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이재현 CJ 회장이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CJ그룹은 패닉에 빠졌다.
경영 공백 장기화가 불가피한 CJ그룹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해외 사업 향방이 불투명해졌으며, 신사업 분야 진출 및 신규 투자 차질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부장판사 권기훈)는 지난 12일 이 회장에 대해 징역 3년의 실형과 벌금 252억원을 선고했다. 징역 4년이 선고됐던 1심 때보다 1년이 감형됐다. 재판부는 이재현 회장의 건강상태와 현재 구속집행정지 기간 중인 점을 고려해 불구속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CJ그룹 "선처 기대했는데" 망연자실…경영차질 불가피
이번 판결에 앞서 지난달 19일 상속 문제로 앙숙 관계였던 범삼성가 인사들이 이 회장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선처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이 회장이 신장이식 수술의 후유증 등으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만큼 법원의 선처를 기대했으나, 결과는 실형 확정으로 끝났다.
판결 직후 CJ는 충격 속에 대법원 상고를 진행할 의사를 밝히고,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CJ는 지난해 7월 발족된 손경식 CJ 회장을 중심으로 한 그룹경영위원회를 통해 이 회장의 경영 공백을 메운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그룹경영위원회가 주요 투자계획 등 이 회장의 판단이 필요한 주요한 의사결정을 보류하고 있는 만큼 그룹의 경영 차질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CJ그룹은 그동안 투자액을 2010년 1조3200억원, 2011년 1조7000억원, 2012년 2조9000억원으로 해마다 늘려왔으나, 이 회장 구속 이후 보수적인 경영 전략을 펼치면서 투자규모가 목표치에 미달했다.
지난해 투자액은 당초 목표치보다 약 20% 적은 2조6000억원에 그쳤으며, 올해도 손경식 회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2조원대 투자 계획 달성이 어려울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CJ그룹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올 1월 충청 지역에 물류 터미널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2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으나 의사 결정이 미뤄지면서 전면 보류했다. CJ CGV의 해외 극장사업 투자, CJ오쇼핑의 해외 인수합병(M&A)을 통한 사업 확대 계획도 미뤄졌다.
CJ제일제당의 경우 생물자원 사업부문을 글로벌 성장동력으로 삼고 베트남·중국 업체와의 M&A를 추진했지만 협상 마무리 단계에서 계획이 무산됐다. CJ푸드빌은 한식 레스토랑 '비비고' 매장 출점 계획을 잠정 보류했다.
이 같은 상황은 실적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지난해 CJ의 연결기준 연간 영업이익은 7800억원으로 전년보다 26% 감소했으며, CJ제일제당의 연결 기준 지난해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43.9% 감소했다. CJ푸드빌은 지난해 연결적자 592억원을 기록했다.
◇벼랑 끝 몰린 CJ그룹, 여전히 안개속…대법원 손에 'CJ그룹' 운명 판가름
더 큰 문제는 이번 판결로 여전히 안개 속을 걷게 됐다는 것이다. CJ그룹 측은 이번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 상고에 나설 뜻을 밝혔다.
대법원은 법률심으로 사실관계를 심리하지 않는다. 하급심이 법리 적용을 제대로 했는지 살펴보는 '최종심'인 만큼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와 다른 결과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회장의 선고공판이 당초 지난 4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재판부가 검토할 기록이 많다며 연기했다. 이 같은 결정이 법원의 심리가 충실했다는 점을 반증할 수도 있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건처럼 대법원이 다시 심리하라며 파기환송 판결을 내린다면 이재현 회장 측에 유리해지겠지만,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한다면 실형 확정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없으며 그룹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CJ그룹 관계자는 "수감생활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건강 상태가 심각함에도 불구, 실형이 선고돼 매우 안타깝다"며 "상고심을 통해 다시 한 번 법리적 판단을 구해 보겠다. 판결문을 받아 구체적으로 검토한 후 최선을 다해 소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고는 판결 선고후 7일 이내에 2심 법원에 서면으로 상고장을 제출해야 하고, 이 기간이 경과되면 선고는 확정된다.
특히 이 회장의 이번 항소심은 김승연 회장의 사건과 비슷한 점이 많아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형법상 집행유예는 징역 또는 금고형이 3년 이상일 때 가능하다. 두 사건 모두 항소심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받아 집행유예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을 채웠으나, 법원이 범죄의 목적을 달리 판단하면서 양형도 달라졌다.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이재현 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조직적이고 은밀한 방법으로 251억원의 조세를 포탈해 국가의 조세 질서를 어지럽히고, 국민들의 납세의식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사안이 중대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회장의 범죄행위는 시장경제질서의 근간이 되는 회사 제도를 몰락시키는 것이며, 해외 계열사를 이용해 개인 소비 자금을 충족시키고 자산 증식을 꾀한 점을 고려할 때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판시했다.
김승연 회장의 경우 2012년 8월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2013년 4월 2심에서 배임액 축소와 피해액 변제 등이 참작돼 징역 3년으로 감형받았으나, 이에 불복해 상고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9월 김 회장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무죄 취지는 아니지만 일부 법리 적용에 문제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후 김 회장은 올해 2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50억원, 사회봉사 300시간을 선고받으면서 풀려났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김기정)는 "이 사건은 범행 당시 한화그룹 전체의 재무적·신용적 위험을 한꺼번에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우량 계열사 자산을 동원한 것"이라며 "기업주가 회사 자산을 자신의 개인적 치부를 위한 목적으로 활용한 전형적인 사안과 다소 거리가 있어 상당 부분 참작할 여지가 있고, 피고인이 꾸준히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해 1597억원을 공탁했다. 그동안 경제 건설에 이바지한 점, 건강상태가 나쁜 점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재현 CJ 회장 항소심 징역3년 실형…법정구속은 피해
한편 이 회장은 수천억대 비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546억원의 세금을 탈루하고 국내외 법인자금 719억원을 횡령하는 등 총 1657억원의 탈세·횡령·배임을 저지른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이 회장에게 징역4년의 실형과 벌금 260억원을 선고했다. 이 회장은 1심 재판 과정에서 신장 이식 수술을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 왔다.
검찰은 지난달 14일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권기훈)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1100억원을 구형했다.
2심 재판부는 이 회장의 횡령·배임·조세포탈 혐의 액수 1657억원 가운데 675억원만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이 부외자금(장부 없이 운용되는 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251억원의 조세를 포탈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또 309억원 상당의 배임행위와 115억원 규모의 법인자금 횡령 등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의 포탈세액이 250억원을 초과하는 거액"이라며 "조세포탈 범죄는 조세정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범죄로 일반 국민의 납세 의식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재판부는 "포탈세액을 납부하고 피해를 모두 회복한 점이 양형상 중요한 고려 요소인 것은 분명하나 기업가가 범행이 발각된 이후에 행한 조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어 옳지 않다"고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차명주식과 관련된 포탈세금을 모두 납부했고 해외 계열사 등에 끼친 손해는 현실화되지 않았거나 대부분 피해회복이 된 상황"이라며 "이 회장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점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 회장의 건강상태 등을 고려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으며, 구속집행정지 기간을 오는 11월 21일 오후 6시까지 석달 연장했다. 이 기간 동안 이 회장은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서울대병원에 머물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