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2026.04.30 (목)

  • 맑음동두천 20.3℃
  • 흐림강릉 17.0℃
  • 구름많음서울 20.7℃
  • 흐림대전 19.1℃
  • 흐림대구 16.8℃
  • 흐림울산 14.6℃
  • 흐림광주 17.3℃
  • 흐림부산 15.3℃
  • 흐림고창 15.0℃
  • 흐림제주 15.5℃
  • 맑음강화 17.1℃
  • 흐림보은 18.6℃
  • 흐림금산 18.7℃
  • 흐림강진군 16.1℃
  • 흐림경주시 15.6℃
  • 흐림거제 14.8℃
기상청 제공

신선 돼버린 감독 홍상수, 새 경지…영화 '자유의 언덕'

URL복사

[시사뉴스 송경호 기자] 홍상수(54)는 걷고 있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이 매번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그 또한 끊임 없이 움직인다. 하지만 홍상수는 그들과 나란히 걷지 않았다. 영화 속 인간의 주변을 돌거나 마주보고 서서 변하지 못 하는 그들을 동정하고 연민하는 대신 냉소하고, 비웃고, 꾸짖었다. 

그러던 홍상수가 멀리 떨어져 걷기 시작했다. 멀찍이서 인간을 바라보며 그들의 처연함과 쓸쓸함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절대 동정하지 않았다. 동정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말하던 인간에 대해 어느새 물음표를 달아 놓기 시작했다. 그때 홍상수는 잠시 멈춰서 걷는 인간에 눈을 떼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의 영화를 두고 동어반복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홍상수의 영화는 변하고 있다. 그리고 홍상수는 변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쉼 없이 걷고 있다는 표현은 적확하다. 그리고 '자유의 언덕'에서 홍상수는 자신이 창조한 인간과 나란히 걷고 있다.

나란히 걷기 때문에, 같은 곳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홍상수의 이야기는 따뜻해진다. 그래서 그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자유를 말하게 되고, 그의 영화는 따뜻함과 사랑과 자유를 언급하는 그 순간 동화가 된다. 

"권과 함께 일본으로 갔다.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낳았다"는 대사는 동화 속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다. 홍상수는 자신의 새로운 세계를 다시 한 번 열어젖히고 있다.

'모리'(가세 료)는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여자 '권'(서영화)을 찾아 한국에 온다. 하지만 권은 없다. 그는 한국에서 보낸 며칠간의 여정을 일기 형식의 편지로 담아 권에게 전한다. 그 편지를 받아본 권은 잠시 어지러움을 느껴 편지를 놓치고, 날짜가 적혀있지 않은 그 편지는 무작위로 섞인다. 그리고 권은 순서가 뒤죽박죽된 그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시간을 착각하게 하거나 장소를 엇갈리게 만들고 혹은 꿈과 현실을 모호하게 만든 적은 있지만, 홍상수가 시간 순서를 뒤섞은 적은 없었다. '자유의 언덕'에서 홍상수는 모리의 여정을 뒤죽박죽된 편지 그대로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시간 위에 서있는 모리와 주변인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삼각형처럼 배치한 뒤 그 가운데 인물이 서 있는 것처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은 홍상수가 전에 보여준 적이 없다. '옥희의 영화'에서 그는 과거와 현재를 "붙여 놓고 보고 싶었다"고 주인공의 입을 통해 말한 적이 있지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 한 가운데로 들어갔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이 영화가 신비롭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순서 없이(순서가 없는 것처럼) 보여주지만 그것이 혼란을 일으키기는커녕 권을 향한 모리의 마음을 어떤 방식보다 더 또렷이 보여준다.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인간에게, 그리고 언제 만날지 알 수 없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다림 밖에 없는 남자에게 시간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어딘가에 위치했다는 것은 여자를 기다리면서 보낸 그 시간이 있었다는 것의 의미를 넘어서지 못한다. 

시간이 엉키고, 꿈과 현실의 구분이 어려워진다 해도 모리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사랑이 되고, 자유가 된다. '자유의 언덕'은 그래서 동화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체험이 된다.

모리가 '영선'(문소리)의 집에 갔다가 화장실에 갇혀 있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화장실에 앉아서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리의 모습에서 감정의 파장이 느껴지는 건 시간에 갇힌 게 아닌 시간 안에 들어간 자의 어떤 평화로움 때문이다. 시간 속으로 들어가기를 자처한 자의 쓸쓸한 안도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30분이나 있었어요"라고 걱정하는 영선에게 모리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유의 언덕' 속 인물들은 서로에게 "사랑한다(혹은 I Love You)"라고 말한다. 홍상수는 이제 냉소와 처연함을 넘어 사랑을 말한다. 그것도 시간을 뒤섞고, 꿈과 현실을 뭉개는 특유의 방식으로 말이다. 

홍상수는 이렇게 걷고 있다. 홍상수의 영화세계는 언제나 흥미롭다.

저작권자 Ⓒ시사뉴스
제보가 세상을 바꿉니다.
sisa3228@hanmail.net





커버&이슈

더보기

정치

더보기
더불어민주당, ‘부산광역시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하정우...‘충청남도 아산시을’ 전은수 전략공천
[시사뉴스 이광효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전재수 전 의원의 부산광역시장 출마로 오는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동시에 실시되는 ‘부산광역시 북구갑’ 선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자로 하정우 전 대통령비서실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을,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의 의원직 사퇴로 예정된 ‘충청남도 아산시을’ 선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자로 전은수 전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을 전략공천했다. 더불어민주당 강준현 수석대변인은 30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 강준현 수석대변인은 하정우 전 수석비서관에 대해 “초중고(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모두 북구에서 졸업한 지역 토박이로 전재수 전 의원의 지역구를 훌륭히 계승하고 이번 부산선거 승리의 견인차가 될 최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 안팎에서 '하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생성형 사전학습 트랜스포머)로 불릴 만큼 막힘 없는 문제해결 능력을 자랑하는 하 후보는 대한민국을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강국으로 이끈 일등 공신이다”라며 “당 지도부가 삼고초려 끝에 모셔 온 핵심 전략자산으로 국회의 AI 분야 입법 수준도 한

경제

더보기

사회

더보기

문화

더보기
열여덟 어머니의 선택 연극 ‘춘섬이의 거짓말’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은 누구나 알지만, 그의 어머니 ‘춘섬이’를 아는 이는 드물다. 극단 모시는사람들의 연극 ‘춘섬이의 거짓말’은 조선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이 영웅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빈칸으로 남겨뒀던 어머니의 자리에서 시작한다. 꽃다운 나이 열여덟, 사랑하는 이와 혼례를 꿈꾸었으나 양반의 욕망에 휘말려 벼랑 끝에 선 춘섬. 그가 선택한 ‘거짓말’은 한 아이, 나아가 세상을 뒤흔드는 운명을 지어낸다. ‘조선여자전’ 시리즈의 완결편으로 지난해 평단과 관객의 뜨거운 호평을 받았던 ‘춘섬이의 거짓말’이 제47회 서울연극제 공식선정작으로 5월 22일(금)부터 31일(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이건 너하고 나하고 짓는 팔자여!’ 시대의 억압 앞에서 주체적인 결단을 내리는 춘섬의 곁에는 마님의 몸종 쫑쫑이, 찬모 딸 끝네, 어머니가 있다. 그들이 함께 짓는 거짓말은 단지 생존이 아니라 운명을 새로 쓰는 여성들의 은유적 저항이자 찬란한 연대다. 전통 서사의 감성과 현대적 재해석이 맞닿은 무대 위에서 폭압적인 현실 속에서 삶을 지어냈던 조선 여인들의 웃음과 눈물, 슬기와 생명력이 되살아난다. 지

오피니언

더보기
【박성태 칼럼】 삼성전자 총파업만은 안된다. 노사 손잡고 세계1위 기업 만들어 내길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심장부인 삼성전자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 국면에 직면했다. 오는 5월 21일부터 예고된 총파업은 단순히 노사 간의 임금 협상을 넘어,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시점에서 국가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한 변곡점이 되고 있다. 지난 23일 평택캠퍼스에 집결한 4만여 명의 조합원이 외친 성과급 제도 투명화와 상한제 폐지는 단순한 금전적 요구를 넘어선, 조직 내 뿌리 깊은 ‘불신’의 발로라는 점에서 사태의 엄중함이 크다. “사측에 무리하게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성과급이 어떻게 책정되는지 투명하게 알기를 원한다”는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은 공정한 보상 시스템에 대한 정당한 권리 주장이라는 측면에서 나름의 타당성을 지닌다. 특히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하고 상한을 폐지하며 산정 기준을 단순화한 사례는 삼성전자 직원들에게 뼈아픈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었고 결국 노조 총파업이라는 강수를 두게 되었다. 하지만 파업이라는 수단이 가져올 결과는 노사 모두에게 가혹하다. 업계와 학계는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단순한 생산 차질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과 시장 지위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