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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획]‘3세 신화’의 함정…“조기교육이 아이 뇌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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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된 가설…근거 없는 ‘신화’에 불과”
전문가 “과잉 조기교육이 뇌 발달 위협”…“시간·공간·친구 돌려줘야”

[시사뉴스 이상미 기자]‘아이의 뇌는 만 3세 즈음 대부분 완성된다.’ ‘어릴 때 영어를 배워야 원어민처럼 말할 수 있다.’ 많이 들어본 얘기들이다. 그런데 상식처럼 여겨졌던 이 말들, 과연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다. 최근 20~30년 동안 뇌 과학자들은 이것은 수정 또는 폐기된 가설이거나 과학적인 증거가 없는 ‘신화’에 가까운 엉터리 이론이라고 지적해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연구혁신센터(CERI)는 10여 년에 걸친 국제 공동 연구 끝에 ‘뉴로 미스(neuro-myth·신경계 신화)’, 즉 ‘뇌에 관한 잘못된 속설’ 등을 담은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절대적인 과학이론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교육 업체들은 이를 상품화한 영·유아 교육 프로그램과 교재로 부모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나이에 맞지 않는 ‘과잉 조기 교육’은 아이의 뇌 발달을 방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를 저술한 과학 저널리스트 겸 작가 신성욱 PD에게 뇌 과학의 신화와 진실, 그리고 위험성에 관해 들어봤다.

◆“폐기된 가설…근거 없는 ‘신화’에 불과”

‘3세 신화’는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등장했다. 빈곤층 부모에게 영·유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스위크 등 언론도 ‘시냅스(신경세포 접합부) 밀도’와 ‘아이 뇌 발달’의 연관성을 다룬 기사를 잇달아 보도해 대중화에 일조했다.

한국에서도 이때부터 영·유아 두뇌·지능 발달 프로그램, 조기 교육 프로그램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국책연구소인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영·유아 사교육비 규모는 3조2289억원으로, 전년도 2조6000억원보다 22.2%나 증가했다.

부모 10명 중 9명이 조기교육의 적절한 시기로 0~36개월을 꼽았다는 모 육아 잡지 조사 결과 역시 영·유아 조기교육 열풍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OECD CERI는 2007년 발간한 ‘뇌의 이해-학습 과학의 탄생’ 및 ‘뇌의 이해-새로운 학습 과학을 향하여’ 보고서를 통해 ‘3세 신화’뿐 만 아니라, 좌뇌형·우뇌형 아이, 남녀의 뇌 차이 등은 ‘근거가 없는 믿음’이라고 밝힌다. 1999년부터 진행한 국제 공동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뇌와 관련한 잘못된 정보가 오·남용되는 것을 우려한 이 보고서는 특히 ‘3세 신화’는 조기 교육을 통해 아이의 뇌 발달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영재’에서 ‘발달장애아’로

진우(가명)는 이른바 ‘영어 영재’다. ‘36개월 이전에 영어를 익히면 바이링구얼(Bilingual·이중 언어 구사자)이 된다’고 믿었던 진우 엄마는 진우를 가졌을 때부터 영어 교재로 태교했다. 진우는 태어난 뒤에도 언제나 영어에 노출됐다. 생후 18개월 때부턴 영어책을 봤고, 24개월 때엔 유명한 영어 유치원을 다니면서 한국어보다 영어를 먼저 익혔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뒤 본격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한 ‘영어 말하기 대회’에선 1등을 거의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부쩍 이상 행동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불평·불만이 늘었고, 친구들과 다투는 일이 많아졌다. 자꾸 혼자 있으려는 성향도 보였다. 선생님이 나무라자 교실을 뛰쳐나가기도 했다.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여겨진 진우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고 급기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증까지 나타났다.

진우의 뇌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감정의 뇌’라고 불리는 대뇌변연계, 그 중에도 편도체와 기저핵에서 이상이 발견됐다.

대뇌변연계가 손상되면 감정 조절이 미숙해지고 단기 기억에 어려움을 느낀다. 진우가 짜증을 내거나 소리를 지르고 쉽게 포기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는 “아이들은 발달 단계에 맞는 적절한 자극 대신 과도한 자극, 즉 문자 학습에 노출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그 결과 뇌에서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 분비해 신경세포 발달을 억제했다”고 분석했다.

민아(가명)도 비슷한 경우다. 민아는 4살 때 혼자서 한글을 깨우쳤다. 처음엔 친구들의 이름표에 적힌 글자와 음을 맞춰가며 따라 읽더니 나중엔 길거리에 있는 간판, 그리고 엄마가 읽어주는 그림책과 신문에서 아는 글자를 더듬더듬 읽어냈다. 모르는 글자가 나올 땐 물어봤고, 이렇게 익힌 글자 수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완벽하진 않지만 혼자서 그림책을 읽을 수 있게 됐다.

5살 땐 다니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비싼 영어 유치원으로 옮겼다. 더 늦기 전에 영어를 가르쳐야겠다는 민아 어머니 결정 때문이었다. 다행히 민아는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영어를 곧잘 따라 했다. 6살 땐 수학을 시작했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는 물론 간단한 수 개념과 도형까지 배웠다. 민아는 이때에도 며칠 만에 구구단을 외워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러던 민아도 어느 날부터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수학 공부를 시작한 뒤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울부짖는 일이 잦아졌다. 짜증도 늘었다. 친구들과의 놀이에 점점 흥미를 잃었고 혼자 책을 보거나 비디오를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민아 할머니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동상담센터에 가 볼 것을 권했으나 민아 부모는 펄쩍 뛰며 “아이가 영재성이 있어 좀 예민한 것뿐”이라고 무시했다.

하지만 소아정신과 전문의, 영·유아 심리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런 아이들이 급증하는 데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아동 발달심리 전문가 정석진 박사는 “영·유아 중에 정서불안, 도피, 충동적 행동, 주의 산만, 창의성 발달 저하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며 “과도한 인지 교육으로 인한 스트레스, 즉 공부를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고 추정했다.

◆“과잉 조기교육이 뇌 발달 위협”

전문가들은 아이의 발달 단계를 무시한 과도한 자극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심할 경우 언어 발달 지체, 정서 발달 지체, (후천성)자폐 성향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신경학자 폴 맥클린 박사의 ‘삼위일체 뇌’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생명 활동을 담당하는 ‘파충류의 뇌’(뇌간)와 감정·기억력을 담당하는 ‘감정의 뇌’(대뇌변연계), 지능·운동 능력을 담당하는 ‘생각하는 뇌’(대뇌피질 또는 신피질) 등으로 구성된다.

이 3가지 뇌는 차례대로 발달하는데 ‘감정의 뇌’는 만 12세까지 집중적으로 발달한다. 이때 연령에 맞지 않는 조기교육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시켜 뇌의 신경세포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감정의 뇌’ 손상은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 정신의학 연구소가 진행한 사이코패스의 뇌 연구를 통해 주목받기도 했다.

연구팀은 흉악범죄를 저지른 20여 명의 뇌를 스캔했는데 이들에겐 감정의 뇌(대뇌변연계)와 생각의 뇌(전전두엽)를 연결하는 ‘갈고리 다발’ 손상이 두드러졌다. 감정의 뇌와 생각의 뇌가 서로 협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사이코패스형 범죄자들은 감정의 뇌가 크게 손상됐다는 특징을 보였다”며 “공감 능력이 낮아 전두엽 등에서 일어나는 예측이나 판단에 의한 억제 능력이 감정과 본능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시간·공간·친구 돌려줘야”

신 PD는 “요즘 아이들은 ‘감정’을 발달시켜야 할 나이에 공부하고 있다”며 “인지학습 중심의 과잉 조기교육은 인간의 발달에 전혀 맞지 않는 자극이자 경험”이라고 짚었다. 이어 “언어·정서발달 지체, 유사자폐 혹은 후천성 자폐 등을 보인 아이들은 ‘아이들에게 전이되는 부모의 과도한 스트레스’ 또는 ‘과도한 조기교육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면서 “과잉 조기교육이 아이의 뇌 발달에 얼마나 위협적인지 보여 준다”고 부연했다.

그는 대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마음껏 놀기’가 아이들의 신체·지성·사회성·감성 발달을 이끄는 핵심 요소라는 설명이다.

놀이 운동 전문가인 편해문 작가 역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하려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안전한 장소와 시간, 친구 등 세 가지를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교육 시장의 짜놓은 놀이, 프로그램화한 놀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놔두고, 밥때를 잊을 정도로 신나게 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옛날로 치면 배에 꼬르륵 소리가 날 때까지 놀던 딱지치기, 구슬치기, 공기놀이, 고무줄놀이다.

신 PD는 “영·유아기 아이들에게 ‘놀이’는 사물의 색과 모양, 맛과 소리 등을 알아보는 학습 활동”이라며 “이를 통해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익히고, 나 아닌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어 친밀한 감정을 나누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는 신체 활동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 형성, 스트레스 조절, 문제 해결 능력 발달 같은 인지 능력 형성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결국 유전자의 명령, 생물학적 시간표에 따라 인간으로서 잘 살기 위한 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지금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크게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간혹 놀이터에 간다 하더라도 함께 놀 친구가 없다.

신 PD는 “지금은 어른들이 아이를 점령한 시대다. 아이를 위한다면서 정작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친구를 빼앗아 버렸다”며 “아이들에게 어떻게 시간을 돌려줄지, 어떻게 안전한 공간을 돌려줄지, 어떻게 친구를 돌려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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