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송경호 기자] "제가 장가 간 사람도 아니고, 시집 간 여자도 아닌데 친정에 온 느낌이 들어요. 하하하."
영화 '건축학개론'(2012)과 드라마 '더킹투하츠'(2012)로 스타덤에 오른 조정석(34)이 3년 만에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에 출연한다.
8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블러드 브라더스' 연습실에서 "연습할 때 다 아는 얼굴이라서 반가웠어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라며 즐거워했다.
2004년 뮤지컬 '호두까기 인형'으로 데뷔한 조정석은 '바람의 나라' '헤드윅' '이블데드' '스프링 어웨이크닝' 등에 출연하며 뮤지컬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김무열·한지상과 함께 차세대 뮤지컬계를 이끌 배우로 지목됐다. 그러다 '건축학개론'에서 맡은 '납득이' 캐릭터가 말 그대도 대박이 나면서 영화와 TV드라마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뮤지컬계 선배들이 '강추'를 해서 출연하게 된 '블러드 브라더스'는 연극 '리타 길들이기'과 '셜리 발렌타인'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영국 극작가 윌리 러셀(67)의 대표작이다. 1983년 영국 웨스트엔드 초연 당시 웨스트엔드 올리비에상 최우수 뉴 뮤지컬상, 여우주연상, 1988년 웨스트엔드 올리비에상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이후 24년간 1만회 이상 공연했다.
1993년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에서는 드라마데스크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고 토니상 남우주연·남우조연·여우주연 등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바 있다. 1988년 호주 프로덕션에서는 할리우드 스타 러셀 크로(50)가 미키 역을 맡기도 했다.
1960년대 공업도시 리버풀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형제 '미키'와 '에디'의 엇갈린 운명을 비극적이지만 감동적으로 그린다. 남편이 집을 나간 후 홀로 가족의 생계를 꾸리는 존스턴 부인은 어느날 쌍둥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가난한 그녀는 두 아이를 모두 키울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부자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는 라이언스 부인에게 한명을 보내기로 한다.
두 여인의 노력에도 운명은 두 아이를 마주하게 한다. 결국 쌍둥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의형제까지 맺었던 미키와 에디는 사회·경제적 격차로 인해 서로를 파국으로 끌고들어간다. 이를 통해 당시 영국 계급사회의 갈등을 파헤친다.
조정석은 가난한 집 아이지만, 자유분방하고 순수한 미키를 연기한다. "'블러드 브라더스'의 작품성과 완성도가 흥미로웠어요. 출연하고 싶은 매력을 느꼈죠."
무엇보다 미키와 에디 역은 유치원생부터 성인까지 20여년의 세월을 특수 분장 없이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고난도의 연기력이 필요하다. 조정석은 "물론 어려운 게 분명하다"면서도 "어린 아이들을 흉내내기 보다는 (그들의) 정신 세계에 흠뻑 젖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것이 해답이 아닐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지난 3년 간 조정석의 위상은 달라졌다. "가장 많이 변한 건 인지도죠. 대중들이 많이 알아봐주고, 기대를 많이 해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이 아껴주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다시 와서 공연하는 자체가 축복이고 행복한 일인만큼 최선을 다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탤런트 겸 뮤지컬배우 송창의(35)가 조정석고 함께 미키 역을 번갈아 연기한다. 귀공자 풍의 이미지가 언뜻 보기에는 가난한 집안의 미키와 어울리지 않는다. 송창의는 "힘든 공연이고, 도전을 하게 만드는 공연인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면서 "언제 이런 연기를 해보겠느냐는 모험심이 있어요. 색다른 연기로 제 스펙트럼을 넓히는 계기가 될 듯해요"라고 기대했다.
1990년대 극단 학전이 이 작품을 번안, 뮤지컬 '의형제'로 수차례 선보였다. 2004년 신시컴퍼니가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로 선보인 지 10년 만에 이번 무대에 다시 오른다. 2004년 한국 공연 연출가이자 러셀과 1980년대부터 호흡을 맞춰, 원작의 메시지를 가장 깊이 있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은 웨스트엔드 연출가 글렌 월포드(74)가 지휘한다.
윌포드는 "코미디 못지 않은 코미디이자 비극 못지 않게 비극적인 작품"이라면서 "희극적이면서 마법적인 면이 잘 섞여서 관객에게 전달이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러셀의 말을 빌려, '블러드 브라더스'는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뮤지컬'이라고 소개했다. "쇼뮤지컬에 빠지려고 할 때마다 꾹꾹 누른다"면서 "최근 서울에 오는 (라이선스) 뮤지컬과 달리 패키지로 오는 뮤지컬이 아니다. 러셀은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언어로, 다양하게 연출되기를 원했다. 이번 무대도 그래서 새롭고 10년 전 한국 공연과도 다를 것"이라고 전했다.
"2004년 캐스트도 그랬지만, 한국 배우들은 굉장히 자유롭고 본능적인 직관이 좋다"면서 "용감하고, 방랑자적인 기질이 있어 리허설이 재미있다. 지루할 틈이 없다"고 칭찬했다.
미키의 쌍둥이 동생 에디는 '구텐버그' '트레이스 유' 등으로 주목 받은 뮤지컬배우 장승조(33)와 '그날들' '공동경비구역 JSA' 등으로 뮤지컬계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는 그룹 '클릭비' 출신 가수 겸 배우 오종혁(31)이 번갈아 연기한다. 뮤지컬배우 진아라, 구원영, 김기순, 문종원, 배준성, 최유하, 심재현 등이 출연한다.
27일부터 9월14일까지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