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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살·늙음·사랑사치…현실과 조우 뮤지컬'어쩌면 해피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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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도·정문성 복귀…매진 행렬

 

[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우리 입술이 차가워진 때 일상적인 기계처럼 나이를 먹고 있어요. 세워진 돌처럼 바라보고 우리는 남겨져 있어요."(For everyday robots getting old. When our lips are cold. Lookin' like standing stones. Out there on our own.)

 

브릿팝 밴드 '블러'의 프런트맨 데이먼 알반의 솔로곡 '에브리데이 로봇'의 가사를 뜯어보면,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매력은 배가 된다. 미니멀한 트립합(음습하고 몽롱한 전자음악의 하위 장르) 사운드에 배인 도회적이면서 쓸쓸한 '에브리데이 로봇'의 정서를 따듯하면서 애잔하게 치환했다.

 

스마트폰을 기계처럼 지니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정경을 그린 '에브리데이 로봇' 노랫말에서 한국인 작가·작사가 박천휴와 미국인 작곡가 윌 애런슨이 영감을 얻은 작품.

 

동명영화가 바탕인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를 통해 아날로그 감수성을 뽐낸 이 콤비는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들의 사랑'이라는 디지털적 소재에서 다시 한 번 아날로그 감성을 길어 올렸다.

 

'어쿠스틱한 분위기가 흐르는 미래의 메트로폴리탄 서울'이 콘셉트로 미래가 배경이지만 재즈 레코드, 반딧불이, 제주도 등을 등장시켜 감성을 자극한다. 재즈와 실내악 기반의 뮤지컬 넘버들도 그런 매력을 부추긴다.

 

2014년 가을부터 우란문화재단이 인력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했다. 2015년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트라이아웃 공연했고 2016년 초연했다. 당시 97회 중 70회 매진을 기록하며 창작 뮤지컬로서는 이례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2017년 서울과 제주에서 '어쩌면 해피엔딩 음악회'를 열었고, 그 해 11월 3주간 앙코르 공연했다.

 

작품에 대한 검증이 끝나고, 입소문이 퍼진 덕에 2018년 두 번째 시즌은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당시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대학로에 줄이 늘어섰던 것이 지금도 회자된다.

 

CJ ENM이 새로운 제작사로 나서 2년 만에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현재도 역시 표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코로나19로 위기를 겪고 있는 대학로에 버팀목이 돼 주고 있다. 관객이 많아 문진표 작성, 열 체크 등을 하는데도 꽤 시간이 걸리지만, 관객들은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작품은 사람과 완전하게 흡사하게 생긴, 그러나 구형이 돼 버려진 채 외롭게 살아가는 두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주인공이다.

 

약칭인 '어햎'이라 불리며 마니아를 형성 중인 이 작품이 대학로의 대표 레퍼토리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섣부른 것이 아니다. 어느 시대와도 공감대 형성을 할 수 있는 고전적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박천휴 작가는 "작품의 근원에 깔려 있는 정서는 클래식"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재와 맞물리는 이유 중 하나는 '혼자 살아가기'(혼살)다. 버려진 헬퍼봇들은 낡은 아파트에서 혼자서 살아간다. 충전기가 망가진 클레어가 다른 호실의 문을 두드려도 응답이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을 멀리하게 되는 지금이 자연스레 겹쳐진다.

 

클레어를 만나기 전 대인기피증을 앓는 것처럼 보이는 올리버가 종이컵으로 만든 실 전화기로 멀찌감치 떨어져 클레어와 소통하는 모습은 아날로그 정서를 풍기지만, 동시에 사람과 대면하기 힘든 지금을 반영한다. 동시에 점점 녹이슬어가며 서로에게 의지하는 두 헬퍼봇의 모습에서 늙은 부모가 떠오른 관객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올리버와 클레어에게서는 노년의 모습뿐만 아니라 지금의 청춘도 발견할 수 있다. 올리버와 클레어는 자신들의 유효기간과 함께 버려진 처지를 감안해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기로 약속한다. '자율적 의지'에 의해 사랑에 빠지지 않도록 프로그래밍이 돼 있기도 하다. 이런 부분에서는 'N포 세대'로 결혼은 물론 연애까지 사치로 느끼는 젊은 세대의 힘겨움이 연상됐다.

 

이 작품의 다른 백미 중 하나는 슬픔을 대하는 태도다. 올리버와 클레어가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슬픔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었다. 사랑으로부터 빚어지는 상대방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은 자신은 물론 상대방도 힘들게 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유명한 글귀가 떠올랐다.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그럼에도 슬픔을 배우는 것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극 막바지에 올리버와 클레어는 서로를 사랑했던 기억을 지우기로 한다. 이후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장면이 다시 찾아온다. 서로를 바라보는데 눈빛이 심상치 않다. 아련함일까. 호기심일까. 객석에는 어느덧 수채화처럼 울음이 번졌다. 일부 관객은 쓰고 있던 마스크를 황급히 교체하느라 분주했다.

 

지난 3일 공연에는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대학로 스타 전미도와 현재 대학로에서 주가를 한창 올리고 있는 양희준이 각각 클레어와 올리버를 연기했다.

 

이 뮤지컬 초연부터 출연한 전미도는 명불허전이었다. 올리버가 클레어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이해가 되지 않았을 정도였다. 일부 시청자는 마치 전미도가 '슬의생'을 통해 발견된 것처럼 소란을 떨지만, 공연 마니아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마음으로 평안하다. 이에 따라 전미도가 이번 작품으로 무대에 컴백했다는 표현보다, TV 드라마로 활동 반경을 넓힌 전미도가 해오던 대로 하고 있다는 표현이 알맞다.

 

좋은 뮤지컬은 시대를 읽게 한다는 것을 증명한 '어쩌면 해피엔딩'의 가장 큰 후유증은 '사랑을 하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다. 결혼한 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면서, 귀가한 뒤 해온 것처럼 당연히 밀린 청소와 설거지를 했다. 사랑은 일상도 설렘으로 만든다. 매진된 티켓 예매창 댓글에 "천장석이라도 오픈해주세요"라는 글들이 쏟아지는 이유다. 추가 티켓 오픈이 남아 있어, 벌써부터 피켓팅(피가 튀는 전쟁 같은 티켓팅)을 예고하고 있다.

 

올리버는 양희준 외에 '슬의생'의 정문성 그리고 전성우가 연기한다. 클레어는 전미도와 함께 강혜인, 한재아도 맡았다. 트라이아웃부터 '어쩌면 해피엔딩'을 이끈 김동연 연출과 지난 시즌 6인조 라이브 밴드로 '어쩌면 해피엔딩'의 백미를 장식한 주소연 음악감독이 다시 한 번 함께 의기투합했다. 9월13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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