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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천만원 시대의 88만원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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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학업을 중단한 고려대 학생이 봄기운도 느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죽음을 택했다. 그리고 5월을 앞둔 지금, 그새 봄꽃은 피고 졌지만 대학가에서는 높은 등록금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그동안에도 매년 등록금 인상에 맞서 학생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개나리가 질 때쯤 시작되는 중간고사와 축제 기간에는 자발적으로 사그라졌기에 '개나리 투쟁’이라는 굴욕적인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사뭇 다르다. 언론에서도 꾸준하게 등록금 관련 기사를 보도하고 있고, 대학생들의 단체행동이 학교 바깥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높은 등록금이 서민경제를 파탄내는 한축임이 폭로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 속에서 등록금 동결로 학생들에게 생색을 내려 했을 대학들의 의도가 틀어지고 있는 모양새이다.
화려해지는 대학 속에 쪼들리는 학생
최근 필자가 재학중인 대학에서 지금의 경제위기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묻는 조사가 있었다. 설문에 답한 학생들 중 77.8%가 한정된 수입에 비해 높아만 가는 물가가 위기를 느끼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답했다. 취업의 문은 비집고 들어갈 틈마저 보이질 않고, 시급 사천원짜리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힘든데 써야 할 돈의 액수는 커지고 있다. 한끼 밥값을 줄여보려고 도시락을 싸다니고, 선후배와의 술자리를 애써 피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그저 궁상으로만 보이진 않는다. 학기 초의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신입생들에게 밥을 사줄 때, 후배의 시선이 비싼 메뉴에 멈출 때마다 가슴이 콩알만해진다. 지금의 대학생에게 가장 큰 부담은 매년 7~10%를 웃도는 인상률로 연간 천만원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등록금이다. 한때 ‘진리의 상아탑’이라 불리던 대학은 이제 학생의 처지를 외면한 등록금 장사꾼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대학 입장에서 보면 등록금 인상은 성공적인 장사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나온 '2007년 주요대학 누적 적립금' 통계를 보면 2007년 사립대학의 누적 적립금은 5조 5833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연구 적립금은 4712억원, 장학 적립금은 4444억원에 불과했다. 반면 건축 적립금은 2조 4750억원,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기타 적립금은 2조 103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천문학적인 재원을 확보하고 있으면서 왜 대학은 돈이 없다며 등록금을 계속 올리는 것일까? 주된 이유는 교육환경 개선이다. 하지만 올려 받은 등록금으로 학내에 신축건물을 짓고 영화관, 커피숍, 패밀리 레스토랑 등을 들여온다고 한다. 창업에서 매출까지 모든 것을 학생들의 지갑으로 해결하겠다는 심사이다.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도 울고 갈 만한 장삿속 아닌가. 공부하러 가는 건지 초대형 멀티플렉스에 돈 쓰러 가는지가 헷갈릴 만큼 대학은 묘하게 변해가고 있다.
대학이여 기업으로 변신하라?
이러한 변화를 기업에 빗대 ‘대학 구조조정’이라 부른다. 대학 구조조정의 목적과 방향은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어온 금융화와 일맥상통한다. 대학의 금융화는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대학의 운영을 금융자본의 이익에 부합하게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을 기업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다. 즉 대학 자체가 하나의 금융회사가 되는 것이며,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연구·개발은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상품으로 가공되는 것이다.
최근 금융화를 통한 대학 구조조정의 대표적인 사례는 학내 산업협력단이 주식회사 형태의 자회사로 설립한 대학기술지주회사이다. 이제 대학이 직접 기업을 만들어 수익을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2008년 2월 통과된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은 그 요건을 완화해서 더 많은 대학이 주식회사를 세울 수 있게 했다. 이는 등록금, 기금, 적립금 등으로 구성된 자금을 최대한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사용하고, 외부 기업과의 연계를 본격화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교육의 내용 역시 기업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 습득이 강조되고 있으며, 이공계 대학원 중심이던 산학협동 과정이 인문사회계에도 침투하여 지식의 상품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은 다른 분야에 통폐합되거나 스스로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조정을 택하고 있다.
청년다운 청년, 대학다운 대학을 되찾자
경제위기 속에서 대학의 금융화·기업화는 급격히 가속중이다. 대학이 많은 돈을 벌어 학생들에게 돌려주면 좋은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지난 십수년간 점점 줄어드는 장학제도와 제자리걸음인 교육환경에 비해 오르기만 한 등록금은 신자유주의화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은 대학이 돈벌이에 주력할 뿐 교육의 의지를 지닌 공간이 더는 아님을 증명한다. 이번 세계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가 실패한 체제이자 방향임이 명백해졌지만 상황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청년실업 50만 시대에 이명박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라고는 비정규직의 다른 이름인 ‘청년인턴제’가 고작이다. 그 어느 세대보다 희망차야 할 젊은이가 죽음을 선택하게끔 몰아간 책임은 누구에 있을까. 사회에 나가서도 안정된 일자리를 찾을 수 없고, 일년에 천만원을 내며 학교에 머물 수도 없게 만든 지금의 정부와 대학이 아닐까. 이는 비단 대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위기의 고통을 부당하게 전가받는 서민과 노동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사자인 대학생들은 어떤 대안을 준비해야 할까? 등록금 상한제, 후불제 등의 정책을 입법화하여 등록금 인상에 제동을 거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대학교육이 제 기능을 되찾도록 만들어야 한다. 필자의 학교에는 새내기를 위한 수업이 개설되어 있는데, 학점과 영어점수 관리, 교환학생 프로그램이나 취업 준비 등 도무지 대학 강의라고 하기에 민망한 것들을 배우고 시험까지 본다고 한다. 그 수업을 듣고 대학교육에 실망했다며 하소연하던 후배의 얼굴이 떠오른다. 왜 이 시대의 대학생들은 이리도 불행한 것일까. 그 꿈 많던 친구들이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취업경쟁의 전선으로 몰려가는 것이 그들의 경쟁심이나 이기주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학생들 또한 경제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스펙’ 쌓기에 몰두하기보다 대학에서 지식을 쌓고 공부를 하는 것의 의미를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교육이 더욱 많은 사람에게 행복한 일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고민해보자. 진득한 인간관계와 낭만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지금의 대학생활이지만, 무엇이 치열한 경쟁을 강요하고 있는지 그 실체를 바라보자. 대학은 돈을 많이 벌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전수하는 곳이 아니라 참된 지식을 사회의 부조리한 곳으로 흐르게 하여 그것을 바꿔내는 실천을 만들어내는 공간이어야 한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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