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아이를 버리러 낯선 집에 찾아간 ‘카롤리네’ 그 문 너머 어둠 속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바늘을 든 소녀>는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을 거쳐,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비영어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포적 사건 속의 사회적 비극
1919년 코펜하겐, 남편은 실종되고 카롤리네는 원치 않는 아이를 품게 된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그 순간, 낯선 여인이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저에게 오세요” 그곳엔 포근한 침대와 따뜻한 음식, 그리고 다시 꿈꿀 수 있는 삶이 기다리는 듯했다. 하지만 희망에는 무거운 대가가 따르는 법. 들어선 문 너머엔, 아무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다.
영화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마그너스 본 혼 감독은 이미 전작 <스웻>과 <히어 애프터>를 통해 유럽 전역에서 높이 평가받아 왔고, <바늘을 든 소녀>를 통해 한층 더 확고한 작가적 위상을 굳혔다.
영화는 덴마크 폴란드 스웨덴 3개국의 협업 제작 체계를 기반으로 완성됐으며, 덴마크는 이 작품을 자국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공식 출품작으로 선정했다. 이는 비(非)덴마크 국적의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는 이례적인 결정이다. 이 영화는 덴마크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다그마르 오베르뷔 유아 연쇄 살인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
마그너스 본 혼 감독은 ‘연쇄살인마 실화 자체’보다는 ‘그 시대에 그런 사건이 가능했던 사회적 환경’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감독은 다그마르의 삶을 그대로 따라가는 전기 영화가 아닌, 관객이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카롤리네’라는 허구의 인물을 전면에 배치해, 실화를 둘러싼 사회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다. 1910~20년대 코펜하겐의 극심한 빈곤, 미혼모에 대한 낙인, 전쟁, 여성의 선택권 부재 등은 실제로 다그마르 사건을 촉발한 요소들이었다.
감독은 “그 시대가 만든 지옥 속에서 선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설계했다. 특히, 그는 실화의 잔혹한 범죄를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 ‘왜 여성들이 아이를 다그마르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는가’를 깊이 파고들었다.
그 결과, 실화는 공포적 사건으로 소비되는 대신 ‘사회적 비극’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다.
감독은 또한 ‘이 영화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폴란드에서 사는 감독은 제작 기간 동안 자국의 낙태법이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수준으로 강화되는 상황을 경험했다. 이는 영화의 주제가 현재와 이어지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 됐다. 마그너스 본 혼 감독은 실화를 통해 과거를 이야기하면서도, 그 공포가 현재에도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비틀린 세계
‘카롤리네’ 역 빅 카르멘 손네와 ‘다그마르’역 트린 디어홈의 압도적인 연기는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 촬영, 미술, 사운드는 유기적으로 결합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미세하게 비틀린 세계를 구축했다.
흑백 촬영은 단순한 고증의 문제를 넘어, 관객이 이야기의 잔혹함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일정한 미학적 거리두기를 제공하며, 동시에 1920년대의 질감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당시의 사진 비율인 아카데미 비율을 선택했고, 로케이션 헌팅 단계부터 이 비율로 스틸을 촬영하며 영화 전체의 톤을 조율했다.
촬영은 아카데미 수상작 <리얼 페인>,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작 <당나귀 EO>의 촬영을 담당한 미하우 디멕 촬영 감독이 맡았다. 마그너스 본 혼 감독과는 <스웻> 이후 두번째 장편 협업이다.
미술과 세트 디자인 역시 사실적 복원보다는 ‘그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를 통한 재창조에 가깝다. 1910~20년대 코펜하겐의 실제 공간을 복원하는 대신, 그 시대의 사진, 표현주의적 이미지 등 당시 예술의 감각을 결합해 새로운 공간적 심상을 만들었다. 벽지는 흑백 촬영에서 가장 깊은 톤을 만들어내는 붉은색과 초록색을 중심으로 구성해, 화면에서 보다 풍부한 명암 구조를 갖도록 했다. 세트에 흙, 연기, 안개, 물기 등을 인위적으로 뿌려 전쟁 후 빈곤과 절망이 깔린 도시의 숨 막히는 공기를 만들어냈다.
사운드와 음악 또한 이러한 연출의 연장선상에서 구축됐다. 프레데리케 호프마이어가 만든 노이즈 기반 전자음악은 전통적 시대극의 음악 문법을 완전히 벗어난다.
감독은 “인물의 영혼이 부서지는 순간, 음악도 함께 부서져야 한다”라고 말하며 시대극에서 흔히 기대되는 클래식 음악을 배제했다.
이야기가 다그마르의 세계로 깊이 들어갈수록 노이즈가 한층 두드러져 관객의 감각을 불안하게 흔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