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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나라 자동차, 그 분이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겁니다”

  • 등록 2005.08.17 1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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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동차의 대부 고 정세영편
본지는 이번호부터 ‘개관사정’코너를 마련, 각계에서 활동하며 그 족적을 남긴 유명무명의 고인들을 발굴, 그들의 삶이 후세에 어떤 의미로 되살아 나는지를 조명코저 합니다. 첫 번째로 최근 유명을 달리한 ‘포니 정’ 고 정세영 회장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개관사정(蓋棺事定)이란 말이 있습니다. 관의 뚜껑을 덮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뜻인데요. 두보(杜甫)가 쓰촨성[四川省] 동쪽 깊은 산골로 낙배해 있을 즈음 친구의 아들인 소혜가 그곳에 유배돼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시를 지어 보낸데서 나온 말입니다.

<군불견간소혜>란 시에서 두보는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길에 버려진 못을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부러져 넘어진 오동나무를
백년 뒤 죽은 나무가 거문고로 쓰이게 되고
한 섬의 오래된 물은 교룡이 숨기도 한다

장부는 관 뚜껑을 덮어야 모든 일이 결정된다
그대는 아직 늙지 않았거늘
어찌 원망하리 초췌해 있음을… 이라고 위로한 바 있습니다.

“다른 말이 필요없다.”
현대차의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 최근 영국의 자동차 전문지 ‘왓 카’가 실시한 자동차 신뢰도 조사에서 현대차는 벤츠, BMW, 아우디 등을 제치고 세계 6위를 차지했다. 또한 지난 6월에는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과거 농담거리였던 현대차가 전세계 자동차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며 현대차가 최고급 차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리 스스로도 현대차는 수준급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오늘날 현대자동차가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는 바탕에는 고 정세영(1928-2005) 회장이 있다. “다른 말이 필요 없다. 지금의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이 잘하고 있으나 그 기반을 닦은 것은 정세영 회장이었다.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에서 가장 기여를 많이 한 사람이다.”
지난 5월 그가 작고했을 때 언론들은 그를 ‘대한민국 자동차 신화를 일군 포니정’, ‘한국 자동차산업의 아버지’, ‘살아있는 한국 자동차의 발전사’ 같은 표현을 써 큰 애도를 표했다.

정주영이 그어놓은 틀에서 맘껏 경영능력을 펼쳤던 2인자
정세영은 맏형인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셋째 동생으로 정회장이 형제 중 가장 총애했다. 동생의 가능성을 보고 집안에서 최초로 미국 유학을 주선해 학비를 댄 것도 정회장이었고 귀국해 교수가 되려던 꿈을 접게 한 것도 그였다. 맏형의 권유로 현대건설에 입사한 정세영은 1967년 현대자동차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사장으로 발탁된다.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산업이 한 나라의 경제 지표가 될 만큼 경제적 중요도가 높은 산업임을 간파하고 있었고 그 중요한 자리에 가장 신뢰할만한 동생을 앉힌 것이다. 이후 정세영은 ‘정주영이란 불세출의 인물이 그어놓은 넓은 틀 안에서 맘껏 경영능력을 펼치다 간 2인자’가 되었다.
정주영 회장의 지시에 따라 1999년 현대자동차를 장조카 몽구에게 넘기고 32년간의 자동차 인생을 허무하게 정리할 때까지 그는 오로지 자동차의 국산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정세영은 10년, 20년이 걸리더라도 자체적으로 기술력을 갖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술개발에 대한 소신을 일관되게 밀고 나갔고 그 점이 그가 한국 자동차산업에 끼친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자동차 전문가는 “정주영 회장이나 정세영 회장이나 지금부터 40년 전에 국산 자동차를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것은 정말 대단한 리더쉽이었다”고 말했다. “자동차를 잘 만들려면 엔진과 미션 같은 핵심기술을 갖고 있어야 한다. 자동차를 개발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문제점들이 나타난다. 연비를 좋게 하면 성능이 떨어지는 식으로. 그런 점을 막으려면 엔진과 미션이 차량에 맞게 튜닝 되어야 하는데 그 기술이 없으면 차량을 자유자재로 만들 수 없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엔진과 미션을 생산할 수 있는 자동차회사는 몇 안 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차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세계적인 회사가 될 수 있는 반열에 오른 것이다.”

최초의 국산 자동차 ‘포니’ 그리고 ‘포니정’
후진국에서 자동차를 만든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1974년 현대자동차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국산차 ‘포니’는 큰 의미를 갖는다. “보통 외국에서 기술을 들여온다는 것은 생산기술이나 설계기술을 들여오는 게 아니다. 설계도면을 사다가 공장에서 만드는 것이다. 포니는 일본의 미쯔비시에서 엔진도면을 사와 나름대로 외국회사의 도움을 받아가며 만든 것이다.” 비록 핵심기술은 외국에서 들여왔으나 포니는 정세영의 역작이었다. 정세영은 이탈리아로 날아가 자동차 설계의 거장 ‘조르제토 쥬지아로’에게 디자인을 맡겨 ‘포니’가 세계 시장에서 호평을 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당시 세계 언론들은 포니의 디자인을 보고 ‘선 흐름이 유려한 차’란 평가를 내렸다. 포니는 생산 첫해에 국내에서 1만726대가 팔렸고 단숨에 국내 승용차 시장 점유율 43.5%를 차지했다. 정세영의 관심은 무엇보다 해외시장 개척이었다. 포니는 1976년 국산차로는 처음으로 에콰도르에 처녀 수출되었고, 10년 후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포니 엑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바탕이 됐다. 포니 엑셀 이후 한국 자동차는 비로소 세계 시장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때 정세영은 ‘포니정’이란 애칭을 얻게 된다.

늘 지원하는 입장에 있었던 경영자
경영자가 직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많은 현대차 직원들은 정세영을 좋은 경영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늘 지원하는 입장에서 일하는 경영자였다. 목표가 분명하고 추진력이 굉장히 빠르고.”
한 직원은 “다른 직원들보다 격의없이 지냈는데 서민적인 분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싫은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 분은 야단칠 때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무개는 지금까지 잘해 왔다. 앞으로는 이것도 좀 잘해 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무척이나 마음이 아프고 그래서 더 잘하게 된다.”
그는 정세영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뛰어난 형의 지원 아래 오로지 자동차를 제대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산 인생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그것은 동전의 양면 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결국 2세 경영권을 장자에게 물려주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면서 동생에게 현대자동차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했다. 씁쓸한 퇴장이었다. 정세영 자신은 “우리 집안은 철저한 장자주의”라면서 형의 뜻에 순종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정세영의 이력에는 ‘자동차에 획을 그은 사람’이었다는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글 | 김예옥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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