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승리 기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올 상반기 중 타결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글로벌 섬유산업에 빅뱅이 올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원사기준' 등 원산지 규정 채택 여부에 따라 세계 섬유업계 생산 전략이 개편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KOTRA는 5일 발간한 'TPP 협상이 섬유산업에 미치는 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TPP가 타결되면 글로벌 섬유업계의 판도가 바뀔 수 있다"며 "우리 섬유·의류 기업 행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원사기준, 즉 '무관세 혜택을 받기 위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 내에서 원사를 생산하고 완제품으로 수출할 때까지 모든 공정을 역내에서 수행해야 한다'는 원산지 규정 채택 여부에 따라 향후 생산 전략이 크게 갈릴 것으로 내다봤다.
섬유 업계에선 대체로 원사기준을 지지하고 있다. 중국산 섬유의 대거 유입을 막고자 하는 취지다. 이에 반해 의류업계는 원사기준 보다 유연한 원산지 규정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섬유·의류 최대 수입국인 미국에선 원산지 규정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은 시장경쟁에 대비해 원가절감 및 물류망 구축 등 전략을 짜는데 집중하고 있는 분위기다.
미국한인의류협회 관계자는 "최근 베트남에서 의류 소싱을 하던 회원사들이 비용 절감 등을 위해 미국 시장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활용할 수 있는 멕시코로 소싱을 계획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일본 섬유업계도 원사기준 채택에 대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섬유·의류 수출 기업인 이토츄 상사는 동남아시아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원단 수입 관세가 없는 미얀마, 캄보디아 등에 봉제공장을 신설키로 했다.
세계적인 SPA(제조·유통 일괄화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의 모기업인 패스트 리테일링은 중국에서의 생산 비중을 축소하고 동남아에서의 생산을 늘리는 등의 비용절감 전략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정부는 TPP를 발판 삼아 섬유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외국투자기업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투자 유치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해에만 한국의 일신방직(1억7700만 달러), 홍콩의 텍스홈(3억 달러), 영국의 월든(1억4000만 달러) 등에서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
중국, 인도네시아 등 TPP에 참여하지 않는 국가들 역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 업계는 최근 임금 상승 여파까지 겹쳐 베트남 등으로 생산기지 이전을 서두르고 있다. 인도네시아 업계는 TPP에 섬유산업의 사활이 걸렸다고 판단, 정부에 TPP 참여를 강력히 요구 중이다.
보고서는 또 한국 섬유·의류기업은 한국의 TPP 참여에 대비해 고품질 원단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생산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TPP에 참여하게 되면 고품질의 국산 원단이 가격경쟁력을 갖추게 되면서 저품질의 베트남산 원단을 대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불참하게 되면 공정별·시장별 투자 최적지를 선택해 역내 공급망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생산기지 해외 이전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국보 KOTRA 통상지원실장은 "TPP 참여를 기회로 섬유업계가 살 것인지, 아니며 위기를 맞을 것인지는 우리 업계의 선제적 대응 여부에 달려있다"며 "동시에 메가 FTA 시장 통합에 대비해 기업들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전략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