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르릉, 때르릉~. 네 000의원실 입니다.”
“기획예산처 장관님 초청 스포츠 회동이 있는데요. 참석하실 수 있나요?”
“네? 스포츠 회동이면, 골프요?”
“아, 맞습니다. 장관님이 초청하는 겁니다. 의원님 참석여부를 알고 싶은데. 날짜는 9월30일 토요일...”
“우리 의원님은 골프를 못치는데… 못갑니다. (재차 참석여부를 기예처쪽에서 물어오자)나중에 연락하겠습니다.”
국감때면 으레 장관이 골프 제안?
9월1일부터 장장 100일간에 걸쳐 진행되는 정기국회로 1년중 어느때 보다 부산스런 국회의원회관. 한 운영위원회 소속 의원 보좌관이 기획예산처 모 부서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중인듯 했다. 또다른 운영위 소속 한 교섭단체 원내대표실로도 기획예산처(장관 장병완)관계자의 골프 ‘러브콜’은 어김없이 울렸다.
“대표일정은 보통 2~3일전에 확정된다. 이달말 주말골프 일정인듯 한데 (날짜도 많이 남았고)간다 안간다 얘기하기가 그렇다”
국회본청과 의원회관, 때로 국회도서관으로 종종걸음 발품 팔고 다니다 보면 하루가 짧은 국회 출입기자의 하루. 가뜩이나 바쁜 정기국회 기간이고 내달에 열리는 국정감사까지 겹쳐 상임위별 의원활동 추적이 만만치 않은데 운영위 소속 8~9명 의원실에서 묘한 ‘골프 러브콜’얘기가 흘러 나왔다.
“아, 기획예산처라고만 밝힌 사람으로부터 이달말 (장관과의)골프회동 참석여부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 우리 의원님은 추석도 앞두고 해서 지역일정상 참석불가하다고 전했다.”
열린우리당 ㅈ의원실은 ‘장관골프 제안을 받은게 맞냐’는 질문에 딱잘라 거절했다고 밝혔다. 어차피 장관골프가 부담스럽기도 했고 추석을 앞둔 터라 설령 하고싶어도 시기가 부적절했기 때문. 이방 저방 운영위 소속 의원실 확인결과 예상했던대로 기획예산처 재정감사과가 주도하는 ‘장관&국회의원’ 주말골프 제안이 사실로 드러났다.
한나라당 국방위 소속 의원들이 피감기관인 한 군부대에서 버젓이 골프를 즐기다 언론에 발각된 지 불과 며칠만에 이번엔 피감기관인 기획예산처가 장관까지 나서 국회의원들에게 ‘친목 골프 회동’을 제안한 것이다.
기획예산처 ‘장관은 모르는 일’?“전화를 끊고 나니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얼떨결에 우리 의원은 골프도 안치는데 웬 스포츠 회동인가 싶어 참석불가를 밝혔지만 재차 물어오는 바람에 어쨌든 다시 물어보고 연락하겠다 했지만 말이다. 국감과 추석을 앞둔 주말골프 제안이 왜 나왔는지를 캐물었어야 하는데 미처 그쪽에다간 말을 못했던게 영…”
군부대 의원골프덕에 골프랑 담 싼 의원들까지 싸잡아 위신이 추락한게 억울했던 바, 한 운영위 소속 의원 보좌관이 장관골프 제안에 석연찮은 의문을 던졌다.
“때르릉 거기 기획예산처 비서실이죠?”
“네,맞는데요.”
“국회 운영위 의원들과 장관골프 주말예약 확인좀 하려고 합니다만.”
“재정감사과에서 주관하니 전화를 그쪽으로 하시죠.”
확인취재는 간단 명료하게 끝이 났다. 장관&국회의원 골프모임을 주관하려던 기획예산처 재정감사과 한 서기관은 “장관실은 모르는 일”이라며 “단지 (그날)의원들 일정이 어떤지를 확인하는 전화를 걸었고 확정된게 없어 장관실엔 통보도 안했다”고 잘라 말했다.
“장관도 모르는 골프모임을 의원들에게 날짜까지 못박아 물어보는게 말이 됩니까. 기획예산처는 일개부서가 장관일정을 마음대로 정합니까.”
“운영위원들 일정만 확인해봤다. 대부분 지역구 일정상 불참하겠다고 해서…골프는 그저 장관과 국회운영위원간 친목도모차…운영위 국감일정은 잡히지도 않았고 해서…”
장관골프 제안에서 전격취소까지국감앞둔 골프모임에 의문을 던지자 이 서기관은 “운영위 국감일정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제안된 친목도모 골프 제안이었다”며 오히려 얼토당토하게 운영위 행정실에서 의원일정을 부탁했다는 횡설수설을 보태 놓았지만 확인결과 국회 운영위행정실 관계자는 ‘우리가 왜 운영위원 일정을 기예처 재정감사과에 물어보냐’며 의아함을 전했다.
어찌됐든 대부분 운영위 소속 의원들이 지역구 일정 등의 이유로 불참통보를 전한데다 취재기자의 사실확인 질문이 이어지면서 이 이상한 장관&의원골프는 전격 취소 조치됐다.
하지만 ‘골프 취소 방침 전화가 기획예산처에서 왔다’는 이야기는 아이러니컬 하게도 ‘불참통보’를 밝혔다던 몇몇 의원실에서 확인됐다. 애초부터 골프를 안해 ‘안간다’는 입장을 전한 운영위 소속 초선의원인 한나라당 ㅅ의원이 “취소전화? 우리방은 없었다던데”라며 씁쓸한 미소를 건넨 참이었다.
성급히 거둬들인 골프취소 방침이 의아해 다시 장관비서실로 전화를 돌렸다.
“노-코-멘-트입니다.”
비서실 여직원이 연결해준 장관실 관계자는 골프사실도, 자신의 신분도 모두 ‘노코멘트’입장만을 분명히 했을뿐 아무런 사실관계 설명을 털어놓지 않은채 전화를 끊었다. 기획예산처는 왜 국감과 추석을 앞둔 9월말 의원들을 향해 ‘장관 골프 공수표’를 날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