃
  • 맑음울산 7.9℃
  • 맑음광주 5.9℃
  • 맑음부산 12.8℃
  • 맑음고창 6.2℃
  • 맑음제주 11.6℃
  • 맑음강화 2.3℃
  • 맑음보은 2.1℃
  • 맑음금산 -0.8℃
  • 맑음강진군 8.6℃
  • 맑음경주시 7.5℃
  • 맑음거제 8.6℃
기상청 제공

산이야기

【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17) - 인왕산

URL복사

 

[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몇주의 산행 중지 후에, 코로나 감금이 답답한지 인왕산 산행 공지가 카톡 통신에 떴다.


매년 몇 번씩 오르는 인왕산. 산행 집행부의 집콕의 갑갑함과 원거리, 장시간 산행은 피하고 싶은 가벼운 마음이 읽힌다. 그래도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기회가 반가워 경복궁역 1번 출구로 향한다. 조금 일찍 도착한 경복궁역 안내판에서 서촌의 내력을 읽는다. 


서촌은 조선 시대 인왕산과 경복궁 사이의 지역으로 조선 시대에는 중인과 서인들이 많이 살아, 정선, 김홍도, 김상헌의 자손인 장동 김씨의 터전이 되었던 지역이기도 하고, 근대에는 이상, 윤동주, 노천명, 화가 박노수, 이상범 등 시인과 화가 등이 많이 살았던 지역이며 현재는 세종마을이라 칭한다는 안내가 있다.


온도는 영하의 날씨이지만 하늘은 화창하다. 사직동 쪽으로 올라 언제나처럼 수성동 쪽으로 길을 잡는다. 자주 보는 풍경이지만, 지하철역에서 읽었던 안내문의 영향인지 오늘은 ‘백석, 흰 당나귀’라는 카페의 상호가 눈에 보인다. 


그렇지! 백석도 통인동의 어느 하숙집에서 조선일보에 출근하며 일본 식민지 시절 한국 문학의 순수성을 지켜낸 인물이었지. 


한겨울에는 폭설이 제격이고,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폭푹 눈이 내린다”로 시작하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싯귀는 아직도 내 가슴속 한겨울의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백석 평전을 쓴 시인 안도현은 “첫눈이 내리는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백석  이후에 이미 죽은 문장이 되고 말았다”며 눈에 얽힌 사랑은 백석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백석의 사랑, 20대의 일제 식민지 시절, 자야라는 애칭의 기생과의 사랑은 오늘에도 따라갈 수 없는 불멸의 동화로 남고 말았다. 


1000억원이 넘는다는 요정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기부하며, “1000억의 재산도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는 길상화 김영한의 말은 아무리 암울한 일제 강점기에도 천금보다 귀한 백석과의 사랑이 우리의 가슴을 어느 정도 훈훈하게 한다. 


수성동 계곡 조금 못 미쳐는 ‘윤동주의 하숙집터’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백석의 첫 시집인 ‘사슴’을 그렇게 읽고 싶다 했다는, 프랑시스 잼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사랑한 일제 강점기의 순수시인 윤동주. 백석과 윤동주, 그들은 반일감정을 가지고 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민족주의자였고, 백석은 구속받지 않는 연예를 꿈꾸던 청년이라는 점에서는 자유주의자이었다. 정말 서촌은 우리 문학의 독보적 감성을 키운 마을이구나. 


쓸데없는 감상으로 도착한 수성동 계곡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매번 가던 길을 피해 오늘은 석굴암으로 향해 잘 다듬어진 데크 계단을 한없이 오른다. 오르다 보면, 약간 너른 공터가 나오고 뒤돌아보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석굴암 앞의 전망대에 올라 치마 바위를 바라보니 인왕산 정상 밑의 큰 바위가 치마 주름처럼 선명한 굴곡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단경왕후 신 씨와 중종의 사랑 전설이 얽혀있는 치마 바위의 전설이 생겨난 것일까. 야사에 따르면 중종은 비록 반정공신들의 압박을 못 이겨 신 씨를 내쫓았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매우 그리워해서 신씨가 폐출되어 나와 있던 사가 방향을 자주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 사실을 전해 듣고 신 씨는 자기의 붉은 치마를 인왕산의 바위 위에 중종이 볼 수 있도록 걸어놨다고 한다.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 중종의 비애일까, 고모에 이어 조카까지 폐비가 된 신씨 가문 왕비의 비애일까 치마 바위의 전설은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석굴암은 치마바위 아래 바위틈의 공간을 이용하여 삼존 석불을 모셔 놓았다. 같이 간 친구가 부처님께 절을 하며 무언가를 소원한다. 안내문에는 예부터 한양 전경이 잘 보이는 명당으로 인왕산의 기를 받아 기도발이 잘 듣는다는 설명으로 소원을 비는 간절한 사람들이 자주 찾아온다고 한다. 나도 마음속으로 갑자기 바뀐 세상에 사랑을 잃고 쓸쓸히 살다간 단경왕후의 안녕을 빌어 본다.


끊어진 산길을 다시 돌아 산속 숲길을 따라 석굴암 약수터를 지나 인왕산 정상을 향한다. 성곽길로 접어서니 등산객이 많이 보인다. 젊은 남녀 등산객들과 앞서거니 오르니 정상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 사방을 조망하며 휴식을 취한다. 우리도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가져간 음료와 간식을 나누며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하산길은 청운동 쪽의 윤동주 문학관을 지나 창의문을 통해 와룡 공원으로 방향을 정하고 출발했으나, 백악산 출입 제한 시각이 생각나 도중에 기차바위 쪽으로 방향을 수정했다. 인왕산의 바위는 크고 넓어 기묘한 절경을 나타낸다. 

 


창의문 밖 안평대군의 별장 무계정사(武溪精舍) 터나 석파정(石坡亭)이 이 인왕산 자락에 있지 않은가. 인왕산 자락의 석파정은 얼마나 탐이 났으면 대원군이 당대 최고 권문 세력인 장동 김씨 김흥근의 삼계동정사(三溪洞精舍)를 임금을 대동하는 수를 내어 인계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대원군은 이 별서(別墅)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주변 풍경이 온통 바위산이라 자신의 호마저 석파(石坡 · 돌고개)로 바꾸었고 집 앞 개울의 정자를 석파정이라고 하였다. 석파정 주변으로는 노송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노송은 이름이 ‘천세송(千歲松)’이라 하지 않던가. 


기차바위 주변도 이리 휘고 저리 휜 소나무들로 가득하다. 경주 흥덕왕릉 주변의 구부러진 소나무가 특히 유명해 ‘안강목’(흥덕왕릉이 자리한 곳이 경주 안강읍)이라 한다던데, 이리저리 굽어진 모습이 고전 무용수가 승무를 추는 여인의 긴 소매같이 역동적이다. 굽은 모습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노자의 도덕경 글귀 곡즉전(曲卽全 : 굽으면 온전해지고)를 떠올리기도 한다. 기차바위 주변의 굽은 소나무는 추운 겨울 하늘에 그 푸른빛이 더욱 검푸르게 보인다.


소나무 숲을 지나 홍제동으로 내려오는 길은 잡목이 우거졌다. 메타세콰이어 숲도 보인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자주 느껴보지 못한, 위에는 푸르름을 간직한 소나무와 아래는 땔감으로 쓰였을 잡목으로 우거진 우리 명산 인왕산을 느낀다. 내려온 홍제동 인왕산 자락은 아파트 단지가 가득이다.


편안한 산행 뒤의 정감이랄까 안도감이 온몸을 감싼다. 이런 날 함박눈이라도 펑펑 내린다면 북한에서 붉은 편지에 밀려 멀리 개마고원의 삼수 협동농장에서 생을 마감한 백석이 떠오를 것 같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웅앙웅앙 울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비만학회·한국릴리 미디어 세션...올바른 비만·2형당뇨병 관리 방안 모색'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비만을 질환으로 인식하고, 정부가 적극적인 치료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견이 나왔다. 17일 대한비만학회와 한국릴리가 17일 비만과 2형 당뇨병을 사회적 건강 과제로 규정하고, 치료 중심의 관리 전략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릴리와 대한비만학회는 이날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사회적 건강 과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비만·2형당뇨병 관리 방안 모색'을 주제로 미디어 세션을 공동 개최했다. 이번 세션은 국내 비만·당뇨병 치료 환경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인크레틴 기반 주사 치료제를 포함한 최신 치료 옵션이 적절히 활용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논의하고 미충족 수요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제2형 당뇨병 및 비만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의 약물들이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등 여러 비만치료제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첫 번째 연사로 나선 대한비만학회 총무이사인 이재혁 명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왜 비만 치료가 중요한가?: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대한비만학회의 노력'을 주제로 학회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비만은 단순한 체중증가 상태가 아닌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지만, 여전히 법정비급여 질환

정치

더보기
내란특검 수사 결과에 與“헌정 회복 이정표”vs野“태산명동서일필로 끝난 정치보복”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15일 발표된 내란 특검 최종 수사 결과에 대해 여야는 상반된 평가를 내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헌정 회복에 많은 기여를 했음을 강조한 반면 국민의힘은 성과 없는 ‘내란몰이’로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16일 국회에서 개최된 원내대책회의에서 “'12·3 내란사태는 권력 유지를 위한 불법 계엄이었다‘ 어제 내란 특검은 12·3 내란 사태 수사의 결론을 공식 발표했다”며 “활동을 마무리한 내란 특검은 헌정을 회복하기 위한 중요한 이정표였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 한 시도에 국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분명히 보여준 과정이었다. 관련자 기소와 사실 규명, 책임 구조의 윤곽까지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 누구든 헌정을 흔들면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다는 원칙도 분명히 세웠다”며 “아직 남은 과제도 분명하다. 내란의 기획과 지휘 구조, 윗선 개입 여부 등 핵심 쟁점 가운데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재판은 신속하고 단호하게 진행돼야 한다”며 “준엄한 단죄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내란 세력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민주주의의 역사에 분명히 새겨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14편 영화와 함께하는 한국사 수업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영화와 함께하는’ 첫 번째 시리즈로 발간됐던 ‘영화와 함께하는 한국사’가 개정돼 새로 출간됐다. 2021년 처음 발간된 ‘영화와 함께하는 한국사’는 전근대 시기를 다룬 4편의 영화와 근현대 시기를 다룬 8편의 영화를 활용한 역사 수업을 제시했다. 이번에 발간되는 ‘영화와 함께하는 한국사’ 개정증보판은 전근대 영화인 ‘자산어보’와 근현대 영화인 ‘서울의 봄’을 추가해 쉽고 재미있는 한국사 수업을 제시했다. 영화와 함께하는 역사 수업을 고민하는 교사, 영화와 함께 재미있게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 청소년, 그리고 역사 상식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까지 모두 활용할 수 있다. ‘영화와 함께하는 한국사’는 영화마다 영화의 기본 정보와 함께 영화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이 역사서에 어떻게 기록돼 있는지, 교과서에는 어떻게 구현돼 있는지 살펴보고 팩트 체크 코너를 통해 그 내용을 영화가 얼마나 역사적 상황과 맥락에 맞게 그려냈는지 분석하고 있다. 이어 선정된 영화를 통해 어떤 역사적 맥락과 상황을 학생들과 공유하고 소통하며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지 질문과 함께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무대나 역사적 배경이 됐던 곳, 영화 속 역사적 인물을 만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마음이 전하는 따뜻한 이야기: 아직 살 만한 세상이다
일상생활과 매스컴 등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은 때로는 냉혹하고, 험악하고, 때로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삭막하게 만든다. 하지만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혹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주하는 작고 따뜻한 선행들은 여전히 이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마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처럼, 우리 주변에는 서로를 향한 배려와 이해로 가득 찬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필자가 경험하거나 접한 세 가지 사례는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해 소개할까 한다. 첫 번째 이야기: ‘쪽지 편지’가 부른 감동적인 배려 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를 저지른다. 아무도 없는 어느 야심한 밤. 주차장에서 타인의 차량에 접촉 사고를 냈는데 아무도 못 봤으니까 그냥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양심에 따라 연락처와 함께 피해 보상을 약속하는 간단한 쪽지 편지를 써서 차량 와이퍼에 끼워놓았다. 며칠 후 피해 차량의 차주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손해배상 절차에 대한 이야기부터 오가기 마련이지만, 차주분은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쪽지까지 남겨주셔서 오히려 고맙다”며, 본인이 차량수리를 하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